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38회-오래된 생각이다 11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2월 21일
오월의 밤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봉하마을 뒷산에서 내려와 사저 앞뜰과 뒤뜰에서 살랑거리는 산바람도 칙칙한 어둠을 휘감고 있다.
이른 봄, 봉하마을 산천에서 하나 둘 씩 꽃망울을 터뜨린 봄의 전령사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짙푸른 꽃향기를 품고 있는 오월의 봄꽃들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 향기를 널리 퍼뜨릴 수 없다. 그렇지만 꽃은 결코 부는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실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바람이 몰아치면 몰아치는 대로, 바람새를 따지지 않고 제 향기를 바람에 맡길 뿐이다. 그러면서도 꽃은 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서운함이 있어도 가슴에 담아 둔다. 바람을 거스른다면 제 향기를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봉하노송이 봉하부인과 호걸이 마련한 거실의 술자리를 잠시 뜬 것은 갑자기 심해진 이명 때문이다. 앞뜰로 나온 봉하노송은 봄숨 예닐곱 모금을 들이마시며 낯익은 꽃향기를 발산하는 오월의 봄꽃들을 살펴보던 중 딸 호연의 미국 아파트 문제가 툭 비어져 나와 북문이 뚫리고 골병이 들기 시작한 내력을 더듬어 본 것이다.
봉하노송이 서성이고 있는 사저 앞뜰의 밤바람 속엔 찔레꽃 향기도 실려 있다. 그 꽃의 향기가 봉하노송의 몸 속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봉하노송은 심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찔레꽃의 지독한 가시가 코끝을 찌르더니 목구멍도 찌르고 갈기갈기 찢겨진 가슴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그래 모든 것이 내 탓이었다.’
봉하노송은 이런 자책을 하면서 어두운 하늘을 올려보았다. 초저녁에 보았던 개밥바라기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밤이 깊어가자 개밥바라기별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 터다.
‘나로 말미암아 벌어진 일인데,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리!…’
봉하노송은 이렇게 속말을 내뱉으며 박차대 회장의 돈 100만 달러가 몰고 온 엄청난 파문을 잠시 돌이켜 보았다.
지난 2월, 봉하노송은 박차대 회장의 돈 100만 달러의 존재를 알게 됐다. 유정상이 봉하부인에게 “박차대 회장이 돈을 건넨 사실을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사실을 먼저 전했다. 그 뒤 봉하노송은 그 사실을 알았다. 봉하노송의 추궁에 유정상이 이실직고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난 직후, 봉하노송은 봉하부인과 유정상에게 고성을 내지르며 화를 냈다. 그러다 탈진돼 제대로 말도 못했다.
기운과 맥이 되살아난 뒤로 봉하노송은 도덕적 책임을 통절하게 느끼면서 “차라리 내가 받았다고 인정해 버리는 것이 낫지 않냐?”고 여러 번 말했다. 그러면서 부부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하고 유정상 비서관이 형사상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봉하노송은 자신이 알고 있던 돈의 성격과 사실 관계가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지난 2월 탈진을 하던 날, 봉하노송이 유정상을 통해 전해 들었던 돈의 사용처는 봉하부인이 자녀의 유학비와 생활비 때문에 진 빚을 갚는데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봉하부인이 유정상에게 부탁을 해서 박차대 회장한테서 빌린 100만 달러는 미국에 머물던 호연의 집을 사려고 빌린 돈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난 뒤 봉하노송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봉하노송은 개인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 메이히로 정권의 수사를 정치적 음모로 보고 자신을 일방적으로 비호라는 글들이 올라오자 “그건 아니다. 책임져야 할 일이다.”고 생각했다.
호연은 2005년부터 남편 목서방 등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거주했다. 2007년 가을, 호연은 재미동포를 상대로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사들이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은 40만 달러였다. 한동안 호연은 잔금을 치르지 못했다. 지난 해 연말 말 중도금 지급독촉을 받았다.
지난 달 30일, 봉하노송은 대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그 날 봉하노송은 박차대 회장의 돈 600만 달러와 관련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박 회장의 돈 600만 달러엔 한 때 미국에 살았던 호연에게 아파트를 사주려고 봉하부인이 빌린 돈 100만 달러도 포함됐다. 검찰은 조카사위가 투자 명목으로 홍콩 계좌를 통해 받았다는 박 회장의 돈 500만 달러 등에 봉하노송이 연루됐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이에 대해 봉하노송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6차례 글을 올려 항변했다. “잘못은 잘못”이라면서도 “사건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자신의 책임은 도덕적인 범주에 속하며 법률의 잣대로 재단할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난 달 말, 봉하노송이 대검찰청 포토라인에 섬으로써 봉하노송과 검찰 사이엔 주사위가 던져졌다. 검찰은 방대한 자료로 봉하노송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진력을 다했다. 봉하노송은 자신을 압박하는 검찰의 칼끝을 피하기 위한 방어에 나섰다. 봉하노송 측은 “검찰 조사가 혐의를 벗을 기회”라고 여기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성실히 조사에 응했다.
봉하노송은 물론이고 남정청송 등 사저의 참모들도 법적인 책임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했다.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였고, 봉하노송과 박차대 회장의 진술이 엇갈리는데다 박 회장의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도 없었기 때문이다. 봉하노송의 검찰 출두 때, 박 회장이 대질심문에 참여하겠다는 확인서를 썼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사저 참모들은 박 회장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것이야 말로 박 회장이 검찰의 거미줄에 걸린 나비 같은 처지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여겼다. (계속) |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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