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지기 절친의 아름다운 이야기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9월 20일
|
 |
|
ⓒ e-전라매일 |
| 강산도 세 번씩이나 변할 만한 33년의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기 몇 달 전이다. 먼저 퇴임한 다른 대학교 절친 교수가 나의 퇴임모임을 당신의 몇몇 제자들과 갖자고 해서 조금 당황했었다. 말만 들어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지 실제로 거행되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박사논문을 심사한 적이 있는 한 기업어린이집 원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나의 퇴임축하모임 날짜와 시간을 타진해보기 위한 전화였다. ‘이게 뭐지?’ 하면서도 ‘아! 내가 심사했던 석사, 박사들이 그 대학교에 몇 명 있었는데 그 분들 중심으로 축하모임을 계획하고 있나보다.’ 정도로 생각했다. 엉거주춤 날짜도 시간도 좋다고 말해버려서 정말로 퇴임축하모임이 이루어지게 됨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에 가끔 식사도 하고 차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던 그 대학의 다른 퇴임 교수 두 분도 축하해주기 위해서 참석하신다는 말까지 들으니 더욱 실감이 났다. 보슬보슬 비가 내리던 날 저녁 무렵, 모임 장소로 안내 받은 레스토랑을 찾아가 보니 먼저 와서 무엇인가 준비하느라 분주해 하고 있는 귀한 분들을 반갑게 마주할 수 있었다. 제자들이 준비하는 동안 몇 년 만에 만난 선배 교수님들의 근황을 듣는 것은 시작 전 애피타이저로서 충분히 맛깔스러운 시간이었다. 퇴임 후 서각가로서, 화가로서, 손주들을 잘 길러내는 할머니로서 건강하고 의미 있게 살고 있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축하연 장소는 2층으로 된 작은 레스토랑이었는데, 1층은 군데군데 방마다 식탁과 소파들이 고급 진 모습으로 손님들을 기다리는 듯 했지만 우리의 행사를 위하여 다른 손님은 받지 않고 위층에서 우리 모임만 하게 됨을 알고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음에 놀라웠다. 멋진 플래카드가 벽면에 걸려있고,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을 넣어 포스터까지 제작하여 붙이고, 식순을 멋지게 인쇄하여 안내하는 모습에서 성심껏 준비한 노고에 감사함이 절로 나왔다. 세심하게 준비한 정년퇴임축하연은 1부, 2부로 진행되었다. 1부에서 선배 교수님들이 돌아가면서 건배를 제의하며 들려주는 덕담은 과거의 추억을 아스라이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기는 사이에 차려지고 있는 식사는 아주 맛있고 품위 있으며 우리의 분위기를 더욱 화기애애하게 해주었다. 프랑스에서 요리 공부하고 오신 분의 특별한 스테이크 코스요리라고 한다. 사실은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이튿날 바로 슬그머니 생각난 요리이다. 꽃길을 걸어서 단상에 앉음으로 시작한 2부에서는 한 마당 잘 놀은 기분이다. 가르쳐본 적이 없는 친구의 어른 제자들로부터 ‘스승의 은혜’ 노래를 받은 후에는 이제부턴 나의 제자도 됨을 선언하였다. 사회 곳곳에서 아동의 복지에 공헌하고 있는 능력 출중한 제자들을 한꺼번에 얻은 느낌이다. 테너 김상록의 ‘친구 이야기’를 반복하여 감상할 땐 끈끈한 아름다운 우정이 빛나고 있었다. ‘오직 당신만의 상’으로 포장하여 즐거움을 더한 상과 선물 증정식을 지나면서 너무 과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년 전 대학원에서 나이는 연장자였지만 1년 후배로 만난 친구는 웃음이 해맑고 발표를 즐겁게 잘하는 똑똑한 학생이었는데 친절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박사학위를 마친 후 경상도가 고향이고 가정은 서울에 있으면서도 낯선 전북의 한 대학으로 부임하게 된 것은 친구인 내가 가까이 있었기에 결정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 후로 한결같은 절친으로서 학문, 인생, 신앙 등의 이야기로 만나면 늘 시간이 부족하여 아쉬웠었다. 기쁜 일, 슬픈 일, 아픈 일, 고통스러운 일,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서로 옆에 함께 있었다. 특별히 정의로움이 커서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행동하는 용기 있는 모습이 매우 당차고 멋졌다. 정의로운 행동은 당장은 복잡하고 고통스러워도 뒤 끝이 늘 평화롭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 친구이다. 몇 년 전 퇴임하고 서울로 올라간다 했을 때 가슴 한 쪽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앓아야 했지! 나이도 있고, 거리도 있다 보니 해를 지나 어쩌다 만나지만 어제 보고 헤어진 것처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해도 해도 끝나지 아니하는 무조건 반갑고 좋은 친구다. 행사 진행이 무르익어갈수록 여기에 드는 경비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을 때 사회자가 오늘 행사의 모든 재정은 친구교수가 지원했다고 공지한다. 그 뿐인가,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며 꼭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건네 준 사랑 깊고 귀한 정성까지 받고 보니 감동을 넘어 민망한 마음이다. 친구의 정년퇴임축하연을 위하여 많은 재정, 귀한 시간, 긍정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 부어 줄 사람이 어디에 또 있을까? 감격의 퇴임축하연을 친구로부터 받고 보니 그동안 만고풍상(萬古風霜)을 겪으며 인내해온 인생에 대하여 마치 보상과 치유가 된 것처럼 행복하고 평화롭다. 그대는 어찌하여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가슴 시리게 감동적인 선물을 안겨주었는지요! 삶의 의미와 가치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 지, 어떻게 여물어가야 하는 지 공부가 되었다. 나머지 생에서 기억할 수 있는 날까지 아름답고 멋진 이 날을 떠올리며 감사와 행복을 평생 음미하고 싶다.
/최인숙 호원대학교 교수 문학박사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9월 20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