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눈으로 맡는 향기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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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초 어느 일요일에 주일미사를 마치고 성당 출입구를 나올 때, 현관 앞에 진열된 노란 국화 화분 앞에 교우 한 분이 서 있었다. 나를 보고, 마스크를 벗고, 코를 자꾸 만지작거리더니, 코로나19 때문에 오랫동안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그런지 코가 이상해져서 전혀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며 걱정하고 있었다. 보기에 하도 딱해서 눈으로 맡아야 하는 향기를 코로 맡으면서 멀쩡한 코를 학대하고 있다고 했더니,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이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그때 국화에 얽힌 어느 친구의 일화가 떠올랐다. 몇 년 전 10월 말 어느 날이었다. 모악산 등산을 마치고 중인리 입구에 이르렀을 때, 친구는 갑자기 길가의 국화 옆으로 가서 한 송이를 꺾어들고, 코에 대고, 한껏 들이마시더니, 뜬금없이 향기가 없는 국화도 있느냐고 물었다. 틀림없이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쎄” 하고 머뭇거리자, 국화에 얽힌 사연을 털어놓았다. 어느 날, 그는 시내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꽃가게에 이르러 탐스런 노란 국화에 매료되어 발길을 멈추었다. 거실에 들여놓으면 온 집 안이 훤할 것 같은 생각에 화분 하나를 골랐다. 그걸 들고 집으로 들어가자 아내도 몹시 좋아했다. 그 다음 날 아침이었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러 나갔다가 들어온 아내는 다짜고짜 그 화분을 어디에서 샀느냐고 물었다. 문을 열면 집 안이 온통 향기로 가득할 거라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었단다. 혹시나 하고 꽃에 코를 대보아도 향기란 도무지 맡을 수 없었다. 향기가 없는 화분을 사왔다고 화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 향기가 나지 않는 국화도 있는지 알아보려고 코에 대고 확인하고 있었다. 가을꽃의 대명사인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한다. ‘심한 서릿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으로 국화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서정주 시인도 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의 애잔한 울음소리와 한여름 먹구름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천둥소리를 듣고, 또 차가운 가을의 무서리를 맞으며 피는 국화라야 진짜 국화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요즘 국화는 다르다. 노지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삽목으로 비닐하우스에서 양산되고 있다. 사시사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그 국화에서는 어렸을 때 맡았던 그 향기를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이나 물체가 발하는 일종의 독특한 냄새나 분위기, 또는 예술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아우라라 한다. 그런데 실물의 그것과 예술작품 속의 그것은 엄연히 다르다. 아무리 정교하고 똑같게 그리거나 만들어도 예술작품 속에는 담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실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함이요, 인간의 능력의 한계이다. 꽃의 아우라는 향기이다. 꽃을 모사한 그림이나 조화 등 작품 속에서는 그것을 맡을 수 없다. 그런데 꽃을 그린 작품을 보고 향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림 속에서도, 코로는 맡을 수 없지만,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향기가 있다는 뜻이다. 그게 예술작품 속 꽃의 아우라이다. 그것을 코로 맡으려는 행위는 무모하다. 화분 속의 국화도 마찬가지다. 그 꽃의 향기는 눈으로 맡는 향기이다.
/이희근 수필가 전주문협 이사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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