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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9> 나의 등단기

시는
허기진 나를
풍성하게
지탱시켜 주는
정신의 숲이요,
그 속에서 즐거이
내 삶을 구가한다

admin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3월 08일
ⓒ e-전라매일



한 때 나는 시를 이룰 수 없는 꿈으로 생각하고 한동안 고시 공부에 칩거(蟄居)하였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그것도 시골 초등학교 교사 시절 나의 가을은 너무나도 황량했다. 조수처럼 밀려오는 외로움, 그럴 때마다 시를 읽었다. 아무래도 외롭고 허기진 영혼을 달래기에는 詩처럼 좋은 묘약이 없었다. 이럴 때에도 나는 시인이 되어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시를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시를 읽으며 쓸쓸한 나를 달래고자 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던 1977년 전남 신안군에 있는 비금중학교로 발령이 났다. 뭍에서만 30여년 살아오던 나로서는 최초의 모험이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4~5시간쯤 홍도 쪽으로 가노라면 도초도와 이웃한 조그마한 섬이었다. 처자를 다 고향에 두고 파도만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절해고도에서의 생활은 이제까지의 나의 생을 점검하고 투시하게 하는 기회를 안겨다 주었다.
술이 한 잔 거나한 날 밤 하숙집 창가에로 동그랗게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다 건너에 두고 온 고향집과 식솔들이 눈앞에 아롱거려 빈 방을 뒤척거리곤 하였다.
그 때 나는 全北으로 전출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하는 갈매기, 가난한 섬을 떠나 칼-붓세의 행복의 동산이 있을 법한 뭍을 그리워한 섬 아이의 동경, 이런 간절한 심경이 훗날 내 시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현상에서 소외된 나의 환경이 나에게 시를 주었고 그 詩 속에서 빈약한 나를 지켜온 셈이다.
그러다 전북에 와서 다시 채용고시를 보아 순창 쌍치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이곳 또한 섬 못지않게 외진 곳이었다. 산골 고지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방 윗목의 물그릇이 땡땡 얼어붙는 하숙방에서 넓은 세상과 단절된 채 나의 청춘을 소모하고 있었다. 긴 겨울 밤 누구하나 내 이름을 불러 준 사람이 없었다. 직장도 아내도 자식도 얻었다. 그러고 나니 심심하였다. 깊은 산골에서 어린 학생들과 하늘만 쳐다보고 살기엔 너무 젊었다.
겨울밤이었다. 밤 새 눈은 쌓이고 나는 올빼미처럼 잠들지 못하고 긴 밤을 홀로 새워가며 시를 읽었다. 읽다 보니 시가 쓰고 싶어졌다. 이 때 산골에 갇혀 넓은 세상을 그리워한 「꽃뱀」이란 詩와, 항상 나를 정답게 맞이해 주는 달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 「새벽달」이란 시를 썼다.
그땐 다만 이런 어줍쟎은 글줄이라도 끄적거리지 않고서는 무시로 엄습해 오는 삶의 공백을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 고향 전북 남원으로 발령이 났다. 남원에 와서 「남원문학」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여기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시 공부를 하였다.
투고해 보라는 동인들의 권유로 월간「시문학」지에 보냈더니 이듬해 봄이 가고 여름이 가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 다시 시를 한동안 잊기로 했다. 그러던 그 해 구월 어느 날 동료 직원 한 분이 「시문학」지를 들고 와서 내 작품이 추천되어 있음을 알려주었다. 처음엔 동명이인인가 나의 눈을 의심했다. 이때부터 나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한 직장인으로서 직장과 가정과 대학원과 시 사이를 맴돌면서 어지럽게 뛰었다. 그런 가운데도 수차례 걸쳐 몇 십 편의 시를 보냈건만 묵묵부답이었다.
천료 작품은 초회 추천작품보다 월등히 솟아야 한다기에 종전처럼 여러 편을 써서 보내지 않고 몇 편만을 집중적으로 갈고 다듬기로 했다. 모두 독특한 기법으로 각각 특색을 달리한 작품들이었다.
아마 50여 번도 넘게 고쳐 썼을 게다. 문단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지도 조언도 받았다. 학생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친지들에게도 항상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묻고 읽고 고쳤다. 원고지를 베개 삼아 잠이 들곤 했다.
그랬더니 하늘이 감동을 했던지 철벽처럼 끄덕도 않던 등단의 문이 슬며시 열렸다. 실로 문학에 뜻을 둔지 20여년 만에 들려온 신의 응답이었다. 글을 쓰고 보니 부끄럽다. 스스로 우둔함을 내 보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나를 나는 사랑한다. 시는 허기진 나를 풍성하게 지탱시켜 주는 정신의 숲이요, 그 속에서 즐거이 내 삶을 구가하니까.

/김동수 시인
본지 독자권익위원회 회장


admin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3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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