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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을 통한 사람이 먼저인 공부

‘돈이 되는 공부’도
필요하다.
그러나 ‘돈이 안 되는 공부’도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20일
ⓒ e-전라매일
어느 날, 퇴계 이황이 할아버지의 제사를 치르기 위해 큰 형의 집으로 갔다. 방에는 정성껏 차려진 제사 음식이 가득했는데, 갑자기 제사상 위의 배가 꼬르륵 굴러 떨어졌다. 그런데 퇴계의 두 번째 부인 권 씨가 떨어진 배를 보고, 치마에 슬쩍 감추다가 큰 형에게 혼나게 되었다.
퇴계는 21세에 첫 번째 부인 허 씨와 결혼하고, 7년 만에 사별 후 재혼한 두 번째 부인 권 씨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부족한 딸이 안타까웠던 권 씨 아버지의 부탁으로 퇴계는 권 씨 여인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이었다.
자초지종이 궁금했던 퇴계는 아내 권 씨를 불러 “왜 그러셨소.” 물어보았더니 “먹고 싶어서요.”라고 답했다. 조선 예법의 대가인 대학자 퇴계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퇴계는 배를 손수 깎아 아내에게 먹여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친지들에게 할아버지도 손자며느리가 음복하는 것을 귀엽게 여길 것이라고 말하며 아내를 감싸주었다.
퇴계는 당대 최고의 대학자였지만 사람보다 자신의 이념을 앞세우지 않았다. 이념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사람이 우선이다.” 이렇듯 퇴계는 사람을 존중하고, 공경하는 자세로 몸소 ‘사람 공부’를 실천한 것이다. 사회 반목과 갈등이 커지고 있는 오늘날에 부, 지위, 성별과 관계없이 ‘사람됨’ 즉 인간 존중 사상을 몸소 실천했던 퇴계 이황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서로 이념이나 생각이 다르다 해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놓치지 않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퇴계 이황의 말이다. “도(道)의 근본은 하늘에서 나왔으나, 이는 모두 사람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백운동서원에서 ‘퇴계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서원 밖으로 흘러나오는 퇴계의 강의를 뜰아래에서 몰래 훔쳐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동네 대장장이 ‘배순’이었다. 몰래 강의를 듣는 이유가 궁금했던 퇴계는 배순을 불러 물었다. “오늘 강의한 것을 알아듣겠는가?”
배순은 퇴계에게 대답했다. “정확히는 몰라도, 도(道)라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보다 가슴으로 즐기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조선 명문가에서 나고 자란 대학자 퇴계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퇴계는 비록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배움의 뜻을 가진 배순을 기특하게 여기며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배움 앞에 빈부귀천이 없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퇴계는 배움을 통해 먼 미래에 나라에 힘이 되어줄 인재를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사람됨의 공부’를 가장 중요시하며 매사에 사람을 존중하고, 공경하는 자세로 누구보다도 ‘사람 공부’를 직접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좋은 술 향기는 백 리를 가고, 향기로운 꽃 냄새는 천 리를 가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갈 수 있다. 사람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 시스템보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들은 먼저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움직여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스템은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런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회의만으로 시스템이 갖춰질 수 있다는 말은 허구이다. 시스템의 부재(不在).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숙제이다. 겨우 만들어진 시스템조차도 고장 나 있거나 지속 가능하게 할 의지가 없는 것은 더 큰 숙제이다. 그러나 시스템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시스템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보다 사람이 먼저다. 그 무엇보다도 사람이 먼저다.
지금 인간관계는 여기저기 싱크홀 같은 일들로 넘쳐 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돈이 될 것 같으면 하고, 돈이 안 될 것 같으면 안 하는 것이다. 일을 하는데 내가 손해 볼 짓을 왜 하느냐는 거다. 심지어 어린 학생들 공부도 그렇게 한다. 돈도 안 되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돈, 돈, 돈, 돈은 중요하다. 그러나 돈이 전부가 아니다. 한순간에 사람을 잡아 삼키는 싱크홀이 될 수 있다. 오로지 돈이 목표이거나 돈에 몰입하면 싱크홀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돈이 되는 공부’도 필요하다. 그러나 ‘돈이 안 되는 공부’도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한승진 교육학박사
(익산 황등중 교목·교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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