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5-05-09 12:41:49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뉴스 > 칼럼

[향기는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1-9)] 몸살에 대하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12월 06일
ⓒ e-전라매일
후미진 골목 비틀거리는 가로등 아래, 그녀는 움직임이 둔했 다. 그러나 두 눈에는 경계가 서려 있었다. 도움의 손길을 거부 한 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 막 힘인 듯 그녀는 내 앞에서 맥없이 쓰러졌다.
취기가 오른 밤, 병원은 먼 곳에 있었다. 할 수 없이 그녀를 안 고 갈지자의 골목을 거슬러 집으로 왔다. 오는 동안 그녀는 무 슨 말인지 목에 걸린 소리를 뱉어냈다. 부린 몸에서는 역한 냄새 가 진동했다. 몸을 씻어주고 싶었지만 한기가 들 것 같아 그냥 이불을 덮어 뉘었다. 따뜻해서인지 그녀의 몸은 더 늘어졌다.
보이지 않는 인연의 줄이 생긴 그날, 늦은 잠에서 깼을 때 그 녀는 언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는지 쭈그려 앉아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골목에서 어둠을 노려보던 눈이 아니었다. 그녀에 게서 나던 지독한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동화된 코는 서로의 냄새를 인식하지 못했다. 손을 머리에 얹어도 경계하지 않고 오 히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욕실로 그녀를 이끌어 조심스레 씻겼 다. 그녀는 출산을 경험한 듯 젖무덤이 늘어져 있었다.
서둘러 그녀의 거처를 마련했다. 차츰 걸음에 힘이 들어가고 회복의 속도만큼 목소리에도 생기가 돌았다. 앙상했던 갈비 사 이사이에 살이 차오르면서 신뢰도 두터워졌다. 이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산책은 일상이 되었고, 잠시라도 떨어져 있다가 나를 보면 그녀는 괴성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었다.
어쩌다 읍내의 늙은 선술집에서 주모와 막걸리 잔을 기울이 고 있으면 그곳을 어떻게 찾았는지 밀창문 앞에 앉아 있곤 했 다.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어떤 땐 강짜로도 들렸으나 오랜 독거를 경험한 나는 그녀의 질투가 그리 싫지 않았다.
낚시를 갈 때도 그녀는 차 문을 열기 무섭게 옆자리에 떡하니 올라탄다. 그날도 우리는 낚시터를 향했다. 붕어가 있을 것 같 은 자리를 찾아 낚싯대를 펴는 동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것인지 낚시터의 냄새를 헤적이며 여기저기 거닐었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 농로에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는 놈이 있었다. 그 녀도 그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헛챔질로 붕어를 유인했다. 가끔 풀들 의 몸 부비는 소리 들려올 뿐 사위는 조용했다. 시간이 지나도 찌톱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따분한지 이따금 강물이 뒤척 였다. 그럴 때마다 물비늘이 반짝거렸고, 멀리 강 건너 소 울음 소리는 귀에 닿을 듯 닿을 듯 멀어지곤 했다.
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자동차 트렁크에서 막걸리를 꺼 냈다. 소시지의 비닐을 벗겼다. 다른 때 같으면 냄새를 맡고 달 려올 그녀가 꼬랑지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눈 마주쳤던 놈이 앉아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바람만 일렁일 뿐 아무도 없었다.
낚싯대의 예신*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거푸 마신 취기가 사그라질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보아도 붕어의 입질은 없었다.
물비린내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해 질 녘을 주섬주섬 챙겨 실었다. 노을이 덜컹거리며 신작로를 앞질러 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나는 그녀를 생각하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이웃 마을에 마실을 갔거나 가끔 울타리 사이로 들랑거리는 가 슴팍 벌어진 놈과 싸돌아다니겠거니 했다. 낚시 가방을 내리면서 그녀를 낚시터에 두고 왔다는 걸 알아챘다.
그녀와 나를 번갈아 원망하며 다시 낚시터로 서둘러 향했다. 처음 갔던 길을 버리고 들판을 가로질러 갔다. 노을이 점점 검 붉어지고 있었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비포장 길처럼 덜컹거 렸다. 개장수 차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와 비슷한 털의 개는 없 었다. 십여 분 남짓이면 닿을 거리가 길게 느껴졌다. 낚시터에 가까워지자 더 불안했다. 처음에 주차했던 곳에 차를 세우고 돌 아보았다. 어스름이 들판에 스미고 있었다. 그녀를 부르는 내 목소리도 점점 어두워져 갔다.
한참을 낚시터에 앉아 있다가 하는 수 없이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돌아오는 길, 혹시라도 마주칠까 차창 밖 어둠을 헤드 라이트로 밀어내며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이별에 대 한 두려움은 짙어져 갔다.
무거워진 바퀴를 끌고 마당에 들어섰다. 순간 낯익은 목소리 가 달려들었다. 그녀였다. 부둥켜안았다.
발바리도 똥개도 아닌 동희. 그녀를 만난 후 이처럼 반가운 적 있었던가. 그녀도 궁둥이를 흔들며 들어보지 못한 비음을 연 방 날려댔다. 들판으로 가로질러 가지 않았다면 마주칠 수도 있 었을 동희. 그러니까 그녀는 바퀴 냄새를 따라 시오리 길을 찾아온 것이다.
그날 그 사건 이후 그녀와 나는 더 깊어져 갔다. 발정이 올 때 청춘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람이 난다는 것 말고는 다른 말짓을 한 적이 없다. 그녀는 그 지독한 연애 덕분에 지금까지 여남 번 의 출산을 했고, 제 목청 닮은 소리를 이웃 마을마다 늘려가고 있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얼추 환갑이 넘었는데도 최근에 새끼 넷 을 또 낳았다. 그녀의 건강을 생각해 노산을 막고자 정조대를 만들어 채워도 보고, 옥상에 올려놓고 금줄을 쳐놓아도 소용없 다. 지들이 무슨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밤이면 세레나데를 갈 기는 통에 내가 늘 지고 마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 만남에 있는 것이 듯 동희와의 인연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인연이라는 보이지 않는 목줄. 풀어놓아도 다시 돌아오는 그 목줄 때문에 오는 몸 살, 나는 그 몸살을 사는 중이다.

/배귀선
시인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12월 06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기획특집
고창군 슬기로운 ‘지방소멸기금’ 활용사업  
순창군, ‘제2회 섬진강 트레일레이스’ 성황리 개최  
부안 풍요로움 · 즐거움 · 맛 어울린 소통 · 화합 축제  
ESG 전국 최고 성적표 받은 완주, 지속가능 미래 만든다  
“K-컬쳐의 중심 제95회 춘향제 30일 개막, 커밍 순”  
익산시 영등2동, 주민과 함께하는 현장중심 행정 펼치다  
정읍시, 신성장 동력·도시재생 ‘쌍끌이 전략’ 가동  
고창로컬JOB센터 “기업과 사람 잇는 일자리 플랫폼”  
포토뉴스
IWPG 글로벌12국, 제7회 평화사랑 그림그리기 국제대회 성황리 개최
㈔세계여성평화그룹(IWPG) 글로벌 12국이 주관한 제7회 '평화사랑 그림그리기 국제대회'예선이 5월 3일 전북 정읍시 정읍국민체육센터에서 성 
자랑스러운 전북인, 오미숙 사진작가 ‘2025 세계 신지식인’ 선정
전북 출신의 오미숙 사진작가가 ‘2025 세계 신지식인’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지난 4월 30일 서울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202 
무주군, 6월 6일~8일 운문산반딧불이 신비탐사 진행
무주군이 제13회 무주산골영화제 기간(2025. 6. 6. ~8.) 동안 ‘운문산반딧불이 신비탐사’를 개최할 계획으로, 7일부터 참가 신청을  
전주문화재단, 지역작가 본격적인 지원
(재)전주문화재단(대표이사 최락기)이 창작공간 제공 등 동문창작소 1호점 2기 입주작가들에 대한 본격적인 작품활동 지원에 나섰다. 
‘전주에서 만나는 호주의 모든 것!’ 전주세계문화주간 호주문화주간 개막
대한민국 대표 문화도시인 전주시가 5월 황금연휴를 맞아 호주 문화의 정수로 가득 채워진다.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228. 501호 / mail: jlmi1400@hanmail.net
편집·발행인: 홍성일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