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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균 총리는 다산 정약용의 후예
정세균 총리는 압해 정 씨(押海丁氏)다. 다산 정약용도 압해 정 씨다. 정약용은 압해 정씨를 대표하는 역사 인물이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여유당전서’ 등을 저술한 정약용은 조선후기의 실학자다. 조선왕조 영조 38년인 1762년 출생해서 헌종 2년인 1836년 이승을 떠났다. 정약용이 세상의 인 연을 끊은 지도 어언 185년. 그 후예인 정 총리는 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
■ 1950년 진안군에서 출생
정 총리는 6‧25한국전쟁 때인 1950년,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셋째다. 부모님은 가난한 농부였다. 산에 불을 놓아 밭을 만들어 농사도 지었다. 산의 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도 짓고 방안의난방도 해결했다. 어린 날 정 총리는 부모님의 농사일도 돕고, 땔감을 구하는 일도 거들었다. 진촌. ‘진짜 촌놈’이라는 뜻이란다. 가난한 두메 산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정 총리는 ‘진촌’이란 별명을 부끄럽지 않게 여긴다.
■ 약 1년 만에 중학교 검정고시 합격
6‧25한국전쟁 이후, 아버지는 잠시 면의원을 지냈다. 인생의 태반이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는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자식들의 교육문제는 등한시하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정 총리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뗐다. 한자도 익혔다.
초등학교 때 성적은 매우 우수했다. 월반도 했다. 해서 동기들 보다 일찍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렵다보니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정 총리는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검정고시를 통해 중등과정을 마쳤다. 1년 남짓 학 업에 정진한 끝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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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고 빵돌이’ 정세균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을까. 아니면 취업을해서 돈을 벌까. 중학교 과정을 약 1년 만에 검정고시로 마친 10대 청소년기의 정 총리는 고민을거듭했다. 고심 끝에 무주에 있는 신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자퇴했다. 이후, 전주에 있는 공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쇠를 다루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방황은 또 시작됐다. 공고를 그만두고 신흥고등학교로 학적을 옮겼는데, 그 과정이 감동적이다. “아니 공고생이 우리 학교엔 어쩐 일인가?”
어느 날 뜬금없이 신흥고 교장실에 찾아와 공고성적표를 내미는 정 총리를 보고, 신흥고 선생님이 한 말이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온 건데요. 선생님, 제성적표를 한 번 봐주실래요?” “성적이 아주 좋은데, 그래 왜 이 성적표를 내게 보라는건가?” “제가 공고에 간 것은 고등학교를 마친 뒤 취업을 하려고 그랬습니다. 근데 공고 선생님이 취업을 하지 말고 꼭 대학에 가라고 권하셔서 생각을 바꾸게 됐습니다.선생님, 저 꼭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신흥고에서 공부를 좀 하게 해주십시오!” 정 총리의 요구는 황당했다. 그런데 신흥고는 정 총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모의고사를 치르게 한 뒤 입학을 허가했다. 신흥고는 정 총리에게 특별한 혜택도 베풀었다. 학비를 면제시켜 주었고, 매점에서 빵을 팔아 생활비도 마련하도록 배려했다. 이 때문에 신흥고 시절, 정 총리의 별명은 ‘빵돌이’였다. ‘신흥고 빵돌이’ 정 총리는 멋진 고교 시 절을 보냈다. 웅변대회에서 1등도 했고, 총학생 회장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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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총학생회장 정세균
신흥고를 마친 뒤 정 총리는 고대 법대에 진학했다. 3수 끝에 합격한 고대 법대 71학번이다. 고대 학보사 기자, 법대 과대표 등을 역임한 정총리는 고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다. 1973년의 일이다.
■ 법관의 꿈을 접고 쌍용그룹 입사
1975년 군에 입대한 정 총리는 육군에서 만기제대를 했다. 1978년 쌍용그룹에 입사한 정 총리 는 미국에서 주재원 생활도 한 바 있다.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도 마쳤다. 이런 미국 생활 속에서 정 총리는 국제 경제 에 대한 실무도 경험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 입문
쌍용그룹의 해외 주재원으로 국제 영업의 최전선에서 일을 하던 정 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 입문했다. 그 때가 1995년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다. 김대중 총재는 정 총리를 특별보좌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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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15대 총선에서 국회 입성
정 총리는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진안‧무주‧ 장수지구당 위원장을 맡았다. 이듬해인 1996년 에 치러진 제15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초선 시절, 정 총리는 새정치국민회의 전반기 원내총무를 지냈다. 후반기엔 원내 수석총무를 맡았다. 이후, 다채롭고 화려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정 총리는 노무현 정부에서 열린우리당 의장과 원내대표, 그리고 산자부 장관까지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8년엔 야당인 통합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2012년 총선 때는 자신의 텃밭인 전북을 떠나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새누리당 중진인 홍사덕 후보를 꺾고 5선 고지에 올랐다.
19대에 이어 20대에도 ‘정치1번지 종로’에서 당선된 정 총리는 20대 국회 전반기를 이끄는 국회 의장이 됐다. 정 총리는 국회의장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를 이끌었다. 이로써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안 통과 의사봉을 잡은 입법부 수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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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제46대 국무총리
6선 의원으로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정 총리는 대한민국 제46대 국무총리에 올랐 다. 헌정사상 처음인 국회의장을 지낸 국무총리라는 기록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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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대 대선의 잠룡
정 총리는 내년 3월에 치러질 20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대권 잠룡’으로 꼽힌다.정 총리는 현재, 제46대 국무총리로 코로나19최전선에서 국가의 방역 대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는 정 총리를 지지하는 모임이 속속 등장한다. 20대 대선의 잠룡 정 총리의 대망에 전북인들의 관심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과연 정 총리가 민주당 경선을 통과해 여권의 대통령 후보가 될 지, 결과는 올가을에 매듭지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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