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날들의 초상肖像(2-1)] AI를 청소하다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2월 14일
내가 깔끔이라고 별명 붙여 준 로봇청소기가 말했다. “청소가 끝났습니다. 충전기로 복귀합니다.” 마치 자기 할 일은 끝났으니 이젠 당신 차례라고 명령하는 것 같다. 스마트폰 앱 화면에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다. 두 개의 더듬이를 휘두르며 집으로 돌아가던 청소기가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청소기에서 물걸레 통을 분리해 내면서 어느 날 다섯째 형님 집에서 보았던 광경을 떠올려 본다. 그날은 형님 집 근처 야산을 등산하고 형님 집에서 점심밥을 먹기로 했다. 산행을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거실과 주방 사이 경계를 여러 개의 쿠션으로 막아놓았다. 어린 시절 개울이나 물 빠진 방죽에서 고기잡이할 때 쌓았던 둑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왜 이렇게 했냐고 묻자 형님은 대답 대신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얘가 어디 갔지? 이상한 일이네. 예쁜아, 어디 있니?”라며 식탁 밑이랑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형님이 찾았던 건 예쁜이라는 별명의 로봇 물걸레 청소기였다. 자주 만나는 모임에서 모아 두었던 회비로 사서 하나씩 나눴단다. 코로나19를 잘 견딘 위로의 상품이기도 하다는데 온 집안을 말끔하게 닦아주는 신박한 물건이라고 구매했단다. 그런데 사용 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서였던지 기능의 한계였던지 주행 노선이 약속과 다름을 발견했다. 전체 방을 닦아 주지 않고 일부 코스만 왔다갔다했다. 그래서 그날은 주방과 안쪽 방만 닦으라고 집을 나서기 전에 쿠션으로 담을 만들어 두었는데 그 안에 멈춰 있어야 했을 예쁜이가 사라졌다. 형님과 나는 점심상을 차리면서 예쁜이의 탈출 경로를 찾았다. 아무리 낮은 버전의 인공지능이라도 영리한 점이 있음도 알았다. 답은 쿠션으로 막은 끝부분에 있었는데 그 끝은 거실 장식장 발과 맞닿았다. 장식장에는 4개의 발이 달렸고 발의 높이는 어림짐작으로도 큰손 한 뼘 이상이었다. 쿠션 쪽 발과 벽 쪽 발 사이에는 로봇이 지나가고도 남을 공간이 있었다. 청소기는 주인의 바람대로 주방 바닥과 안쪽 방을 다 닦고 나서 장식장 발과 발 사이를 통해 다음 일터로 빠져나갔다. 그런 다음 로봇이 인식한 현관 쪽의 방에 멈춰 있었다. 로봇 물걸레 청소기는 둥근 삼각형 모양으로 동그란 3개의 발을 가졌다. 그 발에 극세사 걸레를 덧신처럼 신고 임무를 수행했다. 터치만 해 두면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저 혼자 돌고 돌았다. 우렁각시 같은 세 발 각시였다. 탁월한 수행 능력은 아닐지라도 실물을 보고 나니 나도 하나 장만하고 싶은 마음으로 솔깃했다. 견물생심의 콩깍지가 씌었을까. 일손을 덜 수 있다는 유혹에 금방이라도 구매하고 싶은 충동심리가 일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저지를 각오로 상품 이름과 모델명, 제조회사를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하고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이었을지 귀가해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망설였다. 오래전에 딸아이 친구가 이사 가면서 버리기 아깝다고 주고 간 로봇청소기가 환기되기도 했다. 낡아서였던지 흡입력이 별로였고 힘없이 빌빌거리기만 해서 분리수거함에 내다 놓았다. 또 예쁜이의 주행 노선이 불분명하다는 점도 걸렸다. 인공지능이 설계된 전자제품은 늦게 살수록 기능이 향상되고 가격이 저렴해진다는 사실도 지름신神의 강림을 주춤하게 하였다. 결국 “그래, 샀다 치자. 있다 치자.”라면서 마음을 추스를 즈음 현관 문밖에 택배 상자 하나가 도착했다. 아들이 보낸 거였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열어보니 이중 박스 포장 안에 로봇청소기가 들어있었다. 어릴 때 바지 두 개 사주겠다고 하면 낭비라고 울먹일 정도였던 아이가 자라서 수십만 원도 더 넘을 물건을 덥석 안겼다. 자녀에게 절대로 의지하지 않겠다던 자존심은 어디로 가고 마음을 헤아려 준 누군가가 있다는 점에 속없이 기뻤다. 내 노고를 대신해 주고 마간 자유로울 수 있을 상상에 부담감 같은 건 잠시 접었다. 아들이 보낸 선물은 형님의 예쁜이와 차원이 달랐다. 그래봤자 청소기지,라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우선 몸값이 차이가 있을 것이었다. 스마트폰에 앱을 깐 후 회원으로 가입하면 폰 화면에서 청소기 제어가 가능했다. 최초로 전원을 켜면 레이저 센서가 발동하여 집안을 맵핑했다. 스스로 주변 환경을 스캔하여 청소 구역을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냈다. 지그재그 방식으로 경로를 정해 청소하고 끝나면 충전기로 알아서 돌아간다. 자율주행의 현실을 방안에서 체감할 수 있다. 청소 구역은 집안 전체로 설정하거나 안방, 거실 등을 따로 정할 수 있다. 접근 금지 영역을 지정할 수 있어서 형님의 쿠션 바리케이드 같은 건 세울 필요도 없다.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가 앱 화면에 선형의 지도로 나타나 청소 상태를 눈으로 볼 수 있고 그 이력은 그대로 저장된다. 먼지 통과 물통을 번갈아 끼워 쓸고 닦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중요한 건 흡입력과 물걸레의 압력이다. 깔끔이의 흡입력은 이제껏 사용한 제품에 비해 믿을 만했다. 먼지 통은 미세 먼지를 잠재울 헤파필터를 사용했다.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물걸레 청소기는 닦으나 마나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깔끔이의 압력은 그 불신도 만회시켰다. 센서와 흡입력, 물걸레 압력, 미세 먼지 필터 등이 모두 안도감을 주었다. “청소하는 시간을 즐거움과 행복의 시간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이자 사명으로 하고 있다.”라는 업체 대표의 복사본 손 편지도 그럴싸했다. 고도의 마케팅 전략일지라도 그 메시지가 인간의 마음을 읽고 있음이었다. 이렇듯 로봇청소기의 진화 말고도 요즈음은 인공지능 시대라고 한다. 바둑 중계방송을 보면 그 세계는 거의 AI가 주도하는 것 같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에 다양한 배달 로봇도 성행하고 있다. 소설과 수필을 쓰는 로봇이 있거나 개발 중이라고도 들었다. 의술이나 법률도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 시대가 될 거란다. 어쩌면 미래의 청소기는 “게으른 집사님, 집이 너무 더럽습니다. 청소할 시간이니 버튼을 눌러주세요.”라고 거꾸로 명령할지도 모를 일이다. 세간에는 인공지능 때문에 인간이 설자리가 없어진다며 회의적이기도 하다. 맞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언젠가 방송에서 미국의 커피 배달 로봇을 본 적 있다. 배달하는 과정에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느라 커피가 엎질러진 채로였다. 예정보다 도착도 늦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해진 시각에 커피가 온전히 전달된다면 그때는 인간을 능가한다고 보겠지만 아직 그렇지는 않다. 또 깔끔이가 아무리 청소를 완벽하게 한다 해도 자기 부속품까지 청소해 내지는 못한다. 충전기로 돌아가기 전 청소기를 일시 정지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머리카락이나 동물의 털 등이 미처 먼지 통으로 흡입되지 못하고 롤러에 감겨있거나 사이사이에 끼었다. 바퀴와 더듬이도 오염되었다. 다음 작업을 위하여 이것들을 손봐 두는 게 좋다. 먼지 통에 모인 쓰레기를 털어내고 수동 청소기로 남은 먼지를 흡입시킨다. 젖은 티슈로 미세 먼지를 잘 닦아낸다. 아주아주 하찮은 일이지만, 이렇게 섬세한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AI가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지레 실망할 필요는 없다. 19세기 초반 영국에 산업사회가 도래했을 때 러다이트Luddite 운동으로 엄청 혼란했지만, 인류는 극복해낸 이력이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사람이 해야 할 역할과 영역이 줄어들거나 좁아질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일들이 또 생겨날 것을 기대하며 나는 기꺼이 AI가 장착된 청소기를 청소한다. 모처럼 예쁜이의 주인인 형님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마침 거실에서 열일하고 있던 깔끔이를 보고는 “잘못했어. 나도 좀더 정보를 찾아보고 기다렸다가 깔끔이로 살걸. 늦게 살수록 더 좋은 물건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네.”
/김숙 전)중등학교교장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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