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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요일별 특집 종합

<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18회-최후의 만찬 5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02일
‘다음 주 목요일이 단오라는 소리에 집사람의 안색이 왜 저렇게 굳어진 것 일까?’

봉하노송은 그 이유가 자못 궁금했다. 그는 오늘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술에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속다짐을 해둔 터다. 그렇지만 감정의 기복이 심한 그미의 속내를 어림할 수 없어 애간장이 말랐다. 마른 애를 축이려는 듯 그는 맥주잔을 들었다.

“방울이 애비야, 혹시 오늘이 음력 사월 며칠인지 아나?”

그미가 이렇게 묻자 호걸은 핸드폰을 켰다. 핸드폰에 깔려 있는
소프트웨어인 캘린더 애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할 모양이다.

“다음 주 목요일이 음력 오월 오일 단오라는 건 낮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알았구요. 오늘이 음력으로 사월 며칠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머니 잠깐만 기다려보세요.…자, 오늘이 양력 오월 이십 이일이면 음력으로는?…어머니, 음력 사월 스무 여드레네요.”

“후유!…”

“아니 어머니, 웬 한숨을 그렇게 쉬세요?”

“언제부턴가 내가 시간 개념이 없어서 그런다.”

방금 전 그미의 안색이 굳어졌던 이유가 이 때문인 듯 했다. 거실에서 술자리가 시작된 직후, 그미의 안색은 굳어졌다. 그래서 애가 말랐던 봉하노송은 그미의 시간 개념이 없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언제일지 따져 보았다. 아무래도 그미의 검찰 소환 직전인 지난 달 초순 같았다. 그 무렵, 그미는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행동할 때도 있었다.

“어머니, 내일이 스무 아흐레 그믐인데, 그믐날 새벽에도 달이 뜨나요?”

“그믐날엔 그믐달이 안 뜬다. 그믐달은 스무 이렛날까지는 새벽에 뜨는데, 그것도 동쪽 하늘에 잠깐 떴다가 동이 틀 무렵에 금세 사라진다. 여보, 제 말이 맞지에?”

그미가 그렇게 물었지만 봉하노송은 곁장구를 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입가엔 엷은 미소가 흘렀다.

“내가 그믐달을 자주 봤던 때는 방울이 애비 니 젖먹이 때다. 고시 공부에 전념하느라고 피골이 상접한 느그 아부지가 자정 무렵에 잠자리에 들라카믄 그 때부터 니가 보채면서 울기 시작했는데, 지아비가 주무실라고 하는데 얼라가 울고 보채면 지어미가 우째야 되겠노? 얼라를 데리고 침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상책이것제? 그래 나는 아부지 주무시라고 니를 등에 업고 일단 마당으로 나갔다. 그 시절, 지금 같은 이런 거실이 어딨노? 방에서 나가면 마루나 토방이고, 마루 밑이 바로 마당이제. 그라고 마당이라는 데가 뭐 봄철하고 가을철엔 상관 없겠지만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것제? 그렇지만 어쩌겠노?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니가 울면 등에 업고 마당으로 나가야제. 근데 마당에 나간다고 문제가 해결 되는 게 아니었다. 누굴 닮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만 니 울음소리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 맨치로 크고 우렁찼다. 그런 소리로 니가 마당에서 울어싸면 느그 아부지는 물론이고 집안어른들도 죄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니 어쩌겠노? 난 어쩔 수 없이 니를 업고 대문 밖으로 나갔제. 근데 집밖으로 나간다고해서 일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오밤중에 동네를 떠내려보낼 듯 큰소리로 우는 니를 업고 동네 고샅에 있을 수가 없어가꼬 민가가 없는 봉하들판으로 나가 논두렁이나 밭두렁의 밤이슬도 밟고, 흰 눈도 밟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보면 꼭두새벽이 될 때도 있었는데, 그때 첫새벽에 보았던 그믐달, 예쁜 우리 손녀딸 방울이의 눈썹 같은 그믐달을 지금도 내는 잊지 못한다.”

“아니 어머니, 갓난아이 때 제가 그렇게 많이 울었어요?”

“말도 마라. 낮밤이 바뀌어가꼬 꼭 느그 아부지가 잠자리에 들 때면 울어 쌌는데, 그때는 참말로 환장 헐 일이었다.”

그렇게 모자간의 대화가 무르익었다. 벌써 두 잔째 맥주잔을 비운 그미의 얼굴엔 모처럼 화색이 돌았다.

‘그래 나도 저기 저 봉하들판 건너 뱀산의 마옥당과 김해 불모산의 암자인 장유암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 그믐달을 참 많이 보았다. 사법고시를 패스 한 뒤엔 서울에서도 여러 차례 그믐달을 보았고, 재야 변호사 시절엔 감옥에 수감돼 철창 안에서도 그믐달을 보았다. 대통령이 된 뒤로는 청와대에서 가끔 그믐달을 보았고, 퇴임 후 이곳 봉하마을에 와서도 그믐달을 여러 번 보았다. 몇 달 전부터는 한 달에 두 서너 번씩 새벽에 뜬 그믐달을 보았는데, 음력 사월 스무 이레인 어제 새벽엔 그믐달이 뜨지 않았다. 그제 오후 늦게 제주도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가 어제 새벽에 전국적으로 내린 탓이다.…내가 하늘 가는 길로 나서는 내일이 바로 음력 그믐날인데, 그믐날 새벽엔 그믐달이 뜨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그믐날의 그믐달은 해가 떠 있는 당일 오후에 진다고 한다. 음력 스무 여드레부터 시작된 그믐은 그 달 말일까지 이어지는데, 이 때는 달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달이 바뀐 다음 달 음력 초하루가 지나면 하늘엔 신월이 나타난다. 신월이란 새로운 달이라는 뜻이다. 이 신월을 일컬어 초승달이라고 하는데, 내 삶은 음력 사월 그믐날인 내일 아침에 여명과 함께 사라진다. 전직 대통령이기에 적어도 5일장을 치르게 된다면 단오 전날인 다음 주 수요일에 영결식을 갖게 될 것이고, 7일장을 치른다면 단오 다음날인 다음 주 금요일에 영결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집사람과 호걸은 그믐달 얘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분명 내일 오전부터 시작될 길고 긴 장례기간 동안 하늘에 뜰 초승달을 볼 수도 있을 텐데, 만약 초승달을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내가 왜 사월의 그믐날 동이 트는 새벽을,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지는 시점으로 정했는지 그 속뜻을 헤아려 줄꺼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봉하노송은 맥주잔을 비웠다. 벌써 두 잔째다. 취기가 올라 온 그의 눈시울엔 눈물이 조금 고였다. (계속)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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