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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스치고 간 추억의 시편들·2

학보(學報)에 시를
발표하기도 하고,
개인 시화전도 열면서
저잣거리에 나와 길을
잃어버린 승냥이 마냥
어두운 서학동 골목을
누비며 청춘을
불태웠던 내 사랑의
순애보 시절이었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8월 09일
ⓒ e-전라매일
고 1 때 화학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업 중 옆 짝꿍이 책상 밑으로 무언가 슬며시 건네주었다. 곱게 접은 분홍색 쪽지였다. 거기에 한 편의 시가 적혀 있었다. 사귀고 있는 여학생이 쓴 글이라는 것이었다. 부럽고 황홀하여 그 글에 취해 몇 번이고 읽어보다가 그만 불려나가 종아리를 맞은 기억이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고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일순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다시 그리워지는 것이다.’(푸쉬킨 「삶」)
당시 유행하고 있던 푸쉬킨의 시였는데, 그 때 난 이 시가 정말 내 짝꿍의 여자 친구가 쓴 시로 속아 부러워하다 그만 불려 나갔다. 그래서인지 더욱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후 어려울 때마다 이 시를 읊조리며 내 마음을 가다잡게 될 줄이야. 그러던 1965년 남원에서 살고 있던 내가 18세의 나이로 대학생이 되어 전주로 오는 버스 속에서 유난히도 손가락이 희고 가느다란 아가씨를 만나게 되었다. 앞 의자의 뒷부분을 건반 삼아 열 손가락을 연신 꼼작거리던 예쁜 손가락의 아가씨,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대학을 다니던, 당시 피아노로 이름이 나 있던, -석상처럼 말이 없던- 그녀를 이후 좋아하게 되었다.
서학동 임업시험장 부근 그녀의 자취집을 맴돌며 김남조의 「가난한 이름에게」란 시 한 편을 그녀와 함께 살던 친구에게 전한 것이 당시 나에게 유일한 위안이자 돌파구였다. ‘이 넓은 세상에서 / 한 사람도 고독한 여인을 만나지 못해/ 당신도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까?/ 검은 벽의/ 검은 꽃 그림자 같은/ 어두운 향로// 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 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겨울 밤/ 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런 시를 읊조리며 서학동 골목을 누비곤 하였다. 이렇게라도 그때 나는 내 가난한 마음을 달래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었던 참으로 안타깝고 서러웠던 문학 청년이었다. ‘이가 시린 한 겨울 밤’ ‘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 고독한 남자’, 그럴 때마다 목이 터져라 서학동 골목을 누비며 불렀던 정원의 ‘허무한 마음’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이 때 터져 나온 시가 바로 내 처녀작, 코스모스 같은 여인에게 부치는 ‘「코스모스에게 부치는 엽서」’ 라는 시였다. 맑고 깨끗한 시월의 하늘 아래, 한들 한들 피어 있는 청초한 한 송이의 코스모스 같은 그녀에게 이 시를 바치고 싶었다. 인류의 열망이 인공위성을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리듯, 나는 그 무렵 대학 신문에 이 시를 투고하여 내 마음을 대신 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해변엔/ 코스모스 피는 十月이 오고/ 더불어 뽀오얀 사장(沙場)을 거닐던/ 아 가슴에 그리운 날들 // 싱그런 코스모스 가지 가지 사이로/ 가랑잎 지는 산사(山寺)의 뒤안길에/ 잿빛 염주(念珠) 흰 목에 두른/ 목이 긴 여승(女僧)을 / 내 사랑했었네/

바람이 불적마다 흩날리는/ 저 코스모스 이파리들// 날이면 날마다 / 산록(山麓)을 타 내리는 설운/ 목탁(木鐸) 소리에 울어/ 병(病)든 비둘기는 가슴을 앓고 / 으스러지게 껴안은/ 서로 가슴에/ 눈물처럼 흰 배꽃이 졌네

아 / 해변엔 코스모스 지는 / 十月이 가고/ 더불어 뽀오얀 사장을 거닐던 / 가슴에 그리운 날들이여 /가슴에 그리운 날들이여.
-김동수, 「코스모스에게 부치는 엽서」 1965년

열여덟 숫총각의 가슴앓이. 이후 나는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는 에뜨랑제가 되어 세상의 주변을 서성이는 나그네 시인이 되어 거리를 방황하곤 하였다. 학보(學報)에 시를 발표하기도 하고, 개인 시화전도 열면서 저잣거리에 나와 길을 잃어버린 승냥이 마냥 어두운 서학동 골목을 누비며 청춘을 불태웠던 내 사랑의 순애보 시절이었다.

/김동수 시인
본지 독자권익위원회 회장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8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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