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1-9)] 몸살에 대하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1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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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미진 골목 비틀거리는 가로등 아래, 그녀는 움직임이 둔했 다. 그러나 두 눈에는 경계가 서려 있었다. 도움의 손길을 거부 한 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 막 힘인 듯 그녀는 내 앞에서 맥없이 쓰러졌다. 취기가 오른 밤, 병원은 먼 곳에 있었다. 할 수 없이 그녀를 안 고 갈지자의 골목을 거슬러 집으로 왔다. 오는 동안 그녀는 무 슨 말인지 목에 걸린 소리를 뱉어냈다. 부린 몸에서는 역한 냄새 가 진동했다. 몸을 씻어주고 싶었지만 한기가 들 것 같아 그냥 이불을 덮어 뉘었다. 따뜻해서인지 그녀의 몸은 더 늘어졌다. 보이지 않는 인연의 줄이 생긴 그날, 늦은 잠에서 깼을 때 그 녀는 언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는지 쭈그려 앉아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골목에서 어둠을 노려보던 눈이 아니었다. 그녀에 게서 나던 지독한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동화된 코는 서로의 냄새를 인식하지 못했다. 손을 머리에 얹어도 경계하지 않고 오 히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욕실로 그녀를 이끌어 조심스레 씻겼 다. 그녀는 출산을 경험한 듯 젖무덤이 늘어져 있었다. 서둘러 그녀의 거처를 마련했다. 차츰 걸음에 힘이 들어가고 회복의 속도만큼 목소리에도 생기가 돌았다. 앙상했던 갈비 사 이사이에 살이 차오르면서 신뢰도 두터워졌다. 이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산책은 일상이 되었고, 잠시라도 떨어져 있다가 나를 보면 그녀는 괴성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었다. 어쩌다 읍내의 늙은 선술집에서 주모와 막걸리 잔을 기울이 고 있으면 그곳을 어떻게 찾았는지 밀창문 앞에 앉아 있곤 했 다.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어떤 땐 강짜로도 들렸으나 오랜 독거를 경험한 나는 그녀의 질투가 그리 싫지 않았다. 낚시를 갈 때도 그녀는 차 문을 열기 무섭게 옆자리에 떡하니 올라탄다. 그날도 우리는 낚시터를 향했다. 붕어가 있을 것 같 은 자리를 찾아 낚싯대를 펴는 동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것인지 낚시터의 냄새를 헤적이며 여기저기 거닐었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 농로에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는 놈이 있었다. 그 녀도 그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헛챔질로 붕어를 유인했다. 가끔 풀들 의 몸 부비는 소리 들려올 뿐 사위는 조용했다. 시간이 지나도 찌톱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따분한지 이따금 강물이 뒤척 였다. 그럴 때마다 물비늘이 반짝거렸고, 멀리 강 건너 소 울음 소리는 귀에 닿을 듯 닿을 듯 멀어지곤 했다. 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자동차 트렁크에서 막걸리를 꺼 냈다. 소시지의 비닐을 벗겼다. 다른 때 같으면 냄새를 맡고 달 려올 그녀가 꼬랑지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눈 마주쳤던 놈이 앉아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바람만 일렁일 뿐 아무도 없었다. 낚싯대의 예신*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거푸 마신 취기가 사그라질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보아도 붕어의 입질은 없었다. 물비린내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해 질 녘을 주섬주섬 챙겨 실었다. 노을이 덜컹거리며 신작로를 앞질러 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나는 그녀를 생각하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이웃 마을에 마실을 갔거나 가끔 울타리 사이로 들랑거리는 가 슴팍 벌어진 놈과 싸돌아다니겠거니 했다. 낚시 가방을 내리면서 그녀를 낚시터에 두고 왔다는 걸 알아챘다. 그녀와 나를 번갈아 원망하며 다시 낚시터로 서둘러 향했다. 처음 갔던 길을 버리고 들판을 가로질러 갔다. 노을이 점점 검 붉어지고 있었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비포장 길처럼 덜컹거 렸다. 개장수 차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와 비슷한 털의 개는 없 었다. 십여 분 남짓이면 닿을 거리가 길게 느껴졌다. 낚시터에 가까워지자 더 불안했다. 처음에 주차했던 곳에 차를 세우고 돌 아보았다. 어스름이 들판에 스미고 있었다. 그녀를 부르는 내 목소리도 점점 어두워져 갔다. 한참을 낚시터에 앉아 있다가 하는 수 없이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돌아오는 길, 혹시라도 마주칠까 차창 밖 어둠을 헤드 라이트로 밀어내며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이별에 대 한 두려움은 짙어져 갔다. 무거워진 바퀴를 끌고 마당에 들어섰다. 순간 낯익은 목소리 가 달려들었다. 그녀였다. 부둥켜안았다. 발바리도 똥개도 아닌 동희. 그녀를 만난 후 이처럼 반가운 적 있었던가. 그녀도 궁둥이를 흔들며 들어보지 못한 비음을 연 방 날려댔다. 들판으로 가로질러 가지 않았다면 마주칠 수도 있 었을 동희. 그러니까 그녀는 바퀴 냄새를 따라 시오리 길을 찾아온 것이다. 그날 그 사건 이후 그녀와 나는 더 깊어져 갔다. 발정이 올 때 청춘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람이 난다는 것 말고는 다른 말짓을 한 적이 없다. 그녀는 그 지독한 연애 덕분에 지금까지 여남 번 의 출산을 했고, 제 목청 닮은 소리를 이웃 마을마다 늘려가고 있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얼추 환갑이 넘었는데도 최근에 새끼 넷 을 또 낳았다. 그녀의 건강을 생각해 노산을 막고자 정조대를 만들어 채워도 보고, 옥상에 올려놓고 금줄을 쳐놓아도 소용없 다. 지들이 무슨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밤이면 세레나데를 갈 기는 통에 내가 늘 지고 마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 만남에 있는 것이 듯 동희와의 인연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인연이라는 보이지 않는 목줄. 풀어놓아도 다시 돌아오는 그 목줄 때문에 오는 몸 살, 나는 그 몸살을 사는 중이다.
/배귀선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1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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