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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세상을 살아가자면 돈은 필요불가결한 필수조건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돈 없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혈안이 된다. 옛날에는 농산물 소출에서 돈이 나왔기 때문에 만석지기, 천석지기로 부르며 아무개 땅을 밟지 않으면 특정지역을 지나갈 수 없다는 말로 부의 크기를 말했다. 경제의 주체가 오직 농사의 수입에 달려있을 때가 지나가고 다양한 경제방식이 터져 나오면서 이제는 농업의 비중은 극히 미약해졌다. 그래도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도시와 농촌은 분리되어 있어도 땅에서 생산되는 기초적인 소출품은 모든 인간이 먹고사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부자가 기부를 통해서 명성을 얻은 사람은 제주도의 김만덕과 경주 최부자다. 김만덕은 본토와의 상거래에 눈을 떠 거상으로 성장했다. 때마침 제주가 흉년이 들어 모든 도민이 굶어죽게 되었을 때 쌀 오백석을 풀어 살려냈다.
이 사실이 왕실에까지 알려져 감동한 왕 정조는 제주목사를 통해 김만덕의 소원을 묻는다. 궁궐구경과 금강산에 가고 싶다는 소원은 왕을 알현까지 하는 은덕으로 풀어졌다. 경주 최부자는 해마다 기근이 들 때에는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쌀을 풀어 굶주림을 면하게 했다. 이 외에도 많은 부자들이 긍휼심을 발휘하여 굶음에서 살려낸 일화는 부지기수다. 단군 이래 넉넉하고 풍요롭게 살아본 일이 없는 우리나라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초근목피로 연명해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농토와 곡식까지 빼앗기고 전쟁의 총알받이로 끌려갔다. 광복 후 비록 분단되기는 했지만 남한정부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취시키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국가에 비상사태가 발생하거나 올림픽 등 국제적 대행사에는 거금을 기부하여 국가와 국민에게 기여한다. 그런데 요즘 언론을 통하여 알려진 부영그룹 이증근회장의 기부는 좀 색다르다.
그는 전남순천시 서면 운평리 죽동마을에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 초 중 고를 모두 마친 후 건국대 1학년 때 4.19혁명을 맞이하여 선배들을 따라 열혈시위자가 되었다. 대학졸업 후 건설업에 뛰어들어 기반을 닦았다. 때마침 아파트 건설경기를 타고 임대아파트에 착수하여 사업을 키웠다. 사업운과 아이디어에 힘입어 부영건설회사는 어느덧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의 기부는 소리 소문 없이 전국의 고등학교에 기숙사를 지어주는 것으로만 알려졌다. 남들이 눈 여겨 보지 않는 교육투자로 학생들의 대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요즘 그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 순천 죽동 6개 마을에 거주하는 280명에게 거주기간에 따라 2600만원에서 5단계로 1억원까지 계좌입금 기부를 행했다. 마을을 떠나지 않고 지켜준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란다.
초 중학교 동창생 80여명에게는 1억원, 순천고 동창생에게는 5천만원씩 입금했다. 군 동기생과 친인척 그리고 주변 어려운 지인들에게도 빠짐없이 격려금을 기부했다. 그가 차별 지급하는 기준은 발표된 바 없지만 그만의 확고한 소신에 따른 것이리라. 지금까지 이중근회장이 아무 조건 없이 기부한 총액수는 대략 1조4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대단하다. 이를 보고 어떤 칼럼니스트가 온라인에 올린 글을 통하여 “좌경화 세력과 불철주야 대치하고 있는 보수세력과 탈북자 단체에도 통 큰 기부를 하면 어떨까?”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중근의 알려진 기부행위는 철저히 교육기관과 개인적인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다. 정치적 색깔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옳은 판단으로 보인다. 기부자의 뜻에 모든 것을 맡겨야지 뒤나 옆에서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것은 기부의 참 목적과 유리될 수 있음을 염려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