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봉하노송을 소환해서 조사를 마친 지3주가 지났다. 봉하노송은 자신이 대검찰청에 출두한 것으로 모든 조사가 마무리 되길 바랐다. 다만 검찰이 돈의 사용처를 밝히기 위해 봉하부인을 재조사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는 상태다. 사저 앞뜰에서 박차대 회장의 돈 100만 달러가 몰고 온 엄청난 파문을 돌이켜 보던 봉하노송의 머릿속엔 딸 호연과 사위 목서방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 호연에 비해 목서방은 어렵게 성장했다. 그는 평범한 집안 출신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편모슬하에서 성장했다. 학창시절에 그는 본인의 학비와 용돈을 벌었다. 서울대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뒤 서울대 법학대학원에 다녔다. 재학 중 제33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변호사로 활동했다. 목서방과 호연이 결혼한 것은 봉하노송의 대통령 취임 직전이다. 2003년 2월이다. 신혼 초, 목서방의 변호사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현직 대통령의 사위라는 유명세 탓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명세는 그의 변호사 생활에 큰 장애가 되었다. 대통령의 사위라는 유명세는 그의 자유로운 삶의 걸림돌이 되었다. 대통령 사위라는 신분이 그에게는 꼬리표나 다름없었다. 2005년, 목서방은 미국으로 떠났다.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아내와 큰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 간 그는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 뒤 미국의 대형 로펌에서 근무했다. 목서방과 호연 사이에 둘째 딸이 태어난 것은2006년의 일이다. 봉하노송과 목서방의 관계는 분명한 장인과 사위의 관계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반적인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아니었다. 장인인 봉하노송이 현직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목서방은 장인 봉하노송을 ‘어르신’이라 불렀다. 목서방은 결혼 후 지금까지 장인과 술 한 잔도 나눠 마신 적이 없다. 목서방은 결혼 후 약 7년 동안 장인인 봉하노송과 전화통화를 거의 한 적이 없다. 딱 한 번 전화 통화를 했다. 엊그제의 일이다. ‘사위가 고우면 요강 분지를 쓴다.’는 속담이 있다. 사위는 처가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렇듯 사위는 처가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기 마련인데 목서방은 처가에서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장인인 봉하노송과 장모인 봉하부인이 일부러 그런 대접을 한 것은 아니다. 결혼 직후부터 장인은 대통령이었고, 장모는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탓이다. 특히 장인인 봉하노송이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를 철저하게 할 수 밖에 없는 터라 외동딸 호연은 물론이고 사위인 목서방도 수형생활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세월이 무려 7년째다. ‘요즘 목서방의 가슴이 얼마나 무겁고 미어질까?’ 사저 앞뜰의 주방 근처에서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며 봉하노송이 이렇게 속말을 내뱉었다. 30분 전 봉하노송은 호연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요즘 호연이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온몸으로 느꼈다. 봉하노송은 사위 목서방의 고통도 호연이 감당하고 있을 고통 못지않게 심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목서방은 한창 혈기가 왕성한 사내다. 한 집안을 이끌어가고 있는 가장이다. 그렇기에 목서방은 결혼 이후, 처와 자식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컸을 것이다. 그러던 중 낯선 이국땅에서 자신이 처자식과 함께 살아야 될 아파트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아내가 박차대 회장의 돈 100만 달러와 연계됐다.물론 아내 호연이 그 돈을 박차대 회장한테 직접 빌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신과 처자식이 머물러야 될 미국의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해서 가장인 목서방의 심적 고통은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점을 봉하노송이 모를 리 만무하다. ‘목서방 정말 미안하네. 같은 남자로서, 같은 가장으로서, 같은 법조인으로서, 요즘 자네가 겪고 있을 고통을 내가 왜 모르겠나. 사위도 자식이고, 장인도 부모인데, 자네와 내가 천륜을 맺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입때까지 마주 앉아 정겹게 술 한 잔 나누지 못했고, 내 생전에 자네한테 전화 통화를 한 것은 엊그제가 딱 한 번이었네. 어찌 이것이 장인과 사위의 관계란 말인가. 자네와 나의 사이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내 탓이네. 내가 전직 대통령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무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네. 자네 장모가 박차대 회장의 돈 100만 달러를 받아서 자네식구들이 살 집을 사주려다 참으로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네만 결코 미안해하거나 결코 좌절도 하지 마시게. 이 일은 자네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니라 모두 나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네. 염치없이 내가 오늘 부탁 하는 것은 부디 내 딸 호연이와 백년해로 하시고, 우리 외손녀들 건강하고 바르게 클 수 있도록 해주시게. 목서방! 난 자네를 믿네. 자네는 훌륭한 가장, 훌륭한 변호사가 될 것이라고 난 믿네. 그리고 사돈 어르신 잘 모시기 바라네.’ 봉하노송은 이렇게 사위 목서방과의 영원한 작별인사를 했다. 그런 다음, 거실 앞 앞뜰 바닥에 놓여 있는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버린 뒤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아버지, 어디 가셨다 이제 오십니까?” 터벅터벅 거실로 들어서는 봉하노송을 향해 호걸이 물었다. 아직도 거실 소파 앞에 마련된 술자리는 끝나지 않았고, 호걸과 봉하부인은 거나하게 취한 상태다. “어,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앞뜰에 있다 들어왔다.” 호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며 봉하노송은 뒤뜰 쪽 소파에 앉았다. “어머니! 제발 걱정 마세요. 메이히로는 더 이상 저희를 공격할 수 없다구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