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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43회-오래된 생각이다 16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3월 17일
ⓒ e-전라매일
봉하노송은 거들뜬 호걸의 눈을 응시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호걸아!”
“네, 아버지!”
“진보와 미래 저술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온 긴 세월을 돌이켜보니 말짱 도루묵인 것 같아 작업을 시작했다.”
“아니 아버지, 뭐가 말짱 도루묵이라는 건가요?”
“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를 니도 잘 알 것이다. 그래 가난하고 억눌린 노동자들을 돕겠다고 소박하게 뛰어 들었던 것이 내 정치 인생의 시작이었다. 근데 20년 정치 인생을 돌아보니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 온 것 같드라.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그 자리였다.”
“그럼 대통령에 왜 도전하신거죠?”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꾼 지도자가 되려고 대통령에 도전했다. 근데 대통령에 도전한 것은 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다. 내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라고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다.”
“아버지!”
“말 해보거레이!”
“어린이 날 다음날인 지난 6일이 제 생일이었잖아요.”
“미안타.”
“뭐가 미안하시다는거죠?”
“니 서른여섯 번째 생일인 줄 알면서도 그날 생일을 챙겨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타.”
“집안 사정도 어려운데 제 생일이 무슨 대수라구요?…”



호걸의 말을 귀담아 들으며 봉하노송은 술잔에 입술을 댔다.
“제 생일날요. 서재에서 아버지가 적어 놓으신 메모지를 슬쩍 훔쳐봤는데요. 저술 작업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하시려고 글 초안을 적어 둔 메모지를 살펴보면서 사실 저는 한참 동안 울었거든요.”
열엿새 전인 지난 6일, 봉하노송이 ‘이제 제가 더 끌고 가기는 어려울 것 같지요?’라는 제목으로 ‘진보의 미래’ 저술 작업에 참여했던 학자들에게 안내문을 띄웠다.
‘막상 시작을 해놓고 보니 제겐 벅찬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름값으로 어떻게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억지를 부렸는데, 이젠 한계에 온 것 같네요. 자책골을 넣은 선수는 쉬는 것이 도리일 것이고, 또 열심히 뛴다고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젠 제가 이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끌고 갈 수는 없을 것이고요. 글이나 자료를 보다가 생각이 나면 자료를 올려 보겠습니다. 이 연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않고는 버티기가 어려워서 하는 일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10월 어느 날, 봉하노송은 몇 명의 참모들을 사저로 불렀다.
“오늘 내가 여러 분을 모신 것은 다름 아닙니다. 좋은 책을 한 번 내 보고 싶습니다. 내가 써보고 싶은 책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 사회 공론의 수준을 높일 책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사에 길이 남을 책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진보의 미래’ 저술 작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저술 작업을 시작하며 봉하노송은 남다른 각오를 다졌다. 그는 물러난 권력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무엇인가 뜻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봉하노송은 이 저술 작업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 작업에 참여하는 30여 명의 학자들이 저마다 바쁜 사람들이어서 그는 특별한 연구방식을 택했다. 비공개 연구카페를 활용한 인터넷 집단 협업이었다. 이 협업을 위해 컴퓨터 시스템을 몸소 개발했다. 시스템 구축 후엔 그 역시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연구를 하며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다.



봉하노송은 저술 작업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때론 밤잠을 설쳤고, 때론 사저에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물리치면서 연구에 매달렸다.
작은 형 편백 씨가 구속되고, 박차대 회장이 구속되었던 지난 해 겨울, 봉하노송의 ‘진보의 미래’ 저술 작업은 기로에 섰다. 그렇지만 이때부터 그는 저술 작업에 더욱 매진했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독서와 사색과 글쓰기에 매달리며 묵묵히 고통의 시간을 견뎠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조차 힘들어진 상황에 이르렀다.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며,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위해 진보주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국민들이 먹고살기에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일까? 특히 힘없는 보통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 일까?…’
봉하노송이 며칠 전까지 깊이 몰입했던 연구 주제다.
“아버지!”
연거푸 술잔을 비운 뒤, “아버지!”를 부르는 호걸의 목소리는 떨렸다.
“말을 해보거레이!”
“사실은 제가요. 틈틈이 서재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읽으시는 책도 몰래 살펴보구요. 여러 가지 색상의 포스트잇에 적어서 책갈피마다 끼워 두신 각종 메모를 몰래 살펴보았는데요. 아버지! 왜 엊그제부터는 책도 잃지 않으시고, 메모 작업도 멈추셨냐구요? 흐으윽!…”
호걸이 북받치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흐느끼자 봉하노송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쏟아지는 속울음을 삼키는 모양이다.(계속)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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