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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칼럼

운과 기도와 전문가를 넘어서

운과 기도와
전문가라 불리는
소수의 조언이 아닌
선명한 증거가 그려낸
밑그림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꼼꼼하게
그려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19년 04월 10일
ⓒ e-전라매일
중대사를 앞두었을 때, 입시, 취업, 승진, 결혼, 내 집 마련, 자녀 출생 등의 갈림길에서 당신은 답답함과 두려움과 설렘을 어떻게 해소하는가? 우리는 주변 사람에게 호소하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며, 운세를 점치기도 한다. 담담하지 못한 것 같아 혹은 합리적이지 못한 것 같아, 남의 의견을 빌렸다고 기도했다고 혹은 점을 봤다고 말을 꺼내기 어려운가?
운을 점쳤든 기도를 했든 누군가의 조언을 취했든, 결국 당신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선택을 해왔을 것이다.
국가도 그래왔다. 갑골문으로 점을 치기도 하고,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기도 했다. 고심을 거듭한 국가 공동체의 결정이 과연 기대한 효과를 가져다줄지 불안했던 것이다. 운을 점치고, 지도자의 기도를 통한 확신과 안도감으로 위기를 돌파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일 것이라는 신념을 담아 다양한 제도를 설계해 내며 오늘을 맞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오늘을 규율하는 다양한 제도들은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지는 못하다. 그러나 누구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비합리적인 정책의 문제점을 꼬집지 못한다. 증거가 불충분하므로. 정확히는 편재된 정보를 종합하여 우리가 사는 제도의 틀이 얼마나 합리화·과학화될 필요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와 마주할 용기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행정학회(American Society for Public Administration; ASPA)는 지난 3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 동안 워싱턴(Washington D.C.)에서 8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었다. “공공서비스 발전을 위한 행동 촉구(A Call For Action: Advancing Public Service)”를 주제로, 공공재정(public finance), 사회기반시설(infrastructure), 사회적 형평성(social equity),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 글로벌 행정(global public administration) 분야별로 학생, 교수, 공무원 등 전 세계에서 날아온 연구자들이 다양한 연구를 발표하고 토론하였다.
필자는 2019년 ASPA 학술대회 중 증거기반정책수립위원회(U.S. Commission on Evidence-Based Policymaking; CEP)의 업무 성과와 개선 방안에 대한 “기획, 연구, 정보 확산을 통한 사회적 형평성 강화 방안” 세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CEP는 2016년 발효된 「증거기반정책수립위원회법(Evidence-Based Policymaking Commission Act of 2016)」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법은 정책 집행 과정에서 축적된 행정데이터를 활용하여, 정책의 추진 방식과 성과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출발하였다.
CEP의 임무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정책의 효과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구축하기 위한 데이터의 가용성을 높이는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다.
CEP는 200여개 연방기관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면담, 서면조사 등 다각적인 분석을 실시하여, 2017년 『증거기반 정책 수립을 위한 제안(The Promise of Evidence-Based Policymaking)』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보고서는 “확실한 증거가 효율적으로 생성되고 정부 운영에 적용되어, 효과적인 공공정책 구축에 활용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다.
CEP는 보고서에서 행정데이터에 대한 접근성 확대, 개인정보 보호 강화, 증거 생성 및 활용 역량 확보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제시하였다. 2017년 10월, CEP의 권고사항을 실행하기 위한 「증거기반정책법(Foundations for Evidence-Based Policymaking Act of 2017)」이 의회에 제출되었고, 2019년 1월부터 발효되었다. 이 법은 미국 역사상 가장 포괄적인 데이터 개혁이자, 증거에 기반한 정책 결정을 위한 “엄청난 시도(enormous step)”라고 평가받고 있다.
물론 엄청난 “시도”에 그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집행함으로써 능동적으로 국가의 미래를 그려나가겠다는 의지는 높이 사야 한다. 흩어져 있는 행정데이터를 묶어 정책이 목표했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원인을 짚어내는 것만으로도 국가의 인식과 경험의 장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엄청난” 시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 “행복e음”을 도입하였다. 행복e음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행정데이터를 통합하여, 사회복지 수혜자 정보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행복e음의 도입은 업무처리 간소화, 신속하고 정확한 소득-자산조사, 부정·중복 수급 차단을 통한 재정 절감 등을 가능케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엄청난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국회와 정부가 한걸음 더 나아갈 때이다.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 퍼즐 조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것을 모아, 운과 기도와 전문가라 불리는 소수의 조언이 아닌, 선명한 증거가 그려낸 밑그림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꼼꼼하게 그려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채정 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19년 0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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