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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첩을 내리는 데미샘

절로 봄은 오는 것일까?
이성부 시인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라고
<봄>을 노래했다

admin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2월 01일
ⓒ e-전라매일
성급히 데미샘에 올랐다. 그곳은 500리 섬진강 발원지. 입춘이 오기 전 봄을 맞이하고픈 마음이 앞선 탓일까? 코로나19로 인한 답답함을 풀고 싶었다.
데미샘에 오르는 길은 아직도 숫눈길. 계곡은 도타운 얼음장을 덮고 있었지만 겨울나무들은 한결같이 옷을 벗고 있었다. 몸통마다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나란히 손을 잡기도, 팔짱을 끼기도, 쓰러지는 몸을 서로 부축하며 서 있었다. 그러나 폐색의 겨울산에도 죽음의 장례식은 열리고 있었다. 따그르르 하얀 적막을 찧는 메아리 소리가 들려온다. 한 그루 참나무의 살점이 갈기갈기 떨어져 있다. 검은딱따구리의 소행일 것이다. 죽은 사체를 노리는 밀림의 하이에나처럼 시든 나무는 딱따구리의 주요 먹잇감이 된다. 이걸 딱따구리의 만행이라 할까? 참나무의 자비행이라 할까? 겨울산은 오직 죽음의 소리로 살아있었다.
겨울산은 참으로 적나라하다. 침묵의 하얀 큰 짐승이다. 숨죽이며 그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드디어 천상의 데미샘을 만났다. 그 옆엔 한 그루 고로쇠 나무가 살고 있었다. 온통 비탈진 너덜지대다. 순수한 음반의 세계. 여기저기 돌 틈에서 섬진강의 시원이 들려왔다. 늙은 고로쇠는 조용히 뿌리를 내린 채 천상의 소리를 경청하고 있었다.
강물의 첫 울음소리. 그렇게 겨울산은 강물에 숨을 불어넣으며 말을 걸고 있었다.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은 능동적이고 독자적 세계다. 그리고 말은 침묵의 충만함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침묵의 세계>). 말은 겨울산처럼 침묵의 깊은 성찰 속에서 나와야 데미샘 같은 소리를 낸다는 의미다. 그렇게 데미샘은 영혼의 소리로 입춘첩을 쓰고 있었다.
봄은 겨울산에서 출발한 지 오래다. 한바탕 폭설이 내리고 꽁꽁 얼어붙은 소한 대한도 지났다. 아직 바람은 차지만 얼마나 기다리던 봄의 말인가? 섭리의 봄도 좋지만 소리로 뱉어내는 ‘봄’이라도 기분은 좋다. 한겨울 제철도 모르고 핀 개나리를 보듯 말의 주술성에 푹 빠지고 싶은 봄이다. 봄은 뽀뽀하듯 두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돌배기 아기처럼 다가온다. 코로나19의 장기화와 무력감 속에서 얼마나 반가운 희망의 말인가? 얼음옷을 벗는 고드름처럼 코로나 우울도 싹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절로 봄은 오는 것일까? 이성부 시인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라고 <봄>을 노래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생명의 봄을 곰곰이 다시 들여다볼 때다. 과연 과거처럼 봄은 저절로 올 수 있을까? 이젠 막연한 기다림과 공허한 극복으로 봄은 오지 않는다. 마음의 봄이 아닌 섭리의 봄을 되찾기 위한 생태적 대전환의 수술을 해야 한다. 정치의 집도를 기다리기엔 너무 먼가. 우리 모두의 집도가 절실하다. 왕진하듯 먼 곳의 봄을 찾아가자. 청진기가 아닌 내시경을 들고서, 나아가 조직검사로 면밀히 진단해야 한다. 병든 봄에게 치유와 위로를 주자. 그것이 진정 우리의 봄을 되찾는 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병든 봄은 어디에 있을까? 플라톤의 동굴 속에 있을까? 아니다. 그곳은 평생 손발과 목이 묶여 한 쪽의 그림자만 진리라 우기는 우둔한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플라톤의 동굴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바로 탐진치의 동굴이다.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의 그곳이 병든 봄의 소굴일 것이다. 그곳엔 나도 아내도 자식들도 부모형제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낯익은 이웃들도 텔레비전에 반지르르 나오는 소피스트들도 있을 것이다. 탐욕으로 엉키고 엉킨 갈등과 소음의 아수라. 그래서 우리의 몸은 불타는 집, 화택(火宅)이라 했을까? 그 불타는 집을 데미샘으로 데리고 가고 싶다. 목 타는 짐승을 물가에 데려가듯…. 오랜 침묵의 충만함으로 나오는 시원의 데미샘. 그 맑은 영혼의 소리를 마시게 하고 싶다.
한겨울에도 입춘첩을 내리는 데미샘. 이제 겨울나무들의 상처에도 동그란 새살이 차오를 것이다. 침묵의 겨울산을 내려오니 봄소식이 크게 들려왔다.


왕태삼
전북시인협회 이사


admin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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