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뒤에 숨겨진 사람들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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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매일·제이엠포커스 |
| 우리는 선한 의도로 정책을 설계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정책은 당초 의도만큼 효과적이지 않다. 불행히도 어떤 정책은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책도 다른 정책과 혹은 정책이 놓여있는 환경과 서로 오해하기도 하고, 불화하기도 한다. 진공상태에서 정책이 집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조(自嘲) 하면서도 반복하는 땜질식 처방은 상대가 왜 화를 내는지 영문도 모른 채, 갈등 상황을 모면하고자 일단 읊조리고 보는 진정성 없는 화해 시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정책 실행력은 빼어나다. 유능한 관료들과 각 분야 전문가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정치인들이 로켓 같은 추진력으로 밀어붙여, 세상에 좋다는 정책은 전부 다 만들어뒀다. 사회정책 분야만 한정해서 보더라도, 성과는 눈부시다. 복지국가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는 사회보험과 공공부조를 마련했고, 장애인, 아동, 노인, 여성 등 소위 취약계층 대상의 사회서비스도 고루 갖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우산 아래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의 수는 제한적이고, 우산 아래 있더라도 비에 옷이 다 젖었노라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정책 실행의 결과가 성과(outcome)가 아닌 단순 산출(output)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수급자 수를 늘리기 위해 특정 정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거나, 예산 투입을 늘려 급여나 서비스의 혜택 수준을 높이거나, 문제를 일망타진(一網打盡) 해줄 것만 같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이 답답함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편,그동안 우리는 애써 눈 감아왔다. 정책 그 자체가 누군가를 체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를 들어, 출산전후휴가, 육아휴직 및 육아기근로시간단축 등으로 구성되는 일가정양립지원정책을 살펴보자. 일가정양립지원정책의 대상은 고용보험 가입자이며, 2018년 8월 기준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87%에 달한다. 그런데도 2015년 기준 출산 후 1년 이내에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출산 퇴직 근로자는 건강보험 분만급여를 수급한 여성근로자의 약 13%로 추정된다. 자녀를 출산한 여성근로자 중 1/10 넘게 일가정양립지원정책을 이용하는 대신, 기를 쓰고 취업해 이를 악물고 버텨낸 직장을 홀연히 사직하는 것이다. 왜일까? 직장 분위기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도적으로는 일가정양립지원정책의 대상이 고용보험 가입자로 규정되어 법률에 근거한 고용보험 가입 제외 사업장 종사자는 정책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87%라는 자랑할 만한 숫자 뒤에, 누군지도 알 수 없고 세어 볼 수도 없는 사람들이 숨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임시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은 고용보험에 가입(2018년 8월 기준 고용보험 가입률 43.6%) 했더라도 1년 미만 단기계약을 체결하는 등 노동시장의 나쁜 관행에 의해 고용보험과 연계된 각종 정책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 사업이 수행되고 있지만, 정책대상인 소규모 사업주와 저임금 근로자가 정부 지원을 제외한 나머지 사회보험료 부담을 기피하여 신규 가입자의 유입은 둔화되고 있다. 숫자 뒤에 숨겨진 사람들은 고용보험 미가입자나 비정규직에 한정되지 않는다. 각종 사회보장제도 수급자 선정조사에 적용되는 자산의 소득환산 방식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오히려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비합리적 정책수단으로 지적되어왔다. 아동복지시설 운영 업무를 지방이양하고, 요보호아동에 대한 시설 소재지로의 주민등록 이전을 전제로 한 기초생활보장급여 지원은 지역별로 도움이 절실한 아동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에 닿기 위해서는 공들여 만든 정책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미래로 향하는 길을 다듬어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제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기존 정책의 빈틈을 메꾸는 것이 되어야 한다. 숫자 뒤에 숨겨진 사람들을 정책의 장(場)으로 포용하여 사회 전체를 보듬는 것, 그것이 미래로 향하는 길을 제대로 다듬는 방법이다.
/이채정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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