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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날들의 초상肖像(2-2)] 나뭇잎 비행기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2월 27일
8월이 이글거렸다. 이 무렵 태양은 염소 뿔도 녹인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였다. 그 열기를 참나무 숲이 온통 막아내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굴절된 햇빛은 희미한 조명등 빛처럼 길바닥에 어른거렸다. 그 어른거리는 숲길을 활주로 삼아 공중에서 ‘팽그르르’ 돌아 천천히 착륙하는 비행물체가 있었다.
허공을 맴돌아 내려앉은 물체는 짧게 잘린 도토리나무 가지였다. 가지에 달린 생생한 초록색 잎은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나 그제 바닥에 닿아 누렇게 뜨거나 말라가는 축도 있었다. 절단된 나뭇가지는 웬만큼 규칙적이었다. 줄기 맨 끝의 여린 가지가 끊겼고 이파리는 4장 이상 7, 8장이 붙은 것도 눈에 띄었다. 중심에는 도토리 1개가 달렸는데 가끔 2개짜리도 있었다.
이 숲을 오가기 이태쯤 되었다. 첫해는 그런 상황을 고개만 갸웃거리고 지나갔다. 해가 바뀌어 다시 접하니 궁금증이 도졌고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저렇게 잎과 가지가 손상되다 보면 나무가 죽지는 않을까? 나비효과라도 일어나 숲, 또는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별별 상상이 오락가락했다.
궁하면 뚫린다고 나뭇잎 비행체를 만든 건 아주 작은 곤충이라는 걸 알았다. 1cm 정도의 크기이고 긴 주둥이가 거위를 닮았다 하여 이름이 거위벌레였다. 사진으로만 본 벌레는 얼핏 쌀을 파먹고 사는 바구미 같았다.
이 곤충은 겨우내 땅속 집에서 산다. 봄이 되면 지상으로 나와 도토리나무 위로 올라간다. 풋도토리가 열리기 시작할 때 도토리에 굴을 뚫는다. 긴 주둥이로 깍지 근처 연한 껍질을 공략한다. 구멍을 다 파면 그 속에 산란관을 들이밀고 알을 깐다. 부화한 애벌레는 도토리 속을 집 삼아, 살점을 먹이로 살아간다.
7~8월이 되면 어미는 새끼벌레를 옮기려 채비한다. 과육이 단단해지고 떫은맛이 생기기 전 새끼가 사는 도토리 열매 주변 가지를 주둥이로 자른다. 부드럽고 맛있는 먹이를 장착해서 땅으로 돌려보낼 나뭇잎 비행기를 제작하는 것이다.
여러 개의 이파리는 공기의 저항으로 서서히 낙하한다. 덕분에 새끼벌레는 바닥으로 떨어질 때 충격을 느끼지 않고 무사히 착륙할 수 있다. 또 비행기 날개 같은 잎사귀들은 아기 벌레가 다 자랄 때까지 광합성 작용을 할 수 있어 도토리의 영양분이 유충에 전달되게 한다. 충분히 자라면 겨울이 오기 전 땅속으로 안전하게 들어간다. 이 모든 작업은 어미가 주도하고 아비 벌레는 정자를 주는 일이나 어미벌레 곁을 지키는 일 등을 한다.
곤충의 한살이를 살피면서 처음에 내가 우려했던 점과 다르게 어미벌레의 행위에 귀착했다. 이것은 사랑일까, 생존본능일까? 마치 침팬지가 그린 그림이 예술일까 아닐까 고민하는 것과 같을까. 그래, 한낱 벌레에게 거룩한 모성애를 부여하는 건 과한 비약이라 치자. 꾀돌이라는 섣부른 말은 하지 말자. 바나나를 보상받기 위해 침팬지가 그린 그림은 예술이 아니라고 하자. 그렇더라도 본능에서 비롯한 어미의 역할이 막돼먹은 인간보다 지혜로울 수 있음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어쩌면 지구 해악의 원인 제공자는 인간일 수 있는데 공존하는 벌레를 향해 숲을 헤치는 빌런이거나 해충이라고 단정했다니. 좀스러웠던 사고가 절절 끓는 한여름 열기에 덴 것 같이 화끈거렸다.

/김숙
전)중등학교교장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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