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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전라매일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1월 01일
멀고도 가까운





윤영서

양 손을 핸드 드라이어 아래로 밀어 넣고 분주히 비볐다. 핸드 드라이어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뜨거운 바람을 토해 놓았다. 바람에서는 누군가의 구취를 정면으로 맡는 것만 같은 악취가 났다. 뜨거운 바람에도 몸속에 고여 있는 한기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영하로 내려간 수은주는 보름째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무겁게 달라붙어 있는 눈곱 탓인지 시야는 안개가 낀 듯 온통 뿌옇기만 했다. 나는 길고 깊은 숨을 내 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양변기와 소변기는 죄다 금이 가 있거나 깨져 있었다. 타일 벽에는 스프레이 페인트로 갈겨 쓴 욕설들과 섹스 체위를 노골적으로 그려놓은 그림들이 가득 했다. 근린공원 안에 위치한 남녀 공용 화장실. 지난여름부터 나는 이곳에서 밤을 보냈다. 해가 지면 어김없이 이곳으로 되돌아와 밥을 먹고, 곤한 몸을 눕혔다. 허술하고 허약하기 만한 이곳을 나는 집이라 불렀다. 누군가는 그런 곳이 집이 될 수 있을까 의심하겠지만, 누군가에는 이런 곳이 집일 수도 있다.
나는 바닥에 깔았던 종이 박스와 이불로 덮었던 김장용 비닐을 접어 카트에 담았다. 마트용 철제 카트 안에는 길에서 주운 폐지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일주일을 꼬박 주워 모은 것들이었다. 온 종일 몸을 몰아쳐 돌아다녀도 줍는 폐지양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폐지 가격은 바닥을 쳤고, 폐지 값을 쳐주는 고물상도 거의 없었다. 좀 더 가격을 쳐준다는 고철은 좀처럼 주울 수 없었다. 라디에이터 아래 놓아둔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몸을 포갠 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막 잠에서 깬 듯 녀석들은 서로의 얼굴을 핥으며 잠투정을 부렸다. 보름 전, 화장실에 숨어 들어온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새끼를 낳고 도망쳤다. 그대로 두면 새끼들은 얼어 죽을 게 분명했다. 라면 상자에 헌 옷을 대충 둘러 녀석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참치 캔 하나를 열어 놓아주었다. 녀석들은 순식간에 해치우고 극성스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가지고 있는 옷가지를 전부를 껴입었다. 옷이라고 해봐야 얇은 티셔츠와 소매가 닳은 니트 예닐곱 장이 전부였다. 변변한 겨울 점퍼 하나 없었다. 그나마 넉넉히 있는 양말을 여러 겹 신고 며칠 전 길에서 주어 온 부츠에 발을 쑤셔 넣었다. 뒤축이 무너질 대로 무너져 내려, 걸을 때마다 뒤꿈치가 끌리는 어그 부츠. 그걸 신고 걸을 때 마다 걷는 게 아니라 온 몸을 끌고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아, 졸라 짜증나. 잠도 못 자게 열라 부스럭 거리네.
여자 아이는 제법 신경질적인 투로 혼잣말을 내뱉으며 몸을 옹송그렸다. 자정 무렵 화장실에 들어온 아이는 열대여섯 살 쯤 아니, 그보다 더 어려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나는 아이가 홀몸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 챘다. 펑퍼짐한 패딩 점퍼로 가렸지만 풍선처럼 부푼 배는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아이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양변기가 놓여 있는 좁은 칸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몸으로 감당해 낼 수 한기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내가 슬쩍 밀어준 김장 비닐을 기어코 덮지 않고 밤 새 떨었다. 새벽 무렵에 밭은기침을 한참 쏟아냈다. 가끔씩 십대 아이들이 이곳에 왔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술을 마셨고, 담배를 피웠다. 키스를 했고, 섹스를 했다. 어떤 날은 대여섯 명의 아이가 한 아이를 마구잡이로 구타하기도 했다. 무릎을 꿇린 아이의 허벅지며 팔뚝을 담뱃불로 지졌다. 면도날로 뺨을 긋기도 했다. 나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나는 깨진 소변기나 양변기쯤이었다. 아니 유령이었다.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었다. 말리려 들면 그 폭력과 폭언은 내게로 가차 없이 향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며칠 전 내린 폭설로 길은 온통 빙판이었다. 보폭을 좁혀 걸으며 카트를 밀었다. 십여 년 전부터 앓아오던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마디마디가 굽고 휘어진 손가락에 통증이 지나갔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 해봐도 통증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휘어지고 굽은 약지 손가락에 끼워진 누런 금반지가 이물스럽게만 느껴졌다. 빼내려 해도 반지는 툭 붉어져 나온 손가락 마디에 걸려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반지는 남편의 금니를 녹여 만든 것이었다. 금니만으로는 금 함량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도금 팔찌 하나를 함께 녹였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빠져나왔다. 바람을 마주보고 걷는 탓에 걸음은 저절로 느리고 둔해졌다. 칼바람은 무너지거나 텅 빈 집들 사이로 요란스럽게 들고났다. 골목마다 여기저기 버려진 살림살이들은 불량배처럼 잔뜩 날을 세웠다. 재개발 계획이 발표 되자, 주민들은 살림살이들을 대강 챙겨 동네를 빠져나갔다. 수 십대의 포클레인이 탱크처럼 몰려왔고, 건물을 무너뜨리는 발파 소리는 밤낮 멈추지 않았다. 다세대 주택들과 상가 건물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항공점퍼 등판에 ‘현장 용역’이라는 큼지막한 글자를 밖아 넣은 청년들의 폭력적인 행동과 폭언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열대엿 가구들도 결국 이곳을 떠났다. 동네 입구에 세워진 조감도 속에는 35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는 물론, 스포츠 센터와 아트센터도 갖추어져 있었다. 근린공원이 있던 자리에는 생태공원과 그 둘레 길을 이용한 조깅코스와 자전거 전용 도로가 조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동네는 그대로 방치 되었다. 더 이상 공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지원 예산부족과 건설 시행사의 부도라는 때문이라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나는 반쯤 무너져 내린 빈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한때 아들 내외와 함께 살던 집이다. 대문은 반쯤 떨어져 나갔고, 벚나무는 허리가 잘린 채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마당에는 챙겨가지 않은 아니, 버리고 간 옷가지들이 아무렇게나 뒹둘고 있었다. 나는 군용 점퍼를 주워 입었다. 소매가 맨질맨질 해진 점퍼는 동구의 것이었다. 몸피보다 서너 곱절 품이 큰 탓에 점퍼를 입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몸을 숨긴 것만 같다. 지퍼를 목까지 올리니 몸이 금방 따뜻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기였다. 나는 마당 한쪽에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휠체어 세웠다. 그러나 그것은 제 몸을 곧추 세우지 못하고 한쪽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고개를 처박고 넘어진 그 꼴은 남편인 것만 같다. 휠체어에 앉을 때 마다 그의 몸은 늘 앞으로 쏠려 금방이라도 꼬꾸라질 듯 했다.



남편을 요양 병원으로 보내기 전날, 동구 평소보다 더 부산스러웠다. 아침 일찍부터 남편을 휠체어에 앉히고 목욕을 시켰다. 머리를 깎아주고, 면도도 해주었다. 탄력을 잃고 쪼그라든 몸에 바디 로션도 발라주었다. 새로 사온 속옷도 입혔다. 끝까지 돌보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재작년 여름, 남편은 척추 협착증 수술 후유증으로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치매 초기 증상까지 보였다. 누군가가 그의 손발이 되어야만 했지만 무릎 관절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 혼자서는 무리였다. 아들은 며느리의 강경한 반대에도 제 부모를 모시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 사업을 시작한 후, 동구는 늘 돈에 쪼들렸다. 고향집과 논밭을 처분하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살림을 합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부터 아들 부부 방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어느 때는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듯 둔탁한 소리와 며느리의 울음소리가 밤새 계속되었다.
아들 내외와 살기 시작한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동구는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자고 했다.
전문 요양사들이 우리보다 더 잘 돌봐줄 거야. 그러면 아버지 상태 지금보다 좋아질게 분명해. 엄마, 그렇게 하자.
나는 서운했고 괘씸했다. 동구의 괜한 짜증과 며느리 눈치를 덤덤히 견딘 게 분하기까지 했다.
네 아비지 보내려면 나도 같이 보내라.
엄마, 나 좀 살려줘. 나 한번만 더 살려줘. 제발, 엄마, 응?
눈물까지 글썽이는 아들의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들도 안쓰러웠지만 나날이 눈에 띄게 상태가 나빠지는 남편을 지켜보는 것이 더 힘들었다.



환자가 의식이 없어지면 병원에서 보호자 부르기 전에 금니부터 뺀데. 장례 치르느라 가족들이 무슨 정신이 있어 입안의 금니까지 챙기겠나 싶은 거지.
어디서 듣고 왔는지 동구는 남편의 금니를 빼야 한다고 성화였다.
아버지 금니로 반지나 하나 하셔. 울 엄마도 금반지 하나쯤은 떡 하니 껴봐야지. 여보, 기저귀 어디다 뒀어?
며느리는 성인용 기저귀를 꺼내주고는 방을 나갔다.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며느리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원래부터가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말수가 부쩍 줄었다. 어떻게든 팍팍한 살림을 꾸려보려 며느리는 가사 도우미며 식당주방 보조, 이삿짐 포장 등의 일을 닥치는 대로했다. 거기에 몸 불편한 두 노인네까지 돌봐야 했으니 그 애의 삶도 퍽 고단했을 터였다. 요양원에 가져갈 것을 대강 챙겼을 무렵 건넛집에 사는 순금이 왔다. 치과에서 이십여 년 간 조무사로 일했다는 그녀는 남편의 잇몸에 마취바늘을 찌르고, 펜치처럼 생긴 기구를 그의 입속으로 넣었다.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남편은 온 몸을 비틀며 몸부림을 쳤다. 쇳소리 같은 비명을 질렀다. 뽑아낸 금니는 모두 네 개였다. 어금니 역할을 제대로 했을까 싶을 정도로 형편없이 작았다. 순금이 솜뭉치를 남편의 입안으로 밀어 넣자 홀쭉하게 꺼져있던 그의 뺨은 금세 풍선처럼 빵빵해졌다. 남편은 어금니 사이에 끼워놓은 솜을 혀끝으로 밀어냈다. 나는 솜을 다시 끼워주려고 그의 입을 벌렸다.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치아에는 치석과 치태가 두껍게 끼어 있었다. 금니를 빼낸 자리는 웅덩이처럼 패어 있었고 패인 그 자리에는 비릿한 피가 고여 있었다.
대문을 나서다 무리를 지어 서 있는 개들과 마주쳤다. 피부병에 걸려 털이 죄다 빠진 녀석부터 안구 한쪽이 빠진 녀석, 꼬리가 반쯤 잘린 녀석, 다리 한쪽을 심하게 절뚝이는 녀석, 탈장된 장기를 항문에 덜렁거리며 달고 있는 녀석까지. 정상적인 개들은 없었다. 사람들은 떠나며 가구나 살림만 버린 것이 아니었다. 키우던 개와 고양이도 버려두고 떠났다. 열 댓 마리의 개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향해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나갈 길을 터주지 않을 작성인 듯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나는 녀석들을 향해 카트를 힘껏 밀었다. 그제야 개들은 허둥지둥 흩어졌다.


연신 하품을 쏟아내며 상품을 진열하고 있던 청년은 편의점 앞을 기웃거리는 나를 알아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오후 여섯시부터 다음날 오전 열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청년의 눈은 늘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그는 한쪽에 쌓아놓은 제법 많은 양의 박스를 카트 안에 실어주고는 비닐봉지 하나를 건넸다. 봉지 안에는 삼각 김밥 네 개와 샌드위치 두 개가 담겨 있었다. 그는 빈 박스만이 아니라 삼각 김밥이며 샌드위치, 햄버거, 우유 따위를 챙겨주곤 했다. 상하지는 않았지만 유통 시간이 지나 팔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자신의 점심이나 저녁 몫으로 챙겨 놓은 것들 나누어 주었다.



안에 들어가 좀 드세요. 몸도 좀 녹이시고요. 전 여기 정리하고 들어갈게요.
파라솔 아래 펼쳐진 테이블에는 소주병이며 맥주 캔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바닥에는 담배꽁초도 수북했다. 나는 편의점 한쪽 테이블에 앉아 삼각 김밥을 하나 꺼냈다. 밥알은 얼음을 씹는 것처럼 서걱였지만 짭조름하게 간이 된 불고기에 금세 침이 고였다. 나는 허겁지겁 김밥을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제 점심 이후, 목구멍으로 넘긴 거라곤 우유 하나뿐이었다. 유통기간이 나흘 지난 우유는 시큼하고 떨떠름한 치즈 맛이 났지만 목구멍으로 넘길 만 했다. 그렇게라도 허출한 뱃속을 달래야 했다.
헐! 쩐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던 여자 아이 둘이 나를 노골적으로 흘낏거렸다. 그들에게 나는 다리가 여럿 달린 벌레와 다를 바 없는 혐오스러운 노인일 뿐이었다.
거지인가?
노숙자 같은데.
거지나 노숙자나 그게 그거 아냐?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진까 극혐이야! 노인충들. 난 저렇게 오래 안 살 거야.
핵 극혐이지, 틀딱충들. 난 저 지경되기 전에 자살 할 거야.
근데 이 라면 레알 존맛탱인데.
나는 아이들의 대화를 못들은 척 하며 김밥을 꾸역꾸역 넘겼다. 순간 사래가 들어 밭은기침이 쏟아졌다. 밥알과 함께 틀니가 덜컥하고 입 밖으로 떨어졌다. 쉰부터 빠지기 시작한 치아. 자고 일어나면 베개 위에는 통증도 없이 뿌리째 빠진 치아가 떨어져 있었다. 풍치 때문이었다. 치료시기를 놓치자 치아는 일 년도 되지 않아 몽땅 빠졌다. 싸구려 틀니를 해 넣었지만 해가 갈수록 잇몸은 끓인 무처럼 물러졌고, 틀니는 점점 헐거워졌다. 어느 날부터 틀니는 아무 때고 빠졌다. 말을 하가다도, 하품을 하거나 밥을 먹다가도 덜컥하고 빠졌다. 여자 아이들은 짧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끓는 물이라도 뒤집어 쓴 듯 펄쩍 뛰었다. 그러는 바람에 덜 익은 면발과 뻘건 국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손녀도 그랬다. 털컥 빠진 틀니나 양치 컵에 담가 놓은 틀니를 볼 때마다 옥타브 높은 비명을 질렀다. 놀라서가 아니었다. 나와 남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아이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손녀에게 우리는 헐리우드 영화처럼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네는 근사한 조부모들이 아닌, 늙고 병든 노인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저질러 놓은 것을 치우지도 않고 그대로 편의점을 나갔다. 청년이 서둘러 바닥을 치우기 시작했다.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게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붉게 충혈 된 그의 눈에는 피로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돕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쪼그려 앉았다. 순간, 아랫도리가 축축해졌다. 기침을 내뱉거나, 카트를 밀다가 나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다. 요실금 기저귀를 찰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세수할 여력도 되지 않는데 뒷물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가제 수건에 물을 적셔 대강 닦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툭 터진 지린내에 청년은 미간 사이를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군용점퍼를 단단히 여몄지만 한기는 매섭게 날을 세우며 젖은 아랫도리를 파고들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옆에 세워진 가판대에서 생활 정보지 한부를 꺼냈다. 파지를 줍는 몇몇 치들은 그것들을 모조리 가져가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아직은 괜찮다는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좀 더 버텨보겠다는 오기 같은 것이었다. 정보지에는 각종 구인광고들과 매매부터 전, 월세 등의 부동산 광고들이 빈틈없이 들어 있었다. 요양 병원 광고도 가득했다. 병원들은 죄다 저렴한 가격을 강조하며 최신식 시설과 쾌적한 환경, 엄격한 관리 및 최고의 치료를 자랑하고 있었다. 동구는 남편도 그런 곳에 보낸다고 했다. 걱정할게 하나도 없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입원한지 다섯 달 만에야 남편이 입원한 요양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은 버스를 네 번이나 갈아타고 가야 할 정도로 먼 곳이었다. 아침 일찍 나섰지만 점심 무렵에야 병원 셔틀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하루에 한 차례만 운행한다는 버스는 십이인 용 봉고였다. 출발 시간에서 이십여 분을 더 기다렸지만 승객은 나와 동구뿐이었다. 비포장 길을 달리는 동안 나는 창밖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산은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었고 밑동이 잘린 나무들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게 유기해 놓은 시신들 같았다. 언젠가 나도 저런 곳에 던져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무장이라는 남자가 서둘러 방향제를 뿌렸지만 냄새를 덮기는 역부족이었다. 동구는 거래처에서 온 전화를 핑계로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면회서류는 대강 작성하고 병실로 올라갔다. 병실은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듯 후텁지근했다. 에어컨은 가동되지 않고 벽에 고정해 놓은 선풍기 두 대만 느릿느릿 돌아가고 있었다. 팔 인용 병실에는 침대가 열 한 개가 놓여 있었다. 침대와 침대 사이의 공간은 한 뼘도 되지 않았다. 남녀 환자를 분리해 관리한다는 사전 설명과 달리 남녀 환자들이 한 병실에 수용되어 있었다. 그들은 성인용 기저귀로 아랫도리만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하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텅 빈 껍질일 뿐이었다. 립스틱을 붉게 칠한 요양사는 노파의 기저귀를 능숙하게 벗겨내고는 욕창이 가득 번져 있는 엉덩이를 드레싱도 하지 않고 새 기저귀를 채웠다. 대변이 질펀하게 묻은 노인의 엉덩이는 티슈 몇 장으로 대강 닦아낼 뿐이었다.



남편의 얼굴은 대추씨처럼 쪼글쪼글했다. 볕을 쬐지 못한 탓인지 피부는 회칠한 듯 창백했다. 눈에는 누런 눈곱이 매달려 있었고, 입술은 곰팡이가 핀 것처럼 뿌연 거스러미가 일어나 있었다. 그는 텅 빈 표정으로 천장만 쳐다보았다. 필라멘트 끊어진 전구처럼 오락가락하던 정신은 아예 끊어져 암전 상태였다. 가제수건을 꺼내 남편의 얼굴이며 몸을 닦아내다 그의 팔 다리가 침대 난간에 묶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랫동안 묶여 있었는지 손목이며 팔목에는 보랏빛 멍이 선명했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버둥거리는지, 침대에서 떨어질까 봐 금방 묶어 놓은 거예요.
요양사는 심기 불편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묶어놔요?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남편의 턱이 힘없이 벌어졌다. 숨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났다. 금니를 빼낸 자리의 구멍은 더 깊어져 있었다. 그 안에 서늘한 무언가가 고여 있었다. 죽음이었다. 그를 집어 삼키려고 잔뜩 몸을 웅크린 채 기회를 엿보고 있는 죽음. 남편은 토해내듯 깊고 무거운 숨을 뱉어냈다.
정보지를 접어 카트에 담는 그 순간, 승합차 한 대가 급정거를 하며 멈췄다. 승합차에서 내린 남자는 범행을 연행하는 형사처럼 내 손목을 거칠게 그러쥐었다.
씨발, 이 노인네 짓이었구먼. 가져다 놓으면 반나절도 안 돼 없어진다 했더니.
남자는 다시 한 번 더 훔쳐 가면 경찰서로 끌고 가겠다는 말을 위협적으로 뱉으며 카트를 발로 걷어차 넘어뜨렸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바닥에 흩어진 폐지들을 축구공 차듯 멀리 차 버렸다.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 나를 빙판으로 내동댕이치듯 밀어냈다. 허리를 찌르는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뒷목까지 전해졌다. 쌓아놓은 블록이 넘어지듯 온 몸의 뼈가 무너져 내린 것만 같았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이 노인네야, 당신이나 이런 짓거리 하지 마. 당신 때문에 하루치 일당 고스란히 날아 간 게 몇 번인 줄 알아?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이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버스가 올 방향으로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몇몇은 도착한 버스에 서둘러 몸을 실었다. 몸을 일으켜 보려 해도 두 다리에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입에서 덜컥 틀니가 빠졌다. 틀니는 경사진 길을 따라 맨홀 뚜껑까지 굴러갔다. 나는 기어가듯 걸어가 틀니를 주워 입속에 대강 끼워 넣었다. 헐거워진 틀니는 좀처럼 들어맞지 않았다. 입매는 좀처럼 반듯해지지 않았다.
온 힘을 실어 카트를 밀었다. 오직 밀어야만 나아 갈 수 있는 삶. 그러나 밀 때마다 두 걸음 뒤로 밀려 나는 것 같았다. 무엇으로부터 밀려나는 것일까. 어디까지 밀려나야 하는 것일까. 밀려난 그 끝은 어디쯤일까. 그 끝이라는 게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코끝이 싸해지며 속눈썹에 차가운 것이 맺혔다. 그것은 닦아내기도 전에 눈을 찌를 듯 날카롭게 얼어버렸다.





새끼 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대강 챙겨 주고 세면대 옆 바닥에 박스를 깔았다. 전날 보다 좀 더 두껍게 깔았다. 김장용 비닐을 덮고 누웠다. 온 몸이 짓밟히는 듯 욱신거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공기 중에 떠도는 기묘한 악취는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나는 양변기 옆에 놓여 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결국 집어 들었다. 입구를 대강 묶어 놓은 봉지는 제법 무게감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봉지를 열자 열어 본 웅크린 채 숨어 있던 냄새가 한꺼번에 터졌다. 탯줄이 그대로 감겨 있는 핏덩이. 아기의 입술이며 작은 몸은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져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지난 밤, 화장실에 들어왔던 여자 아이를 떠올렸다. 얼굴이 백설기처럼 뽀얗던 아이, 풍선처럼 부푼 배가 도드라져 보이던 아이. 이럴 수밖에 없었나, 라는 생각에 마음은 심란하고 착잡해졌다. 이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에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봉지를 여며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십 미터 높이의 인공 암벽은 어둠 속에 우뚝 서있었다. 암벽은 근린공원 안에서 있는 시설물 중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고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또 한 차례 폭설이 쏟아질 거라 했던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 하늘은 낮고 무거워 보였다. 나는 암벽 아래쪽 흙을 팠다. 맨손으로 언 땅을 파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손이 얼음장처럼 깨져 나갈 것만 같지만 멈추지 않았다. 벌써 네 명의 신생아를 암벽 아래 묻었다. 십대 아이들은 도둑고양이처럼 숨어들어와 몰래 아기를 낳고 사라졌다. 아기들은 넷은 숨이 끊어져 있었다. 다행히 둘은 가늘지만 뜨거운 숨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그 아기들을 어느 교회 앞에 있는 베이비 박스에 넣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마다 지구대에 신고할까도 생각했지만 화장실이 완전히 폐쇄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곳은 내 몫으로 유일하게 남겨진 곳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라도 욕심을 부리고 싶은, 부려야 하는 곳이었다. 구덩이 안에 아기를 내려놓고 흙을 덮었다. 개나 고양이가 파낼까 싶어 단단히 다졌다. 봄이 되면 꽃으로 피어나 거라. 꽃 되어 세상과 마음껏 눈 맞춤 하거라. 마음껏 숨을 내쉬고, 마음껏 봄비 내리는 소리를 들어라. 마음껏 바람의 결을 만져 보고 그 바람에 춤을 추듯 온 몸을 흔들어 보기도 해라. 아기야, 너는 꼭 꽃이 되거라. 자장가를 불러주듯 혼잣말을 하며 다독이듯 흙을 다졌다.
화장실로 돌아왔을 때 변기가 놓여 있는 칸에서 오르골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핸드폰 하나가 소변기 옆에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버린 것일까. 나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 넣었던 메모지를 꺼냈다. 빼곡히 적혀 있는 연락처들 사이에서 며느리와 손녀의 번호를 찾아 눌러보았다. 사용이 정지되었다는 안내 멘트가 반복되었다. 동구에게도 전화를 걸어보았다. 여전히 통화음만 지루하게 반복될 뿐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밖에 못 사는 걸까. 엄마는 나한테 요것만, 왜 딱 요만큼만 주었어? 부모가 돼서, 부모면서 왜 요것밖에 못 주었냔 말이야.
사라지기 전날, 동구는 원망 섞인 술주정을 쏟아냈다. 절대 바뀌지 않는 징그러운 이력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그래서 삶이 주무르는 데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만큼 살아도 도대체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들의 등을 쓸어주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원망과 울음을 받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동구가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고 그렇게 사라질 줄 알았다면 거짓말이라도 해서 붙잡았을 것이다. 다 지나갈 것이고, 더 좋아질 것이라고.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온다고. 누군가가 말리고, 막아서더라도 기어코 봄은 온다. 봄은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리로 온다. 그러니, 그러하니 견뎌야 한다고, 버텨야 한다고. 동구가 사라지고 남아 있는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건 며느리였다. 며느리는 빚쟁이들에게 뺨을 맞고 머리채를 쥐어 잡혔다. 빚쟁이들이 보낸 폭력배들의 협박과 추행을 오롯이 혼자 감당했다. 그렇게 넉 달이 지났을 무렵 며느리는 새벽부터 이삿짐 트럭에 짐을 실었다. 손녀는 트럭에 짐짝처럼 올라앉아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머니, 저도 살아야겠어요. 저 좀 살려주세요. 영주 키우면서 어머니까지 모시기 힘들어요. 아버님 병원비는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 보낼게요. 어머님은 우선, 예천 이모님 댁에 내려가 계세요. 애 아빠랑 연락 닿으면 연락드릴게요.
언니가 삼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며느리의 목소리는 간곡했다. 아니, 간절했다. 좀 더 버텨달라고, 좀 더 버텨보자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당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벚꽃 잎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이삿짐 트럭을 보내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어디든 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어디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할지 알 수 없어 빈 집으로 돌아왔다. 매일 무언가가 부서지고 무너져 가는 순간들을 목격했다. 마지막까지 빈집에서 버티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후에 근린공원 남녀공용 화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권철용씨 보호자인데요. 잘 있나요? 건강은 어때요? 밥은 잘 먹고 있어요?
남편이 입원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넉 달 전에 사망하셨습니다.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무연고자로 처리해 장례 치렀습니다. 그런데 누구세요? 권철용씨와 어떤 관계 시죠?
목울대에 무언가가 걸린 듯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뱉어낼 수 없었다. 눈가에 뜨거운 것이 몰려왔다. 문득문득 그가 이미 세상을 등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무슨 말인가를 더 했지만 배터리가 방전된 휴대전화는 그대로 전원이 꺼졌다. 형광등이 불안한 표정을 짓듯 깜빡거렸다. 희미한 불빛을 내뿜는 저 형광등도 모조리 꺼질 것이다. 그러면 이곳을 채우는 것은 짙은 어둠뿐일 것이다.





등에 닿는 한기는 어제보다 매서웠다. 김장용 비닐을 얼굴까지 뒤집어 써 보지만 문틈으로 들어오는 면도날 같은 바람은 얼굴을 날카롭게 그어댔다. 잠드는 일은 매번 고통스러웠다. 십대 아이들인 줄 알았는데, 서른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화장실로 들어왔다. 오래 울었는지 여자의 눈자위는 붉었다. 그녀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 위에 얇은 카디건 하나만 허술하게 걸치고 있었다. 여자는 등에 업은 아기를 달래는 시늉을 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갓 돌을 넘겼을까 싶은 아기의 양 볼은 빨갛고 코에서는 누런 콧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자는 한쪽에 자릴 잡고 앉더니 연신 칭얼거리던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어느새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제야 여자도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애기 엄마, 이거라도 덮어. 그러고 잠들면 큰일 나.
김장용 비닐을 밀어주자 여자는 거절하지 않고 끌어 당겨 덮고는 눈을 감았다.
숨통을 조이고 온 몸을 짓누르는 압박에 눈을 떴다. 아기 엄마가 내 가슴 위에 올라 탄 채, 제 무게를 실어 누르며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녀를 밀어내보려 했지만 나는 두 팔만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그녀의 눈이 잠시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궁지에 몰린 짐승의 눈빛. 절망과 간절함의 눈빛. 제 속내를 들킨 여자는 주먹으로 내 얼굴을 내리쳤다. 깨진 변기 조각으로 이마도 내리 찍었다. 코뼈가 내려앉았는지 뜨뜻하고 비릿한 것이 입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아랫도리가 뜨끈해지더니 미지근한 온기가 등을 타고 올라왔다. 여자는 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빼내려 애썼다. 남편의 금니를 녹여 만든 반지는 손마디에 걸려 잘 빠지지 않았다. 잠에서 깬 아기가 울며 제 어미 옆으로 기어왔다. 여자가 등짝을 거칠게 밀어내자 아기는 달래주지 않는 어미가 야속해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나는 달큼한 젖내를 맡았다. 젖내를 풍기는 사람은 이렇게 할 수 없다. 아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어미는 새끼에게 젖을 물려야 하는 것이다. 여자는 나뭇가지 꺾듯 내 손가락을 꺾어 기어코 금반지를 빼냈다. 허리춤에 묶어 놓은 쌈지 주머니도 찾아냈다. 몇 달 내내 온종일 돌아다니며 폐지며 고물을 주워 모은 돈은 고작 삼십여 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언젠가 손녀는 우주선 잔해를 주운 러시아 사람은 그걸 팔아 서른아홉 평짜리 아파트를 샀고, 바닷가에서 서핑을 하다 고래 똥을 주운 멕시코 사람은 사탕수수 농장 천 평을 샀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손녀는 어른이 되면 자신도 그런 것들을 주우러 갈 거라 했다. 폐지가 아닌 그런 것들을 주우러 다녔어야 했을까. 그랬다면 지킬 수 있었을까. 남편과 동구 그리고 며느리와 손녀를. 여자는 지폐들을 자기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서둘러 아기를 엎었다. 어미 등에 업혀서도 아기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여자는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화장실을 나갔다.



거센 바람에 눈은 화장실 안으로까지 거침없이 들어왔다. 기록적인 폭설이 다시 한 차례 내릴 거라고 했었다. 눈발은 점점 굵어지며 풍경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나는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했지만 발끝이며 손끝에 감각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박스 안에 있던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미간 사이에 검은 점이 있는 녀석은 내 얼굴을 잠시 핥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 얼룩무늬 녀석과 발목 부분만 검은 녀석은 잠시 주춤거리는가 싶더니 뒤따라갔다. 이곳이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결코 누구도 구원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아니면 문 밖에 또 다른 구원이 있다고 믿는 걸까. 녀석들은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졸음이 쏟아졌다. 잠에서 깨면 봄이 와 있을까. 멀고도 가까운 그 계절이 저만치 와 있을까. 나는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깊고, 무거운 잠을 잘 것 같았다. 좀처럼 깨지 않을 잠을. (끝/75장)



전라매일 신춘문예 소설 응모작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1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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