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한 구절
-어둠은 출발이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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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시 한 구절‘, 이런 제목의 원고 청탁을 받고 보니 ’이거다‘ 하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당혹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후안무치, 궁여지책으로 다만 ‘위안으로서의 나의 시 두 편’을 내보이며 그간의 무능을 자책해본다. 나는 만해를 좋아한다. 그의 지사적 풍모도 풍모려니와 시의 역설적 구조가 막혔다 풀리고 풀렸다 막히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침략기에 우리가 만해를 만날 수 있었음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3.1운동마저 실패로 모두들 좌절의 늪에 빠져 민족의 비원과는 멀어져 가고 있을 때 그가 「님의 沈默」을 들고 메시아처럼 일어나 외쳤다. 유생어무(有生於無)라. 그러기에 ‘이별’은 곧 ‘만남의 시작’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이 한 구절로 만해는 식민지 노예로 전락된 우리에게 정신적 해방을 안겨주었다. 일제침략기가 민족의 수난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용운과 같은 민족의 대시인을 얻었다고 한 것은 이 시대의 자랑이자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시는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고무시켜주는 생명의 미학이 있다. 맺힌 데를 풀어주고, 불목(不睦)과 대립을 화평과 통섭의 세계로 고양시켜주는 이러한 생성적 사유방식이야말로 시가 우리에게 주는 힘이 아닐까 한다. 졸시 「어둠의 역설」도 1980 년대 말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 감당키 어려운 절망과 실의의 허방에서 몇 날 며칠이고 잠 못 이루다 어느 날 문득, ‘이별은 이별이 아니다’라고 만해가 외치듯, 나 또한 ‘어둠은 결코 어둠이 아니다.’ 라는 화두를 탄생시키면서 가까스로 일어설 수가 있었다. 어둠은 출발이다/ 깊은 나락에서/ 즈믄 밤을 뒤척이다가도/ 끝내 홀로 일어서야 하는 침묵/ 그것은 안으로 안으로 덮쳐오는/ 어둠을 살라 먹고/ 산처럼 다가오는 아픔을 살라 먹고/ 때가 되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빛살의 물결
어둠은 결코 어둠이 아니다/ 길고 긴 인고의 세월 끝에/ 쌓이고 모인/ 말씀과 말씀들이/ 이렇게 두 손 털고 일어서는/ 생명의 숲이다/ 찬란한 탄생의 눈부심이다 -김동수「어둠의 역설」전문, 1987
일체가 마음먹기 나름이라, 그러기에 패배라는 객관적 사실보다 오히려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 하는 주관적 자세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패배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역전시킨 이 선언적 명제. 어쨌든 나는 이런 고투의 과정 속에서 건져낸 말씀을 통해 당시 어둠의 늪에서 소생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밥이 되리라, 힘이 되고/ 슬픔이 되리라./ 어두운 골목 귀퉁이를 돌면서/ 벽을 등진 새벽/ 문 닫고 홀로/ 눈물 뜨겁게 훔치던 네/ 주먹 속의 찝찔한 눈물이 되리라.
밥이 밥이 되지 못하고/ 힘이 힘이 되지 못하고/ 시리게 웅크린 네 슬픔의 곁방에서/ 풍선처럼 하늘을 날아도/ 시들은 너에게 한 점의/ 그늘도 내려주지 못한 채/ 어느 누구 가슴 하나 때릴/ 시 한 구절 써 본 일이 있었느냐/ 아, 한 방울의 눈물/ 네 곁에서
한 잔의 소주라도 될 수 있다면/ 다가가리, 다가가서 불꽃처럼 타올라/ 회오리쳐 네 가슴에서/ 터질 수만 있다면/ 시가 되리라/ 허기 진 날 장(場)터의 국밥처럼/ 얼얼한 눈물/ 네 곁에서 너에게 힘이 되는/ 나의 시가 되리라 -졸시. 「나의 시」 전문 어찌해야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너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시로 거듭날 것인가를 고민하는 내 나름의 메타시가 아닌가 한다.
/김동수 시인 본지 독자권익위원회 회장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0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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