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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을 문학산책] 축제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11일
ⓒ e-전라매일
난 사과를 좋아한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사과를 통째로 들고 아삭 베어 무는 맛. 그것은
너무도 신선하고 근사하다. 사과를 먹는 일에 근사하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사과를 먹는 일은 어떻게 해도 근사한 일이다. 사과를 베어 물때마다 자신감이 생기고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아직은 내가 늙지 않았음을 느끼게 했고 감수성의 여전함도 알게 했다. 소녀 때 읽었던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속의 <숙희>가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므슈 리>를 향해 사과 씨를 떨구며 사과를 베어 먹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 것. 뭐 그런 것 말이다.
치과에 드나들던 어느 날부턴가 사과를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기운이 빠졌다. 그건 단순히 사과를 먹고 못 먹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치아가 부실해서 사과를 먹을 수 아니, 베어 먹을 수 없다는 건 나의 늙음을 인정하고 상큼한 일상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다. <치경부 마모증>이란 진단이 나왔다. 앞니와 잇몸이 닿는 여러 곳이 깊이 패어있었다. 의사는 패인 부분을 메우고 관리를 잘하면 된다고 몇 가지 주의를 줬다. 좌우로만 움직이는 칫솔질, 치아에 과도한 힘을 주는 습관, 치아가 산성과 자주 접촉하는 일, 주로 이런 걸 피하라고 했다. 꼭 사과를 먹지 말라는 얘기 같았다. 치료받는 과정이 고통스러워 사과를 정말 못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우울했다. 60이 넘은 나이에 사과 먹는 방법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내가 사과를 베어 먹을 수 있는 시간 들은 축제와 같다. 축제란 항상 설레고 들뜨고 가능하지 않은 것들이 가능해지는 시간의 회오리 같은 것 아닐까. 그래서 사과를 통째로 먹을 수 없다는 건 과장 되게도 내 젊음과 <젊은 느티나무> 속의 숙희가 함께 사라지는 치명적인 일이기도 하다.
마트에 홍로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사과는 예년보다 부실해 보였다. 그러나 대견했다. 유난한 날씨에 꽃필 즈음 코로나19에 밀려 사랑의 눈길도 못 받고, 긴 장마와 폭염으로 제대로 된 햇빛도 못 받았을 걸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태풍 속에서 온몸을 부대끼며 용케도 견뎠구나. 사과는 눈물겨웠다. 단맛을 모으려고 몸살을 했을 것이다. 난 사과를 정신없이 담았다. 치과 의사의 주의도 잊고 이것만이 나이 듦을 잊는 일인 양 봉투가 넘치도록 사과를 담았다. 아삭, 한입 베어 문 사과는 달고 시원했다. 고단한 날씨를 견뎌 낸 상큼한 단맛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사과를 베어 문 내 치아도 거짓말처럼 말짱했다. 사과를 먹을 수 있다는 황홀함에 치아가 어찌 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단단한 과육 속에 단맛을 감추고 내게 와 준 사과가 의연하고 눈부셨다. 사과를 먹으면서 신문을 읽고 텔레비젼을 보면서 아직은 사과를 베어 먹을 수 있는 내 씩씩한 치아에 감사했다. 그리고 사과를 먹을 수 없게 되는 날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오지도 않은 미래를 생각하다 중요한 현재를 놓치는 일이기도 할 테니까. 난 오늘도 아삭, 경쾌하게 사과를 베어 문다.

/최화경
前행촌수필 회장
現전주문협 회원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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