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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42회-오래된 생각이다 15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3월 10일
ⓒ e-전라매일
“글쎄다. 내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봉하노송이 이렇게 대답하자 호걸은 눈길을 돌려 봉하부인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도 기억 나지 않으세요?”
“글쎄, 내도 기억이 없다.”
봉하부인 역시 기억이 없다고 말하자 호걸은 속이 타는지 맥주 한 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때 아버지가 안방에서 훌쩍훌쩍 우시는 것 같아서 저는 가슴이 너무너무 아팠는데요. 집에 찾아오신 손님들 앞에서 제가 말썽을 부린 것이 속상해서 우셨는지, 아니면 어린 저를 때리신 게 마음이 걸려서 우셨는지, 분간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안방에서 아버지가 서럽게 우시는 것 같아 왠지 제 마음이 아프고 쓰려서 한참 동안 엉엉 울다가 외할머니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거든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그러는지 호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돌았다. 호걸의 눈에 가득 찬 눈물을 바라보는 봉하노송의 눈가에도 눈물이 촉촉하다.
봉하노송과 호걸이 부자지간이라는 천륜을 맺은 지 올해가 37년째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봉하노송이 호걸 앞에서 매를 든 횟수는 몇 차례 안 된다. 모두 호걸의 유년기에 벌어진 일이다. 번번이 사랑의 매였다.

‘호걸아! 아직은 내가 너에게 속으로라도 작별 인사를 할 때가 아니다. 지금 내가 너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된다면 난 당장 피 울음을 쏟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직 너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미안하다, 우리 아들 호걸아!…’
봉하노송은 왁 쏟아질 것 같은 속울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술잔을 들었다. 맥주가 반쯤 남아 있는 술잔을 비웠다.
“저기 아버지, 물어볼 게 또 있는데요. 이번엔 최근의 일이니 아버지 생각을 말씀해 주실 수 있을 겁니다.”
호걸이 맥주병을 들고 “한 잔 더 하시라!”고 권하며 물었다. 봉하노송이 잔을 내밀었다. 속울음을 꾹꾹 참고 있는 터라 봉하노송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제가 보기에 아버지는 진보와 미래라는 책 저술 작업을 정말 열정적으로 추진하셨거든요. 근데 왜 최근에 그 작업을 갑자기 중단하셨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네요?”
이 질문에 봉하노송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봉하노송은 내일 이른 아침 부엉이바위에 오르려고 남몰래 은밀한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혹시 호걸이 그 낌새를 알아차린 것이 아닌가 해서 봉하노송은 정신이 난 것이다.
“아버지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틈틈이 책도 읽으시고 메모지에 메모도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진보와 미래 저술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진하시는 걸로 판단했습니다. 근데 엊그제부터는 아예 책도 읽지 않고 메모도 하지 않으셨거든요. 왜 그러셨는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대답을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호걸은 그 이유가 뭔지를 캐내기 위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태도다. 평소의 주량을 넘는 술을 마셔 정신이 알큰하련만 그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 마치 이 질문을 하려고 오늘 밤의 이 술자리를 그가 의도적으로 마련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지난달 30일, 대검찰청에 다녀온 뒤로 봉하노송은 집 밖으로 외출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감옥이나 다름없는 사저에 갇혀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없었다.
봉하노송이 지난해 10월에 시작한 저술 작업이 있다. ‘진보의 미래’라는 책이다. 부제는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다. 주제는 ‘민주주의 연구’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이 책의 저술 작업에 매진했다.
저술 작업을 시작하면서 봉하노송은 비공개 카페를 열어 온라인 집단 협업을 시도했다. 이 작업엔 참여정부 시절에 청와대와 내각, 그리고 국정과제위원회에서 일했던 학자 30여 명이 참여했다.
지난해 연말, 봉하노송의 둘째 형 편백 씨가 구속됐다. 그 일을계기로 봉하노송은 사저 밖 만남의 광장에서 방문객들을 만나는 일도 중지했다. 사저 안까지 찾아오는 일반인과의 접견도 거의 끊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진보의 미래’ 저술 작업에 참여하는 학자들을 사저로 불러서 모임을 열었다. 모임의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사저로 찾아온 학자들과 모임을 할 때면 봉하노송은 신명이 났다. 잔뜩 구겨져 있던 얼굴은 환하게 펴졌다. 모임을 앞두게 되면 며칠 전부터 밤잠을 설쳤다. 가슴이 부풀어 오를 정도까지 북받쳐 일어난 흥분 탓이었다.
모임을 앞둔 봉하노송은 열심히 공부했다. 깊은 사색도 했다. 책을 읽고 메모를 하면서 꼭두새벽까지 모임을 준비했다. 모임에 참석해서 열띤 토론을 마친 뒤 학자들이 사저를 떠날 때면 봉하노송은 “월급은 못 주어도 차비는 드릴테니 자주 오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자들에게 차비를 준 적은 딱 한 번 밖에 없다.
메이히로 정권이 밀어붙인 박차대 게이트 정국의 최종 과녁은 봉하노송이다. 봉하노송의 면전으로 검찰의 화살촉이 날아들자 ‘진보의 미래’ 저술 작업도 지지부진해졌다. 모임을 위해 사저를 방문하던 학자들의 발걸음도 뚝 끊겼다.

“진보의 미래 저술 작업에 참여하는 학자들과 이 사저에서 가끔 가졌던 모임은 지난달 중단됐다. 사저를 찾아오던 학자들의 발걸음이 뚝 끊긴 이유는 내가 자세하게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니도 잘 알고 있을 것 아이가?”
봉하노송이 이렇게 묻자 호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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