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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4회-눈 먼 부엉이가 운다 ④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8년 10월 11일
‘청송도 이제 그만 나를 버리셔야 되오! 그래야 청송도 여생이 힘들지 않을 것이오!…청송,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소. 더 이상 이 봉하노송은 님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고!… 이미 난 민주주의니, 진보니, 정의니, 뭐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소!…진작 수렁에 빠져버린 나를 청송도 이젠 버리셔야 되오!…’

봉하노송은 마음에 가득 고여 있는 속말을 이렇게 꺼내서 마주 앉아 있는 남정청송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말을 차마 대놓고 할 수가 없었다.

남정청송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한 달 전인 지난 달 22일, 봉하노송은 ‘사람 사는 세상’에 ‘이제 저를 버리십시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적 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 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제 사람 사는 세상은 문을 닫는 것이 좋겠습니다.’

봉하노송의 개인 누리집인 ‘사람 사는 세상’은 지난 1999년 8월 15일에 첫선을 보였다. 당시 봉하노송은 국회의원 신분이었다. 봉하노송은 2003년 대통령 취임 직전까지 이 누리집을 운영했다. 그 뒤 한 차례 문을 닫았다. 그러다 대통령 퇴임 직후인 지난해 2월, 봉하노송은 다시 이 누리집의 문을 열었다.

대통령 퇴임 후, 고향으로 낙향한 봉하노송은 이 누리집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 소통했다. 때론 정치도 논했다. 그러던 중 이른바 박차대 게이트가 불거졌다. 봉하노송은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다. 그는 괴로운 심정을 이 누리집에서 토로했다. 하지만 그런 일도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4월 21일, 유정상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구속되었다. 청와대 공금인 특수활동비를 12억 5천만원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유 비서관은 이 돈을 봉하노송의 퇴임 뒤를 대비해 마련했지만 봉하노송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유 전 비서관이 검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유 전 비서관은 ‘봉하노송의 남자’로 통하는 인물이다. 봉하노송과 유 전 비서관은 서로 말을 터놓고 살아 온 40년 지기 죽마고우다. 고향도 같고, 나이도 동갑인 두 사람은 김해시에 있는 ‘장유암’이라는 암자에서 고시공부를 함께 한 사이다.

청와대 대통령과 총무비서관의 관계는 막역할 수밖에 없다. 작은 회사로 따져본다면 대통령은 회사의 사장이고, 총무비서관은 회사의 경리과장이다. 회사의 경리과장이 맡는 가장 중요한 업무는 돈을 다루는 일이다. 이렇듯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대통령의 돈 심부름이다.

이렇게 최측근인 유 전 비서관이 구속되자 다음 날, 봉하노송은 ‘사람 사는 세상’에 ‘이제 저를 버리십시오’라는 글을 올렸던 것.

어떤 사람은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을 ‘메이히로’라고 불렀다. 1941년 12월 19일 생인 메이히로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중․고를 모두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나왔다.

지난 2007년 12월 28일, 퇴임을 앞 둔 봉하노송은 청와대에서 메이히로를 만났다. 그는 아흐레 전인 그해 12월 19일에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당선자 신분이었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봉하노송은 청와대를 방문한 메이히로를 반갑게 맞았다.

“대통령님, 고맙습니다.”

“대선을 치르시느라고 많은 고생을 하셨을텐데,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덕분에 참 좋습니다. 대통령님도 건강은 괜찮으시죠?”

“네, 덕분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약 두 달 뒤, 청와대를 떠나야 되는 봉하노송의 언행은 짐짓 차분했다. 이에 반해 메이히로의 태도는 기고만장했다. 마치 개선장군 같았다.

“당선자님,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는 인수인계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권이 순탄하게 출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협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한 가지 약속을 드리자면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하게 세우겠습니다.…”

임기 말년의 현직 대통령인 봉하노송과 후임인 메이히로 대통령 당선자의 회동은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날 메이히로 당선자가 청와대를 떠난 뒤, 봉하노송의 마음 한 구석엔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았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하게 세우겠습니다.’

메이히로가 남긴 바로 이 말 때문인 듯 했다. 그가 어떤 복선을 깔고 이런 말을 했는지 대강이라도 짐작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봉하노송은 그 저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썩 개운치 않았다.

그 뒤 약 16개월이 지났다. 지난 달 초순, 유정상 전 총무비서관이 검찰에 긴급 체포됐다. 메이히로 정권이 봉하노송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는 수순으로 읽혔다. 이 때문에 봉하노송은 자책했다.

‘내가 부엉이셈을 했단 말인가?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하게 세우겠다는 메이히로 대통령의 그 말을 만약 내가 쥐꼬리만큼이라도 믿었다면 그건 부엉이셈이…’

부엉이는 수를 셀 때 반드시 짝으로 센단다. 하나가 없어지는 것은 알아도 짝으로 없어지는 것은 모른단다. 해서 세상물정에 몹시 어두운 사람의 셈, 즉 계산을 부엉이셈에 비유한다. (계속)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8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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