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묘약, 眞實和解 (上)
상생을 위한 화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과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책임지는 자세가 절실함을 느낀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1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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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러기에 크고 작은 실수나 잘못을 범하며 살아간다. 개인 간의 사소한 잘못에서부터 임진전쟁이나 한일병탄 그리고 세계대전과도 같은 엄청난 범죄도 역사에 함께한다. 사적인 이해관계나 시대적 상황에 따라 불가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건설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앙금을 씻고 함께 전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서 통상 ‘화해(和解)’라는 지렛대가 필요하다. 그를 발판삼아 더욱 진실하고 끈끈한 관계를 이뤄 상생할 수 있게 된다.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가 진정으로 서로를 보듬는 초석이 되고 그래서 마침내 서로가 승리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된다. 바르샤바의 유대인 학살지인 게토(Ghetto)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수상은 헌화만으로는 충분한 사과가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조국을 대신해 무릎을 꿇었다. 2차 대전 중 나치에 저항했던 레지스탕스이자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아왔던 그는 독일 조국에 빚진 게 없었다. 그럼에도 그런 그의 모습에 폴란드는 물론 유대인도 감동했다.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도 “나는 독일보다 총리를 더 신뢰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전 세계가 독일의 진정한 사과를 받아 들었다. 물론 독일의 동방정책은 성공했고 많은 역사가는 이런 진정성이 결국 베를린장벽 붕괴로 이어졌다고 평했다. 사과가 가져온 벅찬 감동과 커다란 변화다. 오늘의 메르켈 총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당신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무릎 꿇겠다. 나치의 범죄는 무한책임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힌다. 이웃 일본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성숙함의 극치를 보게 된다. 가해자이면서도 늘 피해자 이상의 행세를 하고 있는 이웃, 늘 분쟁과 불행을 재생산하기에 바쁘다. 이를 보면 상생을 위한 화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과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책임지는 자세가 절실함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화해는 잘못에 대한 ‘시인-사과-피해배상-재발 방지’라는 4개의 절차를 한 묶음으로 한다. ‘시인’은 먼저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함께 온전한 인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침묵이나 시인 없는 반성 또는 일부만 긍정하는 행태는 진정한 반성이 될 수 없다.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사과’ 역시 무조건적이어야 한다. 어정쩡한 사과, 불유쾌한 사과, 마지못한 사과, 마음에도 없는 사과, 계속 버티다가 법적 문제에 봉착하자 그때서야 여러 핑계를 대며 뒤늦게 한 벼랑 끝 사과, 여론이 안 좋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여론 회피식 사과, 손익을 따진 후 행한 계산적 사과, 임기응변식 사과, 분위기 전환용 사과 등은 사과를 아니 함만 못하다. 불필요한 이유나 변명은 사과의 진정성을 해치고 오히려 가해의 정당성을 홍보한다던가 사과 후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취소하거나 나와는 무관하다는 태도는 사과의 적이다. 또 주위에서 잘못했다고 하니 행한 마지못한 사과, 잘못이 사소하며 행한 억지 사과, 사과를 안 받아주면 나도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조건부 사과, 사과와는 다른 행동을 하여 사과의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개(?)사과, 오히려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끝까지 가겠다는 협박성 사과, 사과하고도 또다시 망언을 행하는 반성 없는 사과, 아무렇게나 하는 무성의한 사과는 신의도 진정성도 찾아볼 수 없는 예가 된다.
/양태규 옛글21 대표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1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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