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벽골제 오거수문(五渠水門)이 확인되다
민선 8기 국내 최초 석재수로, 수여거 및 유통거 확인
박수현 기자 / 입력 : 2024년 06월 25일
김제 벽골제(이하 벽골제)는 1,700여년간 김제 만경평야의 터주로 한반도의 농경문화를 대표하였다. 문헌에 따르면 삼국시대 축조되어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까지 저수지 제방으로 이용되었고, 일제강점기인 1927년부터 2022년까지 약 100여년 동안 저수지 제방에서 농업용 간선수로로 용도 변경되어 김제만경 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였다. 동고서저의 충적평야인 김제평야의 병목에 설치된 벽골제 제방의 토목적 특징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은 제방에 설치된 수문, 오거수문(五渠水門)이다.
” 중수비에, 군의 남쪽 15리쯤 큰 둑이 있는데, 그 이름은 벽골이다. -중략- 장생ㆍ중심ㆍ경장의 세 수문의 옛날 돌기둥을 보수하였고, 수여와 유통의 두 수문은 돌을 쪼개어 주춧돌로 삼고, 느티나무 기둥을 세웠다. -중략- 수여와 유통의 두 수문은 파도가 치는 곳은 아니지만, 만약 물이 범람하여 이곳으로 새어 흐르면 물을 막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두 수문의 양쪽에다 돌을 깎아 주춧돌로 삼아서, 그 위의 느티나무 판으로 다리를 만들어 왕래하도록 하였다”
위 기록은 조선 태종 15년(1415년)에 세워진 벽골제 중수비(重修碑)의 내용으로 조선 초기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김제군 조에 실려있다.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벽골제 수문은 총 5개이며, 각 수문마다 고유의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그 중 중심부의 세 개 수문인 장생ㆍ중심ㆍ경장거 수문과 양단의 두 개 수문인 수여ㆍ유통거는 형태와 기능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헌기록을 토대로 김제시는 1975년 장생거와 경장거 수문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2012년부터 2016년에는 중심거 수문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였다. 이후 2기의 미확인 수문을 찾기 위한 다양한 학술연구를 추진했다. 지형분석, GPR(지하투과레이더)탐사, 문헌 및 구술조사, 시굴조사 등을 통해 수여거와 유통거의 수문의 위치를 특정하였고, 2023년 발굴조사를 통해 두 개의 미확인 수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동안 불분명했던 김제 벽골제 오거수문(五渠水門)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중심부 3개 수문과 양단의 2개 수문의 형태적 차이를 발굴 현장의 석재수로 유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로소 문헌 기록과 실제 현장이 부합됨과 동시에 현존 2.5km의 문화유산에 국한되었던 제방 거리도 현 문화유산으로부터 1.3㎞ 북쪽에 위치한 수여거 수문지를 통해 약 3.8km로 연장되었다. 더불어 중심의 세 수문과 양단의 두 수문의 형태, 구조, 기능의 차이를 비교분석하여 제방의 물관리시스템에 대한 정밀한 이해와 상해 지단원 원대 수갑유적과의 상관성, 그리고 정조시대 운영되었던 만석거 수문구조와의 비교분석 등 고대 제방 수문구조라는 수문학 분야에 대한 후속연구 과제도 도출되었다.
김제시에서는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수여거 조사지역 일원을 문화유산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 중에 있다. 문화유산구역 지정은 2024년 6월 4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였으며, 국가유산청 심의가 예정되어 있다. 정성주 김제시장은“김제 벽골제는‘오천년 농경문화’로 통칭되는 우리 문화 정체성의 물리적 상징으로 김제, 전북특별자치도,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한반도 내 가장 독보적인 산업유적으로. 국가유산을 넘어 세계유산으로 가치를 확장할 수 있도록 가치발굴과 보존정비에 관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 밝혔다. |
박수현 기자 /  입력 : 2024년 0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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