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35회-오래된 생각이다 8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2월 10일
“고맙다. 그리고 면목이 없다. 니가 내 몰래 준비를 해두었다는 퇴임 이후와 관련된 문제는 차후에 들어보기로 하고 당장 내게 들려줘야 할 얘기는 집 사람이 박차대 회장의 돈을 묵었는지 안묵었는지의 여부다. 만약 박 회장의 돈을 묵었다면 언제 얼마나 묵었고, 어디다 쓸라고 묵었냐는 점이다. 그러니 퍼뜩 이실직고 해봐라!”
봉하노송의 말에 유정상이 눈을 똑바로 떴다.
“미안하지만 내 말을 좀 더 들어봐라.”
“지금 머리가 터질라카는데, 언제까지 곁가지 얘길 들으라카노? 퍼뜩 요지만 말해 봐라!”
봉하노송이 이렇게 다그치자 유정상은 말문이 막혔다.
“퍼뜩 말해 보란 말이다! 아까 작은방에서 집사람과 은밀하게 무슨 얘길 나눴는지?…”
봉하노송이 이렇게 묻자 유정상이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박 회장이 봉하부인에게 100만 달러를 건넸다고 검찰 조사과정에서 진술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유정상이 흉금을 풀기시작하자 충격을 받은 봉하노송은 말을 꿀꺽 삼켰다.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지 못하던 그가 유정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것은 한 참 뒤였다.
“집사람이 박 회장의 돈 100만 달러를 묵은 게 사실이가?”
“사실이다.”
“언제 묵었는데?”
“2007년 6월이다.”
“그 돈을 어데 썼는데?”
“빚을 갚는데 썼다고 들었다.”
“누구한테 진 빚을 갚았는데?”
“내는 잘 모른다.”
“그 돈을 집사람이 박 회장한테 직접 빌렸나?”
봉하노송이 계속해서 총알같이 쏘아붙이자 유정상이 잠시 머뭇댔다.
“아이다. 내가 박 회장한테 돈을 빌렸다.”
이 대목에서 봉하노송은 잠시 입을 닫았다.
“니가 직접 박 회장한테 돈을 빌려서 집사람한테 전했단 말이가?”
“그렇다.”
“박 회장한테 돈을 어떻게 빌렸는데?”
“2006년 연말쯤 내가 박 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 때 박 회장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청와대서 큰살림을 할라면 돈이 필요할텐데, 자기가 도와 줄 수 있으니 필요하면 요청하라고 말이다.”
유정상의 말에 봉하노송이 귀를 쟀다.
“박 회장을 만난 뒤, 청와대서 봉하부인에게 박 회장과 만나서 나눈 얘길 전했다.”
“아까 집사람이 박 회장 돈 100만 달러를 묵은 시점은 2007년 6월이라 캤는데, 와 돈을 빌린 시점이 6개월 정도 차이가 나노?
“내가 봉하부인에게 박 회장 얘기를 전한지 약 6개월 쯤 지났을 때다. 봉하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하드라. 미국에 있는 애들 유학비와 생활비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어서 애들 아버지 몰래 빚을 좀 많이 졌는데 말도 꺼내지 못해 막막하다고 말이다.”
“집사람의 그런 말을 듣고 니가 박 회장을 찾아갔나?”
“맞다. 박 회장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했다. 그랬더니 박 회장이 그러더라. 그렇지 않아도 준비를 해놨다고.”
“그래서 니가 박 회장한테 100만 달러를 직접 받아서 집사람한테 전했나?”
“내가 직접 전하긴 했는데….”
유정상이 말꼬리를 흐리자 봉하노송이 다시 목청을 높였다.
“니가 직접 전하긴 했는데, 또 무슨 문제가 있었단 말이노?…”
유정상이 봉하노송에게 이런 사실을 이실직고한 뒤에 나온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7년 6월 유정상이 박차대 회장의 돈 100만 달러를 받은 곳은 청와대 경내다. 원화가 아닌 미화 100만 달러가 담긴 가방을 청와대 경내로 들고 간 사람은 박차대 회장의 최측근인 정영택 J개발 대표다. 정영택 대표가 청와대 경내에서 유정상에게 전달한 100만 달러는 관저에 있던 봉하부인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이러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언론은 여러 가지 의혹을 쏟아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박차대 회장의 돈을 청와대 경내에서 주고받았다는데 당시 청와대에 머물고 있던 봉하노송이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느냐는 점이다. 또 다른 의혹은 봉하부인이 유정상을 거쳐 박차대 회장에게서 돈을 빌렸다고 하지만 원화가 아닌 달러로 건너갔고, 차용증 등 금전 대차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가 나오지 않다보니 정상적인 차용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니는 와 나 한테 진작 이런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는데?”
봉하노송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유정상에게 물었다.
“박 회장이 검찰에 그렇게 진술했다는 정보를 듣고 내는 몇 차례 이곳 사저에 찾아왔다. 그런데 그 때마다 차마 말을 떼지도 못했다. 그렇게 말도 떼지 못하고 사저를 떠난 게 벌써 몇 차례다.…”
봉하노송이 목에 핏대를 돋우고 앙칼진 목소리로 물었다.
“내 몰래 집사람이 니를 통해 박 회장한테 빌린 돈은 그 돈 100만 달러 말고는 또 없나?”
“없다.”
봉하노송과 유정상 사이엔 긴장감이 흘렀다. 유정상을 바라보는 봉하노송의 눈에도 불이 켜졌고, 봉하노송을 바라보는 유정상의 눈에도 불이 켜졌다. 불꽃이 튈만한 정적이 잠시 흘렀다. (계속) |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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