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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정사는 구한말의 충신인 장태수(張泰秀, 1841.12.24.∼1910.11.27.) 선생의 생가이자 그가 순국한 집이다. 장태수 선생은 186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전적(典籍), 예조정랑(禮曹正郞), 지평(持平), 정언(正言), 장령(掌令))을 거쳐 병조참의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 동부승지(同副承旨), 경연참찬관(經延參贊官)을 지냈으며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를 반대해 사직했으며 1904년 다시 관계에 진출해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 등에 올랐다. 1907년 고향으로 돌아와 인재 양성의 목적으로 금구신명학교를 세웠으나 한일합방 때 폐교됐으며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해 나라가 망한 후 일본 헌병이 그를 회유하기 위해 은사금(恩賜金)을 전달하자 이를 거절해 일본 헌병대가 세 아들을 잡아가고 그도 체포하려 하자 선조의 묘에 죽음을 고하고 단식을 결행해 24일만에 절명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그의 생가는 1983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됐다. 국가보훈부는 선생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3년 남강정사를 현충시설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제공=서부보훈지청
※ 현충시설 위치 : 전북 김제시 금구면 서도길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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