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4-04-25 14:48:50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뉴스 > 칼럼

나의 시 한 구절

-어둠은 출발이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7월 12일
ⓒ e-전라매일
‘나의 시 한 구절‘, 이런 제목의 원고 청탁을 받고 보니 ’이거다‘ 하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당혹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후안무치, 궁여지책으로 다만 ‘위안으로서의 나의 시 두 편’을 내보이며 그간의 무능을 자책해본다.
나는 만해를 좋아한다. 그의 지사적 풍모도 풍모려니와 시의 역설적 구조가 막혔다 풀리고 풀렸다 막히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침략기에 우리가 만해를 만날 수 있었음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3.1운동마저 실패로 모두들 좌절의 늪에 빠져 민족의 비원과는 멀어져 가고 있을 때 그가 「님의 沈默」을 들고 메시아처럼 일어나 외쳤다.
유생어무(有生於無)라. 그러기에 ‘이별’은 곧 ‘만남의 시작’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이 한 구절로 만해는 식민지 노예로 전락된 우리에게 정신적 해방을 안겨주었다. 일제침략기가 민족의 수난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용운과 같은 민족의 대시인을 얻었다고 한 것은 이 시대의 자랑이자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시는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고무시켜주는 생명의 미학이 있다. 맺힌 데를 풀어주고, 불목(不睦)과 대립을 화평과 통섭의 세계로 고양시켜주는 이러한 생성적 사유방식이야말로 시가 우리에게 주는 힘이 아닐까 한다. 졸시 「어둠의 역설」도 1980 년대 말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 감당키 어려운 절망과 실의의 허방에서 몇 날 며칠이고 잠 못 이루다 어느 날 문득, ‘이별은 이별이 아니다’라고 만해가 외치듯, 나 또한 ‘어둠은 결코 어둠이 아니다.’ 라는 화두를 탄생시키면서 가까스로 일어설 수가 있었다.

어둠은 출발이다/ 깊은 나락에서/ 즈믄 밤을 뒤척이다가도/ 끝내 홀로 일어서야 하는 침묵/ 그것은 안으로 안으로 덮쳐오는/ 어둠을 살라 먹고/ 산처럼 다가오는 아픔을 살라 먹고/ 때가 되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빛살의 물결

어둠은 결코 어둠이 아니다/ 길고 긴 인고의 세월 끝에/ 쌓이고 모인/ 말씀과 말씀들이/ 이렇게 두 손 털고 일어서는/ 생명의 숲이다/ 찬란한 탄생의 눈부심이다
-김동수「어둠의 역설」전문, 1987

일체가 마음먹기 나름이라, 그러기에 패배라는 객관적 사실보다 오히려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 하는 주관적 자세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패배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역전시킨 이 선언적 명제. 어쨌든 나는 이런 고투의 과정 속에서 건져낸 말씀을 통해 당시 어둠의 늪에서 소생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밥이 되리라, 힘이 되고/ 슬픔이 되리라./ 어두운 골목 귀퉁이를 돌면서/ 벽을 등진 새벽/ 문 닫고 홀로/ 눈물 뜨겁게 훔치던 네/ 주먹 속의 찝찔한 눈물이 되리라.

밥이 밥이 되지 못하고/ 힘이 힘이 되지 못하고/ 시리게 웅크린 네 슬픔의 곁방에서/ 풍선처럼 하늘을 날아도/ 시들은 너에게 한 점의/ 그늘도 내려주지 못한 채/ 어느 누구 가슴 하나 때릴/ 시 한 구절 써 본 일이 있었느냐/ 아, 한 방울의 눈물/ 네 곁에서

한 잔의 소주라도 될 수 있다면/ 다가가리, 다가가서 불꽃처럼 타올라/ 회오리쳐 네 가슴에서/ 터질 수만 있다면/ 시가 되리라/ 허기 진 날 장(場)터의 국밥처럼/ 얼얼한 눈물/ 네 곁에서 너에게 힘이 되는/ 나의 시가 되리라
-졸시. 「나의 시」 전문
어찌해야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너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시로 거듭날 것인가를 고민하는 내 나름의 메타시가 아닌가 한다.

/김동수 시인
본지 독자권익위원회 회장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7월 12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사설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요일별 기획
인물포커스
교육현장스케치
기업탐방
우리가족만만세
재경도민회
기획특집
살아서 돌아오라, 살려서 돌아오라!  
김제시, 안전한 식·의약 환경조성과 감염병 예방 집중  
군산시민을 위한 일자리가 뜬다  
남원시, 스프링피크 맞아 자살 사망 예방 집중관리 총력  
초록물결 ‘제21회 고창 청보리밭축제’ 로 오세요  
깊은 고민으로 공간에 입체감 입혀… ‘희망의 장수’로 새단장  
‘드론실증’ 통해 남원형 드론 활용서비스 모델 구축  
공감과 소통으로 민원서비스 듬뿍! 민원만족도 채움  
포토뉴스
국립전주박물관, ‘문방사우를 찾아라’
국립전주박물관(관장 박경도)은 누리과정(5~7세)과 연계한 단체 교육프로그램 문방사우를 찾아라를 4월부터 7월까지 총 10회 운영한다. &l 
한국전통문화전당, 전통문화 세계화를 위한 발판 마련
한국전통문화전당(원장 김도영, 이하 전당)은 지난 4월 3일부터 10일까지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을 방문해 ▲세종학당재단의 유럽거점과의 전통 
국립군산대학교 김정숙 교수, 개인전 ‘숨’ 개최
국립군산대학교 미술학과의 김정숙 교수가 오는 4월 17일부터 28일까지 전북특별자치도 도립미술관 서울분관에서 개인전을 연다.이번 전시회는 전북 
전통문화전당 전주공예품전시관 공예주간 전라도 일반참여처 모집
한국전통문화전당(원장 김도영)이 ‘2024 공예주간’ 행사에 함께할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예 작가와 단체 등의 일반참여처를 오는 17일까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알리체 로르바케르, 동시대 시네아스트 주인공
6월, 초여름의 낭만 영화제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가 ‘무주 셀렉트 : 동시대 시네아스트’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알리체 로르바케르(Alic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555. 남양빌딩 3층 / mail: jlmi1400@hanmail.net
발행인·대표이사/회장: 홍성일 / 편집인·사장 이용선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