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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33회-오래된 생각이다 6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1월 27일
“당신 와 이러노?”

그미의 뒤를 따라 거실로 나가며 봉하노송이 이렇게 소리쳤다. 그미는 대답 없이 내실로 향했다. 봉하노송이 잰걸음해서 그미를 앞질렀다. 앞을 가로 막고 선 봉하노송이 그미의 어깨를 붙잡고 세게 흔들었다.

“말을 좀 해보거레이! 대관절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대답도 없이 내빼노?”
그미는 시선을 발끝에 떨구고 닭똥 같은 눈물을 질금질금 흘렸다. 봉하노송은 강하게 그미를 닦아세웠다. 그미는 고개를 들고 눈물을 머금은 채 잠시 봉하노송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그러더니 그미는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봉하노송의 두 손을 내치고 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실의 방문이 닫혔다. 봉하노송이 닫힌 방문을 열고 내실로 들어갔다.

“말 좀 해보라닌까 와 이러노?”

내실의 침대에 걸어앉은 그미는 대답 없이 훌쩍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러노?”

봉하노송이 이렇게 몰아치지만 그미는 하염없이 눈물만 훔쳤다.

“당신 혹시 박차대 회장의 돈을 묵었나?”

오래전부터 봉하노송이 가슴 속 깊은 곳에다 꼬깃꼬깃 접어 두었던 궁금증을 드디어 꺼냈다.

“말해봐라! 박차대 회장의 돈을 묵었는지 안 묵었는지?”

그미는 고개를 젓지 못하고 푹 떨구었다. 그러면서 어깨를 더욱 옹송그리고 서럽게 울먹였다. 봉하노송은 그미가 박차대 회장의 검은 돈을 받아 챙긴 것이 틀림없다는 판단이 섰다.

“당신 대답을 못하는 걸 보니, 박차대 회장의 돈을 묵은 게 틀림없나 본데, 퍼뜩 말해보거레이! 박차대 회장의 돈을 언제 얼마나 묵었고 어디다 썼는지?…”

봉하노송은 침대에 걸어앉아서 울고 있는 그미의 어깨를 다시 두 손으로 붙잡고 거세게 흔들었다.

“퍼뜩 말을 해보란 말이다. 박차대 회장한테 언제, 얼마나 돈을 받아 묵었고, 그 돈을 어디다 썼는지 말이다?…”

봉하노송의 곤두선 목소리엔 울분이 가득 찼다. 그미를 향한 봉하노송의 거칠거칠한 다그침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런데도 그미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미의 어깨를 감사납게 붙잡고 있던 봉하노송의 두 손이 스르르 풀렸다. 제풀에 기가 빠진 듯 봉하노송은 침실에서 거실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거실의 2인용 소파엔 유정상이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앉아 있다. 약 10분 정도 내실에서 봉하노송이 그미를 향해 쏟아내는 풀풀한 실랑이를 잠자코 듣고 있던 참이다.

“거기 좀 앉아 있어라. 밖에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란다.”

유정상에게 이렇게 당부한 뒤, 봉하노송은 앞뜰로 나왔다. 양력 2월이지만 날씨는 아직도 차갑다. 봉하노송은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옷을 두껍게 입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심장이 얼어 붙는 충격을 받은 탓도 있으리라.

봉하노송은 부들부들 떨며 허둥지둥 담배를 한 개비를 피웠다.

‘집사람이 박차대 회장의 돈을 먹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내 직감대로 박차대 회장의 돈을 먹은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보통 큰일이 아니다. 근데 집 사람이 박차대 회장의 돈을 받아서 어디에 썼단 말인가? …’

봉하노송은 이런저런 궁금증으로 가슴을 졸였다. 담배꽁초를 앞뜰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버렸다. 동동걸음으로 안채 거실에 들어간 그는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그는 유정상에게 짜증 섞인 말로 쏘아 붙였다.

“박차대 회장의 돈을 집사람이 언제 얼마나 묵었고, 묵은 돈을 어디다 썼는지 이실직고 해봐라!”

유정상은 묵묵부답했다. 겉보기에는 봉하노송의 마음은 조마조마한데 유정상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내 말이 안 들리나? 퍼뜩 말을 해보거래이!…”

봉하노송이 자꾸 등쌀을 대도 눈을 감은 채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아 있는 유정상은 아무런 말이 없다.

“오늘 따라 니 와 이라노? 사저에 찾아왔으면 내를 먼저 만나야 될 텐데 와 집사람부터 만났노? 집 사람하고 저 작은방에서 무슨 밀담을 나눴노? 내 짐작컨대 집 사람이 내 몰래 박차대 회장의 돈을 묵은 것이 들통 난 모양인데, 돈을 언제 얼마나 묵었고, 또 집사람이 어디에 쓸라고 돈을 묵었는지 궁금하다. 그라고 이 문제엔 분명 정상이 니도 깊숙이 개입된 것이 틀림 없을끼다.니는 와 그런 일에 개입했는지, 퍼뜩 말을 해보란 말이다.”

유정상은 여전히 입을 꽉 다물고 있다.

“내가 니를 안지도 어언 40년이다. 니 눈빛만 봐도 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내가 아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집 사람을 만나 결혼 한지도 근 40년이 됐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한 지붕 아래서 살았는데 내가 와 집사람의 머릿속을 못 들여다 보겠노? 아까 작은방에서, 또 거실과 내실에서, 집 사람 한테 따지고 묻는 과정에서 내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집 사람은 박차대 회장의 돈을 분명히 묵었고, 그 과정엔 니가 분명히 개입돼 있다. 내가 지금 궁금한 것은 박차대 회장의 돈을 언제, 얼마나, 그리고 어디다 쓸려고 묵었냐는 점이다. 퍼뜩 말해보거레이? 니도 그렇겠지만 내도 지난 해 초여름부터 스트레슬 엄청 많이 받았다. 오늘 받고 있는 스트레스는 정말로 견디기 힘든데, 더 열을 받으면 내 머리가 터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퍼뜩 이실직고 해봐라!…”

이렇게 다그치자 유정상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갸웃이 고개를 든 유정상의 파리한 얼굴을 봉하노송은 눈동자가 눈썹에 걸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계속)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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