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시인의 눈] 이청득심以聽得心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1년 07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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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모임 자리에 다녀와서 까닭 없이 우울할 때가 더러 있다. 가만히 되짚어보면 뭔가 말을 많이 했던 날이 그런 날이다. 가만히 한쪽에 앉아서 있는 듯 없는 듯 앉아 있다가 온 날은 그런 날대로 씁쓸하고, 말을 많이 한 날은 에너지의 소진에서 오는 피로감은 물론이고 쓸데없이 벌거벗겨진 남루한 나를 자책하면서 우울해진다. 더군다나 어쩔 수 없이 다수의 사람에게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짧은 알음알이를 전해야 하는 역할이 내게 와서 그들의 귀한 시간을 쓸 때는 무거운 책임감과 충족하게 갖추지 못한 미안함으로 더더욱 마음이 무겁다. 삶의 지혜는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말을 많이 하게 되면 그중에는 쓸데없는 말이 많기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능란한 말재간보다 상대의 말에 귀를 열어주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며, 말을 신중히 하라는 경계의 말일 테지만, 청중을 사로잡을 만한 말주변은커녕 이 나이 먹도록 여전히 낯가림을 하는 편인 나로서는 어떤 자리에서 대화의 중심에 서는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다. 해박한 지식과 유머까지 곁들여 좌중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사람에겐 괜히 기가 죽기도 한다. 그러나 능란한 언변이나 화려한 몸짓과 웅변보다는 다소 어눌하더라도 진중한 몸가짐과 꼭 필요할 때 넌지시 몇 마디 얹어주는 조언이나 첨언이 훨씬 매력 있고 신뢰가 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어떤 사람이 몹시 화가 나는 일이 있거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어서 말문을 열었을 때, 자기 기준에 무게추를 놓고 어쭙잖은 훈수를 두거나 도덕군자 인양 가르치려 든다면, 마음을 얻기는 고사하고 반감을 사거나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말없이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 아닐까.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뭔가 못마땅해서 누군가에게 불편한 속내를 드러낼 때는 옳고 그름을 판단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힘이 들고 속이 상하니 내 편을 좀 들어달라는 신호인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또 다른 누구이든. 얼굴을 마주 보며 귀 기울여주는 일,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일, 어깨나 등을 토닥여 주는 일... 백 마디의 말보다 더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 참 단순한 몸짓이다. 이청득심 ~ 상대방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 주는 데서부터 마음의 길은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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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1년 07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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