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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伐草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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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는 추석 이전에 조상의 무덤을 찾아 봄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어내고 깨끗이 정리하는 세시풍속이자 조상님과 후손이 교감하고 소통하는 행위다. 보통 한식 즈음에는 무덤에 떼를 입혀 가다듬는 사초莎草를 하고, 음력 7월 보름께에 벌초를 한다. 이 때 벌초를 하는 까닭은 처서가 되면 풀이 성장을 멈추는 시기며 이 시기를 넘기면 풀씨가 영글기 때문에 씨가 떨어져 다음 해에 잡초가 더욱 무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처서가 지난 가을 초입의 벌초는 한 해만 걸러도 조상님들의 묘소가 졸지에 ‘골총’이 되니 이는 후손의 도리가 아니다.
유교 사상이 통치 이념이었던 조선시대의 벌초는 집안의 중요한 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조상의 무덤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자손의 도리라고 생각하여 벌초에 정성을 다했다. 요즘에는 장묘문화의 변화로 벌초를 하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몇 해 지나지 않아 벌초라는 말을 영영 잊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예초기로 풀을 깎던 동생이 잠시 쉬었다가 하자고 했다. 얼음물을 마시면서 벌초와 사초와 금초의 다른 점을 동생에게 물었다. 잠시 기다려 보라는 말과 함께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를 했어도 벌초와 사초와 금초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도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조상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벌초伐草’는 무덤의 풀을 깎아 깨끗이 한다는 뜻이고 ‘사초莎草’는 오래되거나 허물어진 무덤에 떼를 입혀 잘 다듬는 일이고 ‘금초禁草’는 ‘금화벌초禁火伐草’의 준말로서 무덤에 불조심하고 때를 맞춰 풀을 베어 잔디를 잘 가꾼다는 뜻이라고 동생이 알려준다.
해마다 벌초를 하기 위해 선산에 가면 낯선 젊은이들이 눈에 뛴다. 그런가하면 선산에는 무덤 몇 기가 새로 들어서 있다. 친족 간이 되는 젊은이들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고 돌아가신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처연해진다. 한 세대가 저물고 다시 새로운 세대가 우리 가문을 열어 감이 선산에 있었다. 나는 벌초를 하면서 이제껏 살아오면서 조상들을 욕되게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벌초를 대충 해 놓으면 남들이 ‘처삼촌 벌초 하듯이 해 놓았다.’는 소리를 하지나 않을 까 하는 생각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어깨가 뻐근하고 팔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지만 기분만은 상쾌했다. 벌초의 근본적인 해결은 매장이 아니라 화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초는 조상들의 음택을 관리하는 것으로 후손들의 도리요 정성의 표현이다. 벌초는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진행한다. 주로 봄에는 한식 전, 가을엔 추석 전에 벌초를 한다. 유교에서 유래한 효의 상징이지만 요즈음은 골총이 늘어나는 시대라서 왠지 개운치 않다.
벌초의 기원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으나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시제와 묘제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성리학에서 묘제를 중시하는 부분 등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한국 사회에 유교가 보급되면서 벌초를 하는 관습도 같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실제 성리학이 보급된 조선 시대에는 조상님들 묘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도 불효로 인식했다. 무덤은 한 사람이 이 땅에 살았다는 흔적이며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추모할 여지를 남겨주는 최소한의 유품이다. 벌초를 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1,990년대 이후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규모로 벌초하는 풍습은 줄어들었으며 관리인을 두거나 벌초 대행업체에 맡기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다. 아름다운 벌초 문화가 산업사회의 메커니즘 속에 기피하는 세태가 점점 확산되면서 벌초의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처럼 벌초를 기피하는 세태가 확산되면서 매년 명절마다 벌초 대행 서비스가 성행하고 있다. 농협으로부터 벌초를 위탁받은 업체도 우후죽순처럼 생겨 성업 중이다. 이것은 갈수록 벌초를 기피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요즘은 벌초를 스스로 하던 자손의 집에도 그 옛날 낫과 숫돌 대신 예초기를 필수품으로 준비하여 벌초를 하는 실정이다. 벌초는 조상에 대한 자손들의 효행의 근본이다. 우리가 죽으면 누가 와 벌초를 해 주겠느냐는 동생의 말이 이명처럼 들렸다.

/정성수
논설위원/명예문학박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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