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29회-오래된 생각이다 2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1월 13일
비서실은 김경남 비서관을 비롯한 봉하사저의 개인비서들이 사무를 보는 공간이다. 청와대에서 파견 나온 경호원들이 상주하는 경호동과 한 지붕을 쓰고 있다. 비서실을 나온 봉하노송은 바로 안채로 향했다.
지붕이 없는 마당인 중정을 지나 주방에 들렀다. 예상한대로 주방엔 유정상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주방에서 안채로 건너가면서 청와대의 풍수를 다시 떠올렸다.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풍수지리학의 대가다. 그는 1990년대에 ‘청와대 흉지론’을 주장했다. “청와대 터가 풍수학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터가 아니라 죽은 영혼들이 머무는 곳이거나 신의 거처”여서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가 순탄치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 오래 전부터 청와대 터가 명당이라고 주장했던 풍수가들의 주장과는 완전히 다른 해석이었다. 청와대 터가 길지라는 주장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왔다. 최창조 교수의 해석은 달랐다. 그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주인만 되면 권위주의적 인물로 바뀌는 청와대 터는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청와대 본관의 위치가 북악산에서 물이 내려와 모이는 습지이거나 논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런 곳은 풍수적으로 귀신이 노는 곳이라 청와대에 들어오기만 하면 대통령들이 자신을 신(神)으로 착각할 수 있다고 몇몇 풍수가들은 말한다. 최창조 교수의 추정에 따라, 실제 청와대 관계자들이 기록을 뒤져본 결과 청와대 본관 자리는 조선시대 때 모내기를 하던 논이었다고 한다. 이런 곳에 외롭게 오래 거주를 하다보면 왜소한 독불장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최 교수는 “이건 풍수적인 해석이기 보다는 환경심리학적 해석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청와대 지대가 꽤 높아 이곳에선 남산과 서울 시내를 모두 굽어 볼 수 있다. 대통령이 모든 걸 다 파악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실제로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청와대 터가 경복궁의 내맥이 내려오는 길목이라 땅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내놓은 바 있다. 용진잡송 정권 때인 1990년. 청와대 관저를 새로 짓기 시작했다. 이 때 공사장 뒤편의 숲속에서 표석이 하나 발견됐다. 석재는 화강암이었다. 표석엔 한자로 ‘天下第一福地(천하제일복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세상에서 복이 가장 많은 자리’라는 뜻이다. 감정 결과, 300~400년 전에 만들어진 표석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물론 그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이 표석이 발견된 곳은 청와대 본관에서 동북쪽으로 계곡을 지나 150m 정도 떨어진 가파른 산기슭이다. 앞쪽이 나무와 풀로 가려져 있는데다 길도 없어서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모양이다. 2005년 봉하노송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에 나섰다. 그는 이 때 표석 얘기를 꺼냈다. “천하제일복지라는 글귀도 권력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내가 지내는 곳이 천하제일이겠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궁궐은 암투와 모함과 음모가 들끓던 곳입니다.…” 봉하노송은 청와대에 입성한 뒤, 본관의 내부 구조를 바꾸려고 시도했다. 후광거송 대통령처럼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 밖으로 옮기려 했다. 그런 마음을 먹게 되는데 과거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전한 귀띔도 한 몫 했다. 한겨레신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노송 대통령님! 대통령은 외로운 자립니다. 구중궁궐 안에 갇혀 혼자 지내는 자립니다.…” 우리는 지금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우주여행을 이야기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땅과 사람의 관계를 살피는 풍수학으로 한 나라의 국운까지 논하고 있으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풍수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아마도 전직 대통령들의 임기 말이나 뒤끝이 좋지 않았던 탓도 있으리라.
임기를 6개월 쯤 남긴 시점인 2007년 가을, 봉하노송은 OM뉴스 대표기자와 사흘 동안 만나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임기 말입니다. 퇴임을 하시려면 6개월 쯤 남았는데, 요즘 근황이 어떠신가요?” OM뉴스 대표기자가 이렇게 묻자 봉하노송은 씩 웃었다. “기자님이 보시기에 제 얼굴이 어떻습니까?” “근심걱정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잘 보셨습니다. 제 임기 말은 짱짱합니다.” “대계거송 대통령이나 후광거송 대통령은 임기 말에 아드님들 비리가 드러나서 시름시름 보냈습니다. 노송 대통령님은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임기 말이 짱짱해 보이시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요?” OM뉴스 대표기자의 질문에 봉하노송은 잠시 숨을 골랐다. “이게 좀 똑 부러지게 드릴 수 있는 말이 아니어서 그러는데요. 좋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제가 행운아라 그럴 겁니다.” “왜 행운아라고 생각하십니까?” “기자님도 잘 아시겠지만, 청와대에 머물렀던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말이나 인생의 말로는 참 좋지 않았습니다.” “초대 대통령부터 직전 대통령까지 거의 예외가 없는 셈이죠?” “그렇습니다. 독재를 하다가 3·15부정선거 이후 4·19혁명이 발발하면서 하야한 뒤 국외로 추방된 초대 대통령, 군부독재와 철권통치를 하다가 영부인도 시해되고, 자신도 시해된 대통령, 5·18로 권력을 찬탈한 뒤 군부독재를 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 등으로 감옥살이를 한 두 명의 대통령, 그 뒤를 이은 대계거송 대통령과 후광거송 대통령은 임기 말에 터진 아들의 비리로 레임덕에 시달렸는데, 기자님이 보시다시피 저는 이렇게 멀쩡합니다. 이렇게 참여정부의 말기는 짱짱합니다. 허허허!…” <계속> |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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