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과 문학
문학의 힘 또한 이와다르지 않다. 그것은 상상력에 의해 스토리가 지탱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詩)에서 흔히 보게 되는 기상(奇想)과 역설도 그 기저에 상상력이 깔려 있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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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은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생각해내는 것이지만, 상상(想像)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것이나 꿈꾸는 미래,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상상은 무언가를 생각해내는 아이디어나 의견과 같은 추상적 사고(thinking)와도 다른 앞날에 대한 비전(vision)의 성격이 짙다. 인간의 의식은 우리가 상상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에 현실적 제약을 초월하여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목적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의도 지향적·미래지향적 상상력에는 자신이 체험 했던 기억을 그대로 끌어내는 재생적 상상과, 유사한 이미지끼리 연결시켜 결합하는 연합적 상상, 그리고 과거의 경험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예술이나 발명과 같은 창조적 상상이 있다. 이러한 상상은 생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망상으로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남다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창조적 상상력 덕분이다. 상상력은 자신의 꿈을 구체화 시켜 우리가 상상한 대로 이루어 가게 하는 투시력이 있다. 초라하기 그지없던 페르샤만의 작은 어촌 두바이가 중동 사막 한 복판에 세계적인 관광도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모하메드 국왕의 남다른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일찍이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상상의 세계를 기획하고 추진하면서 세계인들로부터 투자를 끌어 내어 마침내 사막의 신기루 두발이 왕국을 건설하였다. 문학의 힘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상상력에 의해 스토리가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詩)에서 흔히 보게 되는 기상(奇想)과 역설도 그 기저에 상상력이 깔려 있다. ‘구름’이 ‘비’가 되고, 비가 뿌리에 스며들어 ‘꽃’이 되고, 그 꽃이 떨어져 또다시 ‘흙’이 된다. 그리하여 ‘꽃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다시 꽃’으로 피어나는 끊임없는 변전(變轉), 그러나 동일성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그리 놀라운 변신이 아닌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연기적(緣起的) 모습들일 뿐이다. 이육사의 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절정」)에서도 차갑고 완강한 식민지 현실(강철)이 곧, ‘무지개’(광복)로 치환되어,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경이로운 은유를 낳게 된다. ‘강철’처럼 차가운 겨울이지만 그 겨울을 끝까지 참고 광복의 의지를 다지면 머지않아 ‘무지개의 광복’이 됨을 알고 있기에 ‘겨울은 곧 무지개’라는 역설로 우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이러한 생성적 사유방식이야말로 시적 상상력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이요 힘이다. 졸시 「어둠의 역설」도 1980 년대 말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 감당키 어려운 절망과 실의의 허방에서 몇 날 며칠이고 잠 못 이루다 어느 날 문득, ‘이별은 이별이 아니다’고 외쳤던 만해처럼, 나 또한 ‘어둠은 결코 어둠이 아니다.’ 라는 명제를 탄생시키면서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있었다.
어둠은 출발이다./ 깊은 나락에서/ 즈문 밤을 뒤척이다가도/ 끝내 홀로 일어서야하는 침묵. 그것은 안으로 안으로 덮쳐오는/ 어둠을 살라 먹고/ 산처럼 다가오는/ 아픔을 살라 먹고/ 때가 되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신선한 빛살의 물결/ 어둠은 결코 어둠이 아니다/ 길고 긴 인고의 세월 끝에/ 쌓이고 모인/ 말씀과 말씀들이/ 이렇게 두 손 털고 일어서는/생명의 숲이다/ 찬란한 탄생의 눈부심이다 -졸시. 「어둠의 역설」 전문
‘어둠’은 ‘긴 긴 밤’이었고 ‘침묵’이었다. 그러나 화자는 그 어둠에 묻혀 주저앉은 ‘밤’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살라 먹고’ 일어서는 소생과 부활의 밤이었다. 그것도,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홀로’ 일어서야 하는 고독한 ‘밤’이었다. 그러다가도 ‘때가 되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신선한 빛살의 물결’이라는 인식의 전환, 그러기에 그의 ‘어둠’은 결코 ‘어둠’이 아니라 ‘찬란한 탄생’이 잉태된 ‘생명의 숲’이라는 역설을 낳게 된다. 깊고 어두운 자맥질의 고투 끝에 가까스로 건져 올린 구원의 말씀이었다.
/김동수 시인 본지 독자권익위원회 회장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0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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