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37회-오래된 생각이다 10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2월 17일
봉하노송의 맞은 편 소파에 앉아서 눈물을 짜던 그미도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제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봉하노송 곁으로 다가왔다. “여보, 와 이러는교?…호걸이 아버지, 와 말도 못하고 이러는교! 흐윽, 흐윽 흐으윽!…” 유정상이 탈진한 봉하노송의 기운과 맥을 되살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봉하노송의 겉옷 상의의 단추와 허리를 조이고 있는 벨트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미는 봉하노송의 팔과 다리를 주물렀다. “호걸이 아버지, 흐으윽!…여보, 퍼뜩 기운 좀 차리소! 흐윽 흐윽 흐으윽!…” 이렇게 우짖으며 봉하노송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던 그미가 절뚝절뚝 거실 밖으로 나갔다. 2분 쯤 뒤에 거실로 돌아 온 그미의 양손엔 물병과 음료수병이 들려 있다. “호걸이 아버지, 입을 크게 벌리고 이 음료수를 좀 마셔보이소!…” 그미의 재촉에 봉하노송은 입을 크게 벌렸다. 그미가 봉하노송의 입안에 이온음료를 따랐다. 입안으로 들어 간 이온음료를 봉하노송은 목구멍 안으로 쿨꺽쿨꺽 넘겼다. 그미와 유정상의 응급조치 덕분인지 봉하노송의 기운과 맥은 서서히 되살아났다. “호걸이 아버지, 괜찮으신교?” 봉하노송이 소파 상단에 걸쳤던 목을 곧추세우고 바르게 앉자 그미가 울먹이는 음성으로 물었다. “괘않다.…”
“괜찮다”고 대답하는 봉하노송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였다.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봉하노송의 움직임을 살피던 유정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탈진으로 쓰러진 것 같은데, 탈진 때문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이만 하길 천만다행인데, 어쩌면 좋겠노?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을 듯 한데, 119를 부를까?” 유정상의 제안에 봉하노송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봉하노송의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확신이 선 듯 유정상은 내실 쪽 소파에 되앉았다. 봉하노송이 앉아 있는 뒤뜰 쪽 소파의 우측에 서 있던 그미가 아픈 다리로 걸음을 뗐다. 절뚝절뚝 걸어서 봉하노송의 맞은 편에 있는 앞뜰 쪽 소파로 걸음을 옮겼다. 물병과 음료수병을 양 손에 나눠 들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미의 턱밑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드디어 북문이 뚫렸는갑다.…” 봉하노송이 불쑥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미가 소파에 앉아 소파 좌측의 거실 바닥에 물병과 음료수병을 내려놓는지 사오 분 쯤 지난 뒤다. 기운과 맥이 돌아 온 직후라서 그런지 봉하노송의 입안에서만 맴도는 혼잣말이 유정상과 그미에겐 들릴 듯 말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봉하노송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또랑또랑 울렸다. “정상이 니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건데, 내는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철저하게 절제도 했고, 수시로 나를 점검도 했다. 아들 비리 문제로 북문이 뚫려 임기 말에 언론에 맞아죽었다고 할 만큼 짓밟히고 정치적 타살을 당한 두 분의 전직 대통령처럼 청와대서 송장이 돼서 기어나가지 않으려고 말이다. 다행히도 내는 임기 말에 북문이 뚫리지 않았는데, 퇴임 후 약 1년 만에 북문이 뚫린 것 같다.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진 것 같다. 시점은 다르지만 내 역시 대계거송 대통령이나 후광거송 대통령처럼 자식들 문제로 북문이 뚫렸다. 때문에 내는 앞으로는 더 이상 짱짱할 수도 없을 것이고 당당하게 살 수도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 이후로 내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라고 대계거송 대통령과 후광거송 대통령이 임기 말에 자식들 문제로 북문이 뚫린 뒤 서서히 골병이 들어 송장이 되었던 것처럼 아마 내도 그리 될 것 같다. 다만 장소만 다를 뿐인데 대계거송과 후광거송은 청와대 안에서 송장이 됐고, 내는 이 사저 안에서 송장이 될 것 같다.…”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려는 듯 봉하노송은 이를 앙다물고 인상을 긁었다. 잠시 뒤 봉하노송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궁한 소리를 내뱉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훔친 뒤 봉하노송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정상이 한테 부탁 좀 할란다.” 유정상이 고개를 들고 봉하노송을 바라보았다. “니가 집사람 부탁을 받고 박 회장한테 100만 달러를 빌려 청와대 관저에서 집사람한테 직접 전달을 했다는 걸 검찰이 이미 알고 있다면 앞으로 법적 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유정상은 귀를 쫑긋 세우고 봉하노송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다. 그미도 눈물을 훔치면서 봉하노송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집사람이 애들 유학비와 교육비 때문에 큰 빚을 져 그 빚을 갚으려고 내몰래 박 회장의 돈을 빌렸다고 하지만 그 일은 내 임기 동안에 이루어진 일이고, 내 집안의 일이니 내도 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된다. 그러니 만약 정상이 니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게 된다면 반드시 이리 말해라. 내가 니 한테 부탁을 해서 박 회장의 돈을 빌렸고, 니가 청와대 경내에서 박 회장의 돈을 직접 받아 내게 전달했다고 진술해라. 내도 검찰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게 된다면 박 회장 돈 100만 달러는 니를 거쳐 내가 받았다고 할란다. 그라고 집사람이 진 빚을 내가 갚았다고 말을 할란다. 이 문제를 놓고 검찰하고 법적 책임을 놓고 다퉈야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텐데, 이 얼마나 구차한 일이노? 구차하게 박 회장 돈을 누가 받아서 썼는지를 놓고 법적 다툼을 벌이고 싶지 않다.…”
봉하노송은 이렇게 말을 한 뒤, 유정상을 바라보았다. 유정상은 고개를 푹 숙였다. “정상이 니는 내 부탁을 꼭 들어줘야 된다. 내가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도덕성이 무너지면 내 개인적인 도덕성만 무너지는 것이 아이고 참여정부가 지향했던 모든 가치가 깡그리 부정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부를 하고 난 뒤, 봉하노송은 초점이 사라진 눈동자를 눈물이 흥건한 눈꺼풀로 덮었다.
(계속) |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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