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2-9)] 할머니의 눈물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5월 28일
새는 공기의 저항이 있어야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듯 삶에 도 저항이 필요하다. 그러나 저항이 필요치 않은 경우도 있다. 숲속에서는 숲을 볼 수 없고 물속에서는 바다를 볼 수 없듯 낙樂에서 낙을, 행복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물 밖에 나와야 푸른 바다를 볼 수 있고 숲을 벗어나야 숲을 볼 수 있다. 하면, 낙은 불행에서 오고 행복은 고난에서 비롯되지 싶다. 며칠 전 교회당에 갔다. 내 앞에 앉은 할머니가 눈물 콧물 범 벅이 된 채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계속했다. 칠순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의 깊게 파인 주름의 연륜만큼 지금쯤은 삶 을 자유롭고 기쁘게 살아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누가 할 머니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가슴이 아팠다. 죄에서 사함 받 아야 할 사람이라 해도 무슨 죄를 얼마나 많이 지었기에 빌고 또 비는지 안타까웠다. 삶은 행동의 연속이기 때문에 곧 사건의 연속이다. 산다는 것 은, 살아 있다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연 속선상에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 냐이다. 사업의 실패,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기에 짓는 허물들이 삶의 여정 속에서 소음을 내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선 안 되고 ‘내 인생은 왜 이럴까’라는 불행의 잣대를 들이대면 댈수록 고통 속에서 헤 어 나올 수 없다. 나는 한때 신학에 관련된 서적을 뒤지며 나름의 보수적 편식 을 꽤 긴 세월 동안 한 적이 있다. 그때, 사유의 고립으로 나 자 신과 주변을 참 힘들게 한 기억이 있어서 할머니의 모습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종교의 출현 이전에는 오직 구전신화만 있었으나, 구전신화 가 문서화된 이후 경전이 종교가 되어 제도화되는 순간, 진리는 제도에 묶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제도 속에서 빌고 또 빌고 우 는 것이리라. 루터는 가톨릭의 기존 제도의 잘못된 점을 바꾸고 자 종교개혁을 하였지만 그 성령주의 또한 새로운 제도에 감금 되어 버렸으니, 저 할머니는 분명 피해자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석가가 다녀간 후로 불경이 쓰이고, 예수가 온 후로 신약성서가 만들어졌다. 경전에 의한 제도가 없었다면, 아마 할머니는 자기 의 죄 사함을 위해 울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석가는 당신이 죽으면 불에 태워 재가 남으면 물에 버리고 아 무것도 남기지 말라 하였다. 그 이유는 무덤이 남아 있으면 절 하게 되고 인간의 평등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절간을 지 어 절하는 것이나 교회에서 죄 사함만을 비는 일이나 다를 바 없으니 지독한 동병상련이지 싶다. 그런데 도대체 뭘 용서해 달라는 걸까. 이런저런 모습의 허물, 즉 사람이 지은 죄일 것인데, 그 죄라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행 위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결국 행위를 용서해 달라는 말인데 그게 가능한 일인지 싶다. 왜냐하면 행위는 지구라는 연극무대 에 각각의 역할로 와서 연기하는 것일 뿐이며, 허물은 진리를 찾 는 시청각 교재로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떻게 회개 해야 한단 말인가. 사는 동안 짓는 허물은 그림자와 같은 것이므로 사는 사람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허물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수단이 금강 경이고 산상수훈이 아니겠는가. 이 경전 속에 숨겨진 의미를 토 대로 신을 발견해 내는 것이 신앙이고 종교일진대 무엇을 회개 하며 울어야 한단 말인가. 예배가 끝나갈 무렵, 눈물을 그친 할머니가 고쟁이 속을 더듬 거린다. 속곳 안쪽에서 힘겹게 꺼낸 꼬깃꼬깃한 만 원 지폐를 연 보함에 넣는다. 용돈을 쓰지 않고 긴 시간 간수해 온 듯했다. 이 상황을 예수가 지켜본다면 무어라 할까. 아마도 “할머니, 그 돈 으로 맛난 거 사드세요.”라고 하지 않았을까. 예배당을 나온 발걸음이 무거웠다. 할머니는 새처럼 저항이 필요치 않고 저항할 수도 없다. 자신에게서 조금 물러나 자신을 돌아볼 기력도 없는 나이다. 날카로운 종교의 문제이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아무런 사랑의 말도 건네지 못한 마음이 아직도 짠 하다.
/배귀선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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