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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21회-최후의 만찬 8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16일
방울이가 봉하노송의 어깨 위에 걸터앉아 목말을 타고 만세를 부르는 사진이다. 이 사진은 2007년 9월 29일 청와대 본관 앞에서 찍었다. 당시 호걸은 가족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했다. 시기는 추석 명절 연휴의 뒤끝이고, 그 때 방울이의 나이는 네 살이었다.

봉하노송이 방울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 어디 한 두 장이랴. 그런데도 그가 이 사진을 액자에 담아 사저 안채 거실의 컴퓨터용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특별한 사연이 있을 법하다. 그가 첫 손주 방울이의 가장 예쁘고 귀엽던 순간이 바로 그 때라고 여겨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간 방울이와 함께 쌓아 온 수많은 추억 가운데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라고 여긴 것일까. 이 마저도 아니라면 앞으로 방울이가 큰 인물로 성장하길 소망하는 바람 때문일까.

겉어림으로 그 뒷면을 짐작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튼 봉하노송은 지독할 정도로 손주들을 사랑했다. 청와대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봉하마을에 내려와서도 그랬다. 봉하마을 사저를 찾아 온 방울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마실도 많이 다녔다. 두 발 자전거와 세 발 자전거를 각각 한 대씩 나눠 타고 봉하들판을 함께 내달리기도 했다. 그는 손주들에게 정말로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어머니, 방울이와 전화 통화를 한 번 해보실래요?”

호걸의 제안에 그미는 반색을 하면서 맥주잔을 들었다.

“그래 오랜만에 우리 방울이하고 통화를 좀 해보제이.”

“네, 어머니,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호걸이 핸드폰으로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폰이 켜진 영상통화로 전화가 연결됐다.

“어 여보, 지금 어머니랑 아버지랑 안채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머니가 방울이랑 통화를 하시고 싶다네.…”

잠시 뒤 호걸의 핸드폰 액정에 방울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방울아, 나 아빠야!”

“아빠, 저랑 아까 통화를 했잖아요.”

“그랬는데, 할머니가 우리 방울이를 무지무지 보고 싶다고 그러셔서 전화를 걸었는데, 방울아, 할머니를 바꿔 드릴테닌까 철없는 꼬맹이처럼 굴지 말고 의젓한 숙녀처럼 안부 인사부터 올려야 된다. 여섯 살이나 먹었으니 꼭 그렇게 해야 된다. 알겠지?”

“네, 아빠!”

방울이의 대답을 듣고 난 호걸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그미에게 건넸다. 방울이의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 액정에 벌써 그미의 얼굴이 떠오른 모양이다. 방울이가 먼저 그미에게 안부를 묻는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어 그래 우리 방울이, 할무니가 많이 보고 싶제?”
“네, 저도 할머니가 많이 많이 보고 싶어요!”

“그래 그래 고맙다.…”

방울이와 통화를 하는 동안 그미의 얼굴엔 화색이 만연했다. 방울이와 한참 동안 웃으면서 통화를 하고 난 그미가 봉하노송의 얼굴을 힐끔 쳐다본다. 그미와 방울이의 통화 내용을 귀담아 듣고 있는 봉하노송의 얼굴도 환하게 피었다.

“방울아, 이번엔 할아버지를 바꿔 드릴테닌까 통화 좀 해 보거레이!”

그미가 건넨 핸드폰을 봉하노송이 손에 들자마자 방울이가 할아버지에게 문안을 여쭌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어 그래 우리 방울이 잘 있제?”

“네, 엄마랑 잘 지내고 있는데요. 근데 할아버지, 왜 눈이 부었어요?”

“내 눈이 부었다캤나?”

“네, 할아버지 눈이 빨간 토끼눈 같은걸요.”

“내 눈이 빨간 토끼눈 같다고?”

“네.”

“어 그래 내가 맥주를 몇 잔 마셨더니, 술기운 때문에 눈이 그렇게 된 모양인데, 우리 방울이한테 이 할아버지가 토끼 노래 한곡 불러 줄까?”

“아 네 그 산토끼 노래요?”

“그래 그래, 산토끼 노래.…자 그럼 잘 들어 보거레이!…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산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서 올테야.…”

방울이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봉하노송은 속울음을 씹었다.

‘엉겁결에 방울이에게 동요 산토끼를 불러주다 보니 내 속이 더 뒤집히는구나. 그래 내일 아침 나는 혼자 집을 나서서 산으로 가야 된다. 나 홀로 인생의 마지막 고개를 넘어 가야 된다. 그 고개를 넘어가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다 집에 전해 줄지, 아니면 집안이 폭삭 망할지도 모를 재앙을 전해줄지, 그 뒷일은 내가 알 수 없다. 이런 판국에 우리 방울이에게 동요를 불러주다보니 몸속에서는 피눈물이 쏟아진다만 몸 밖으로는 쏟아낼 수 없다.…그래 우리 방울이 말이 맞다. 사실 난 울어서 눈이 부었고, 울다보니 마치 토끼눈 처럼 눈에 빨간 핏발이 섰을 것이다. 아직 철이 들지 않아 우리 방울이가 내일 아침 이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분간을 못하겠지만 방울아, 내일 엄마랑 동생이랑 아무 탈 없이 비행기를 타고 귀국을 해야 된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에 차를 타고 공항에서 봉하 사저로 올 때도 아무 탈이 없어야 된다. 방울아, 이 할아버지는 너를 무지무지 사랑한다. 그렇지만 미안한 마음 금할 수가 없구나. 네게 작별 인사를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는 점이 미안할 뿐이구나.…’

봉하노송은 손녀와 통화를 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계속)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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