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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걷기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3월 22일
유인봉 시인 / 수필가

맨발 걷기가 열풍이다. 지자체가 나서서 관광지 주변에 황톳길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맨발 걷기 동호인 모임도 늘고 있다. 건강에 좋다고 하면 바람으로 이어진다. 아내가 건지산 맨발 걷기 산책하자고 옆구리를 쑤신다. 건지산 둘레길은 편백숲 안에 다양한 코스로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흙의 속살이 좋아 맨발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천천히 느긋하게 녹음을 즐기면서 바람 소리를 들으며 도란도란 산책하기에는 제일이다.
오랜 시간 판에 박힌 듯한 도시 생활에 새로운 변화를 시작한 것은 두어 해 남짓 일이다. 직장을 마무리하고 고향마을 오얏재란 능선에 선친께서 물려 주신 두 마지기 논이 있던 곳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매주 오가면서 1박 2일 자연 속에서 호사를 누리고 있다.
호사라야 여섯 평 오두막에 TV도 없이 라디오를 친구삼아 텃밭을 맨발로 어슬렁거리거나 음악을 듣기도 하고, 주변의 구불구불한 논두렁 밭두렁을 생각 없이 걷는 일이다. 그래도 양이 안 차면 유년에서 중학 시절까지 마을 형들을 따라 재 너머까지 지게 짐을 지고 오르내리던 산길로 다녀오기도 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걷다 보면 그 옛날 형들이나 친구들과 가재를 잡고 버들치를 잡던 일, 겨울이면 나뭇짐 부려놓고 나뭇가지를 깔고 앉아 빙벽 썰매를 타던 일, 뜻도 모르고 골짜기가 쩌렁쩌렁하도록 유행가 목청을 잡아 빼던 가난한 시절의 추억이 생각난다. 그 닳아지고 닳아진 산길을 걷노라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개울 물소리, 새 소리, 계절이 오갈 때마다 철철이 옷을 갈아입는 산의 모습, 그리고 겨우내 꽁꽁 얼었던 얼음장 밑으로 봄기운 올라오는 소리, 전령사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는 생강나무와 진달래가 겨울 산을 깨운다.
이제는 오두막 출입이 잦아지면서 산 동네가 더 정겨워지고 산길도 들녘도 애틋한 친밀감을 더해주고 있다. 농장을 돌보는 농사일도 하고 보슬보슬한 흙을 밟으면서 까슬하고 시원하게 발바닥에 느껴지는 그 감촉을 맛보는 일은 일거양득의 즐거움이다. 도심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흙도 지천이다. 산길을 걸을 때도 논두렁 밭두렁을 거닐 때도 가급 적 맨발로 걷는다. 자연스레 조심조심 천천히 걷게 된다. 느리게 천천히 걷다 보니, 자주 다니던 길섶에 풀이나 나무 같은 사소한 것들을 예전 보다 자세히 보게 되고, 그냥 지나쳤던 것들도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꽃도 나무도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것 같다. 밤을 우는 풀벌레 소리나 숲을 노래하는 산새들의 지저귐도 하늘을 나는 아침 새들까지도 점점 친구가 되고 말 상대도 되어 주고 있다.
나이가 든 탓일까? 뛰어야 할 일이나 급해야 할 일이 점점 없어지고 맨발로 느리게 걷는 일이 좋아진다. 흙길을 가만가만 걸을라치면 따뜻하고 보드라운 흙 기운이 몸 안에 번져 오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살랑거리며 스치는 바람결이 귓속말로 말해 준다. 느리게 더 느리게 걸어 보라고, 그리고 묻는다. 무엇이 더 보이느냐고.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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