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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숨은 그림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2월 18일

배귀선
시인

여린 벼 잎이 굵어지는 6월. 간재 선생의 숨결을 따라 계화도 界火島 들판 길을 지난다. 도로에 서 있는 전봇대가 차일 기둥처 럼 하늘을 떠받치고, 전깃줄에 앉은 참새는 햇볕이 따가운 듯 물 잡은 논으로 연신 자맥질을 한다.
부안 창북리에서 간재 선생 유지가 있는 양지마을로 가는 계 화 들녘에는 가로수가 없다. 응당 가로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회색 전신주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것은 벼 수확기에 한 톨이 라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농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서리하는 참 새의 쉼터를 미리 차단한 결과이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1차 간척사업에 이어 3공화국 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두 번째 간척사업이 진행된 곳이다. 그 러니까 1970년대 돈지에서 계화도를 거쳐 동진까지 둑을 막아 지금의 계화들녘이 만들어졌다.
당시, 정부는 섬진강 수몰민을 이곳으로 이주시켜 보상책으 로 계화 간척지를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염분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 당시, 간척지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한숨은 갯벌에 서린 염기처럼 하얗게 쏟아졌다. 배고픈 그들에겐 당장 끼니 걱정이 태산이었을 터, 시름에 젖은 수몰민들은 애물단지 같은 논을 윷판에서 막걸릿값에 넘겨주거나 외지인들에게 헐값 에 팔아넘겼다.
계화도까지 가는 길이 없었던 그때, 나는 부들솜처럼 보송보 송한 갯벌을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계화도에 친구가 살고 있어 서 가끔 찾아갔지만 사실은 친구와 놀기보다는 웅덩이에서 물 장구치는 재미가 더 쏠쏠했다. 물놀이가 시들해지면 자전거를 타고 갯벌에 그림을 그렸다. 바퀴가 그려내는 직선과 곡선을 바 라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얕은 갯고랑을 구를 땐 바퀴에서 붉은 노을이 흩뿌려졌고 갈라진 물은 이내 용광로 쇳물처럼 출 렁거렸다. 한껏 달궈진 햇덩이 둑 너머로 넘어가고 땅거미 사위를 에워싸면 다급해진 마음에 페달을 구르다 넘어지기 일쑤였 다.
그렇게 휘휘한 해거름 속으로 유년은 사라지고 이제는 따라 오는 직선도 물보라도 없는 문명의 길을 자동차를 타고 가고 있다. 촘촘히 심어진 모 사이에 든 볕처럼 어릴 적 기억이 반쯤 열린 차창으로 들어온다.
그 기억의 끝머리, 간재 선생의 사당 계양사繼陽祠 앞에 몸도 마음도 가지런히 한다. 삼문을 둘러보니 유학자의 예와 겸손이 추녀에 담겨 있는 듯하다. 공자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의지로 망 화대望華臺란 글을 새겨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간재 선생은 왜놈 앞에서 정치적으로 오염된 을사오적을 처단하라는 상소문을 고종에게 올리고 망국의 한을 후진 교육에 쏟았으며,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하는 데 일시적이고 상황적인 운동보다는 바른 도 를 세워 구세광정救世匡正하는 길이 옳다”고 역설하였다.
그가 설파한 성리학은 주자학의 핵심으로 성현의 개념을 위 대한 사람이 아니라 순수한 사람에 두었다. 누구든 순수해지면 성현이 될 수 있다는 논리는 간재 선생의 학풍을 세우는 데 깊 이 자리매김했으리라. 그 때문에 모든 벼슬과 출현을 뒤로하고 스스로 순수해지길 갈망했을 터이다.
마당 안에는 3,000여 명의 후학을 양성했다는 계화재繼華在가 있다. 금방이라도 글 읽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간재 선생은 계화도界火島라는 지명에서 화火 자를 화華자로 바꿔 쓰고 사우와 학당에도 이을 계繼 자를 썼는데 이는 필시 공자의 땅 중 화中華 곧 중국의 유학을 잇는 섬이란 뜻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닌 지 미뤄본다.
마음은 성性에 근본하고 성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는 심본 성心本性, 본성이 스승이고 마음이 제자라는 성사심제性師心弟, 본 성은 귀하고 마음은 비천하다는 성존심비性尊心卑라는 선생의 성 리학 사상이 본성을 잊고 사는 내 가슴을 때린다.
간척사업으로 반은 이미 뭍이 되고 서쪽 반은 바다에 접하며 살아 온 세월. 조만간 서쪽 바다마저 새만금 간척으로 사라지게 될 계화도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조개 소리를 그리워하고 갈매 기울음을 애통해할까. 해풍도 들바람도 아닌 계화도 바람이 희 끗희끗해진 내 머리에 얹힌다.
돌아오는 길, 무논의 어린 모가 어미 품을 만난 듯 생기롭다. 해마다 신생과 결실을 반복하는 저 땅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을까. 변변한 장비도 없이 서해의 거친 물살을 맨손으로 막다 죽어간 수많은 노동자들. 그 혼령이 어스름 들녘 바람에 일어서는 듯하다.
멀리 새봉산에 세워진 계화 간척지 준공탑이 시야에 들어온 다. 하늘을 찌를 듯한 석탑에 새겨진 전문 일부를 곱씹어 본다. “서해의 조수가 밀려들면 파도 소리만 요란하고 조수가 밀려나 면 아낙네들이 조개 줍던 여기 (중략)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분부 를 받들어 불모지 갯벌을 이와 같이 개척해 놓은 것이다.”
엄청난 자연의 생명이 죽고 터전을 잃었으며 인명피해를 입 은 곳, 계화도. 과연 이곳이 ‘불모지’인가? 갯벌은 바다의 허파요 숨구멍이다. 간재 선생이 살아 있다면 준공 기념탑에 새겨진 노 산 이은상의 위 헌사를 보고 어떤 말을 했을까. ㆍ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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