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길 가다가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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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야?” 버스 정류장 옆자리에 앉아있던 중년의 여인이 스마트 폰에 대고 한 말이 들린다. 요즘 저런 스마트 폰이면 위치추적도 가능하다는데. ‘너 지금 있는 곳, 어디냐?’를 직접 묻는 목소리가 칼칼하다. 내게 한 말도 아닌데 움찔, 의식에 날이 선다.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전화를 받을 때 첫마디가 ‘어디야?’라는 말이 들리면 늘 거부감이 생긴다. 가뭄에 콩 나듯이 통화를 하는 사이였다. 그의 전화를 받는 순간이면 첫마디가 ‘어디야’였다. 수년을 변함없이 그는 그렇게 물었다. 그 말은 곧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암호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그가 어디냐고 묻는 목소리가 늘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수동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내 상황이 위험한 노출이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있었다. 그 ‘어디야?’의 추억은 어둡다. 휴대전화가 없었던 시절에 간신히 연결되었던 통화언어는 늘 짧아서 다행이었는지 몰랐다. 어디냐를 묻는 상황이 싫은 게 아니라 내가 여기 있는 줄 알면서 그렇게 묻는 정해진 언사가 싫었다. 버스를 탔다. 승강구 오른쪽 1인석 앞 뒷자리에 60대로 보이는 두 여인이 앉아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인 듯, 앞에 앉은 여자가 몸을 돌려 뒷자리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데 서로의 자식 자랑이 늘어져 있었다. 앞자리 여자는 아들이 결혼했는데 며느리가 학교 선생님이며 혼수가 엄청났다는 자랑이었다. 그에 질세라 뒷자리 여자, 자기 아들이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지금 청와대에 근무한다며 응수를 하는데 그 목소리가 더 높았다. 통로 맞은편에서 앉아있던 나 말고도 다른 승객들까지 공해에 가까운 그 소리를 참고 들어야만 했다. 참다못한 운전 기사님이 그 소리를 들었는지 한마디 했다. 여기 자식들 결혼 못 시킨 사람도 있고 취직 못 한 사람도 많으니 그만 좀 하시라는 정중한 요구였다. 내가 할 소리 대신해준 것 같았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들 결혼에 며느리를 자랑하던 사람은 입을 다물고 돌아앉았는데 청와대 근무 자랑이 늘어졌던 사람이 가만있지 않았다. 당신이 뭔데 승객들이 대화하는데 참견을 하느냐, 내 자식 자랑도 내 자유다. 당신은 운전이나 하라 하는 대거리가 잠깐에 그치지 않았다. 세상을 살면서 직접 맞부딪치지 않은 제3자로서 받는 울화가 이런 메가톤급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대단하시면 청와대에서 자가용 한 대 하사받아 기사님 두고 외출하시지 왜 서민들이 애용하는 버스에서 1,300원 내고 갑질이냐고 퍼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기사님이 어이없는지 입을 다물어버렸고 정류장 승객을 태우기 위해 때마침 버스가 섰다. 목적지가 두 정거장이나 남았지만 나는 황급히 버스에서 내리고 말았다. 더 이상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 일에 끼어들다 큰코다칠 수 있는 요즘 세상이지만 혹여 저런 청와대 빽에 맞섰다간 어디 뼈마디가 온전하겠나, 겨우 ‘에잇!’ 하는 소리를 남기고 내렸던 오기가 부끄럽다 못해 참담하기만 했다. 역시 청와대 빽은 이렇게 빛나는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나 원 참 같잖아서. 속으로 하는 말이었다.
/선산곡 수필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전북지역위 회장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0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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