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금산여관 게스트에서 호스트로”
금산여관에서 사는 지금은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이 아닌 다른 의미의 여행을 하는 중이다. 우리보다 이 공간을 더 애정하고 보듬어주는 여행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머무는 동안 삶과 여행을 주제 삼아 폭 넓은 수다를 떨며, 떠난 자리를 정돈하고 다시 채워놓는 일상이 곧 여행이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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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여관게스트들과 |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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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창에 위치한 금산여관에 산다. 나의 일터도 금산여관이다. 게스트로 머물렀던 내가 이 곳의 호스트로 자격 변동이 된 일은 약 2년 전의 여행에서 비롯됐다. 2017년에 금산여관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매 주말마다 ‘이번 주는 어디로 떠날까’ 계획을 세우고 여행 하던 회사원은 문득 여행스크랩 노트를 떠올렸다. 신문이나 잡지를 읽다가 끌리는 여행지 기사가 있으면 가위로 오려서 붙여 놓은 노트였다. 책꽂이에서 노트를 꺼내 뒤적거리다가 특색 있는 숙소 세 군데를 이번 여행지 후보로 정하고 예약을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스크랩 한 지 이미 몇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안고 컴퓨터 화면에 뜬 검색창에 해당 숙소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채워 넣었다. 걱정했던대로 세 군데의 숙소 중에서 두 곳은 운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주의 여행지는, 내 마음 속 후보지 가운데 유일하게 운영을 하고 있던 순창 ‘금산여관’으로 정해졌다. 언니와 함께 서울 센트럴시티에서 버스를 타고 순창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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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여관전경 |
ⓒ e-전라매일 |
| 우리가 금산여관에서 처음 머물렀던 방은 108호. 오후 4시에 짐을 풀자마자 방에 깔려 있던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낮잠을 달게 잤다. 늦가을 서늘한 날씨에 몇 시간을 밖에서 돌아다닌 탓인지 온 몸이 노곤노곤해지면서 눈이 저절로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린 시각이었다. 미리 알아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금산여관으로 돌아오니 본채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안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기보다 소심한 성격을 가진 나는 굳게 닫힌 창호지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밀었다. 본채 문을 열고 들어가 뜨끈한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게스트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던 그 밤. 그 시간의 나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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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본금산여관 |
ⓒ e-전라매일 |
| 앞으로 내가 이 곳을 무려 아홉 번을 더 오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 가을 밤 금산여관에 흐르던 공기, 창호지 문 넘어 들리던 풀벌레 소리, 처음 본 사람들과 나누던 따스한 대화와 웃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석 달 후 한겨울의 어느 주말, 나는 다시 금산여관에 와있었다. 이후 서울과 금산여관을 오고 가는 주기는 더 짧아졌고 1년 동안 열 번을 방문했다. 아홉 번째 여행을 왔을 때 ‘순창에서 살고 싶다.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주말이 아닌 평일 어느때고 슬리퍼 끌고 금산여관에 놀러와 대청마루에 드러눕고 싶었다. 귀촌해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적게 벌어 적게 쓰면서 살 생각을 하니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 살 때와 다르게 품위유지비 같은 것도 필요 없으니 생활비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충분하겠다는 계산도 어느 정도 했다. 귀촌 결심을 하고 금산여관에 게스트로서의 마지막 방문을 했다. 작년 12월 마지막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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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여관앞노을 |
ⓒ e-전라매일 |
|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점심에는 쌍화차를 앞에 두고 홍대빵님과 마주 앉았다. 그녀는 10년 넘게 폐가였던 금산여관을 여행자들의 성지로 변신시킨 금산여관 시즌1의 주인이다. 내가 순창에 와서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에 관해 대화를 하던 중 대빵님이 말했다. “미정아 금산여관 한 번 맡아볼래?” 1초의 정적이 흘렀다. 고민이란 걸 하기에는 말도 안되게 짧은 찰나였지만 이미 내 입에서는 “네, 해볼게요”라는 말이 나왔다. 그 자리에 있던 또래 게스트들도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이후 올해 1월부터 금산여관 시즌2 오픈 준비를 시작해 3월에 문을 열기까지 몇 번의 멤버 교체가 있었고, 현재 금산여관&금산객잔은 내 옆의 린다와 함께 지키고 있다. 초기에 같이 제안을 받았던 멤버들이 하차 선언을 했을 때, 마침 린다가 금산여관에 여행을 왔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던 그녀는 짜이(인도식 밀크티)를 끓이는 작은 카페를 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런 린다가 금산여관 시즌2 멤버 구성이 난항을 겪고 있을 때 “갑자기 금산여관에 오고 싶더라고요”라는 말을 하며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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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여관옆카페금산객잔 |
ⓒ e-전라매일 |
| 이 일을 설명할 때마다, 나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여행을 좋아하던 두 여자가 각자 금산여관에 여행왔다가 이 곳에 이끌리듯 눌러 앉게 된 사연을 두고 누군가는 “부럽다”고 말한다. “멋있다”는 말도 가끔 들린다. 나는 “꿈 같다”는 표현을 한다. 금산여관에서 살기 시작한 지 반 년이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가끔 문득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 모든 일이 꿈일까봐 두려울 때가 있다. 그만큼 내가 금산여관을 무척 좋아한다는 반증이다. 꿈 같은 변화는 여행에서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행이 모든 것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여행의 주체는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장소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다.’, ‘그런 아지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금산여관 스크랩 기사가 몇 년 만에 눈앞에 나타났다. 마침내 이 공간의 주인이 돼 함께 할 인연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때 린다가 금산여관에 왔다. 금산여관에서 사는 지금은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이 아닌 다른 의미의 여행을 하는 중이다. 우리보다 이 공간을 더 애정하고 보듬어주는 여행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머무는 동안 삶과 여행을 주제 삼아 폭 넓은 수다를 떨며, 떠난 자리를 정돈하고 다시 채워놓는 일상이 곧 여행이다. 이 작고 소박한 공간에 오는 여행자들 또한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그들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돌아가는 여행길이 되기를. 그 바람을 금산여관&금산객잔에 날마다 가득 채워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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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불너는풍경 |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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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니(허미정) 금산여관 블로그: blog.naver.com/geumsanfamily 인스타그램: @geumsanfamily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19년 0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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