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22회-최후의 만찬 9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20일
“있잖아요, 할아버지!”
생기 넘치는 눈빛으로 방울이가 할아버지를 부르자 봉하노송은 잠시 흐트러진 마음을 되잡았다. “어, 방울아! 할 말이 있으면 해보거레이.” “궁금한 게 있어요.”
“그래 궁금한 게 뭐노?”
“꼭 대답해 주실꺼죠?”
“그래 꼭 그렇게 하마. 궁금한 점이 뭔지 물어봐라.”
방울이가 어떤 질문을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봉하노송은 성심성의껏 대답하겠노라고 속다짐했다. 맏손녀와 나누는 이승의 마지막 대화인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할아버지!”
“어 얘길 해봐라.”
“제가 더 예뻐요, 아님 왕솔이가 더 예뻐요?”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라서 봉하노송은 머뭇거렸다.
왕솔이는 호걸의 둘째다. 사내아이로 작년 5월에 태어났다. 봉하노송과 봉하부인은 모두 네 명의 손주를 두고 있는데, 왕솔이는 유일한 손자다. 올해 나이는 두 살이다. 지난해 8월 21일 사저 앞뜰에서는 왕솔이의 백일잔치가 성대하게 열렸다. 이 날 백일잔치엔 호걸의 처갓집 식구들도 참석했다. 호걸의 여동생인 호연은 이 백일잔치에 남편과 함께 두 딸을 데리고 왔다.
“얼른 말해 보세요. 할아버지는 왕솔이 보다 제가 더 예쁘죠?”
방울이가 채근했다.
“음 할아버지는 말이다. 우리 방울이와 우리 왕솔이가 똑같이 예쁘다고 생각한다.”
“치잇! 그런 대답이 어딨어요!”
“그럼 내가 방울이한테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말해보세요.”
“방울이는 엄마를 더 좋아하노, 아빠를 더 좋아 하노?”
방울이는 즉답을 피했다.
“저는요, 엄마도 좋구요. 아빠도 좋아요.”
방울이의 메뜬 대답이었지만 봉하노송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거봐라, 방울이도 대답하기 참 힘들제? 미국에 있는 엄마는 니 옆에서, 한국에 있는 아빠는 내 옆에서, 너와 나의 영상통화를 지켜보고 있는데, 엄마를 더 좋아한다고 말 할 수도 없고, 아빠를 더 좋아한다고 말 할 수도 없제?”
“헤헤 할아버지, 맞아요.”
“그래 이 할아버지도 그렇단다. 너와 내가 영상통화 하는 걸 혹시 옆에서 왕솔이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비록 왕솔이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갓난아이지만 이 할아버지가 왕솔이 보다 방울이가 더 예쁘다고 말 할 수는 없는 일 아이가.”
“헤헤 할아버지 말이 맞다닌까요.”
“그래 고맙다. 이 할아버지한테 또 뭘 묻고 싶나? 궁금한 점이 또 없나?”
방울이는 잠시 뜸을 들였다. 무엇인가 묻고 싶은 것이 있다는 표정이다.
“저기요, 할아버지!”
“어 그래, 궁금한 것이 또 있는 모양이구나. 주저하지 말고 얼른 물어보거레이!”
“아빠는 언제 미국에 와요?”
방울이의 뜬금없는 질문에 봉하노송은 말문이 막혔다. 지난 달 11일 귀국해서 현재 봉하마을 사저에 머물고 있는 호걸이 미국의 가족들 곁으로 언제 돌아갈지는 봉하노송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어림잡을 수 없는 탓이다.
“있잖아요. 할아버지!”
“어 그래 말해 봐라!”
“작년 여름에요. 할아버지 집에서 왕솔이 생일파티 했잖아요.”
“그건 생일파티가 아니고 백일잔치였다.”
“생일파티랑 백일잔치랑 달라요?”
“암 다르고말고.”
“어떻게 다른데요?” “생일파티는 말이다. 매년 태어난 날 하는 거고, 백일잔치는 태어 난지 백일이 되는 날 하는 거제.”
“아 그래요. 역시 우리 대통령 할아버지는 짱이에요.”
“오늘은 와 할아버지더러 짱이라고 하노?”
“우리 대통령 할아버진 모르시는 게 없잖아요.”
“그래? 허 허 허!…”
봉하노송이 웃었다.
“할아버지!”
“어 그래 얘길 해보거레이!”
“일곱 밤 인가 여덟 밤인가 지났는데요.”
“지났는데?”
“왕솔이 생일이었거든요.”
봉하노송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약 일주일 전인 지난 14일이 왕솔이의 생후 첫 생일인 돌이었다. 그는 왕솔이의 돌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되니 혹시 정신을 꽁무니에 차고 다니는 사람이 아닌가싶어 자괴감도 들었다.
“할아버지, 저 슬퍼요.”
“와 우리 왕솔이 생일날 무슨 일이 있었나?”
“그게 아니구요, 할아버지! 아빠가 없어서 내 동생 생일파티 못했단 말에요! 할아버지, 우리 아빤 언제 미국에 오시냐구요? 흐윽 흐윽!…왕솔이 생일잔치 빨리 해야 된단 말에요, 할아버지! 흐윽 흐윽 흐으윽!…”(계속) |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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