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04-23 07:54:09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지면보다 빠른 뉴스
전자신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전라매일
·17:00
··
·17:00
··
·17:00
··
·17:00
··
·17:00
··
뉴스 > 칼럼

[위대한 유산(2-7)] 지니펫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4월 17일
볕이 늘어져 있다. 제 주인인 내가 다가가도 반쯤 덮인 눈꺼 풀 걷어낼 줄 모르고 마당에 모로 누워 꼬리만 스릉스릉 흔들 어댄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오가는 꽃철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 기는 녀석을 보면 개 팔자 상팔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 조각의 볕도 아쉬운 소만小滿이기는 하지만 빈둥거리는 개 를 탓해서 뭣하랴.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저 팔자소관이라는 말 로 넘길 수밖에.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볼썽사납듯 요즘의 개들은 그 정도가 도를 넘은 것 같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개는 마당 한 귀퉁이나 마루 밑에서 주인이 들고나는 것을 바라보며 제 분수대로 살았다. 한밤중 무료 해지면 달을 보고 짖거나, 겨울에는 송이송이 내리는 눈밭을 내 달리면서 주인의 관심을 끌곤 했다. 하지만 요즘의 개는 반려라 는 신분을 넘어 그 대접이 가히 제왕적 수준에 이르렀으니, 그 풍경도 참으로 다양하다. 유행에 편승한 티브이의 동물 관련 프 로그램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에 대한 깊은 사랑(?)을 끌어낸 다. 그 결과 언제부터인가 너나 할 것 없이 개와 사람이 한 종족 이 되어 엄마, 아빠, 오빠, 누나로 불린다. 심지어 모 방송국 프로 그램에서는 견주를 표기할 때 개 이름을 앞세워 아무개 엄마, 아 무개 아빠라는 자막을 띄우기도 한다. 시청자의 몰입을 유도하 려는 자막의 수용이겠으나 말을 배우고 글을 배우는 아이들과 청소년의 정서를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빨리 와! 엄마, 그냥 간다.”
길을 가다가 딴짓하는 강아지를 두고 이웃의 중년 여자가 하 는 말이다. 서너 걸음 앞서 가면서도 개엄마(?)는 강아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래도 강아지는 흙냄새가 새로운지 연신 킁 킁거리며 신이 나 있다. 줄무늬 옷에 오드리 햅번이 로마의 휴일 에서 썼던 모자와 비슷한 벙거지를 쓰고 질금질금 제 영역을 표 시하며 가는 강아지를 보노라면 웃음이 절로 난다.
몇 년 전 우리 집 지척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앞으로 논길 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볕 좋은 날에는 사람들이 그 길 에서 개와 함께 산책을 하곤 한다. 아파트에 사는 한 젊은이도 해 질 녘이면 발음하기도 좀 까다로운 ‘개유모차’를 끌고 어김없 이 나온다. 유모차 안에는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주먹만 한 강 아지가 로마의 황제처럼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 제 주인을 종 부 리듯 하며 산책을 즐긴다. 오줌을 누이려 내려놓으면 발에 흙이 묻을까 다리를 털며 유모차만 바라본다. 유모차와 옷, 모자 등 등 얼추 잡아도 수십만 원은 들었음 직한 행차를 보면 사람이 주인인지 개가 주인인지 구별이 잘되지 않는다.
가끔 산책로에서 마주치는 개유모차 주인은 내가 아는 젊은 이다. 어렸을 때 보고 십수 년이 흐른 지금 보아도 곱상하게 생 긴 게 제 아버지를 빼닮았다. 젊은이의 아버지는 선배인데 몇 년 전 지병으로 죽었다. 그 후 선배의 부인은 타지에서 식당일을 하면서 틈틈이 박스를 주우며 살아간다. 가끔 자전거에 폐지를 싣고 가는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나는 그녀의 자존심을 생각해 서 그냥 스쳐 지나간다. 손등의 힘줄이 불거지고 마른 몸이지만 평소 자존심 많은 그녀가 아들의 개유모차 행차를 보면 어떤 표 정을 지을지, 궁금함을 너머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요즘은 다섯 집 중 한 집꼴로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한다. 함 께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소음과 악취 때문에 이웃과 다투고 살 인에까지 이르는 소식을 접하면 안타까움을 넘어 동물의 지위 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개 전용 미용실은 그렇다 치 더라도 개 전용 탄산수라든가 스파와 머드팩까지 소용되고, 심 지어 개 유아원과 대신 산책 시켜주는 워킹서비스와 장례식장 까지 등장하였으니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는 개도 한몫을 하 는 듯하다. 나아가 개가 입은 옷을 세탁소에 맡기기까지 하는 세태이고 보면 가히 사람보다 나은, 개 팔자 상팔자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강아지의 옷이 수백 벌인 것을 보고 놀 란 적이 있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드레스를 자랑스럽게 보여주 는 견주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물론 개와의 반려로 고독과 외로움을 삭일 수 있다. 또한 치매 환자 같은 경우에는 정서상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평생 부모에게 볼터치 한 번 안하는 사 람이 개와 입맞춤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내 마음자리를 더듬어 보게 된다.
인공지능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인간의 정서는 소멸해 갈 수 밖에 없다. 과거, 싸리나무를 엮어 만든 울타리나 헐거운 흙담 은 이웃과의 정을 염두에 둔 열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소통의정서는 시멘트 문화가 들어서면서 갇히게 되었다. 얼마 전 끼니 걱정 때문에 동반 음독자살한 세 모녀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첫새벽을 끌어 빈 박스 하나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의 모 습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듯싶다.
마당에 핀 봄 다 지도록 빈둥거리는 우리 집 개가 내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눈 치켜뜨고 쳐다본다. 발바리도 아니고 시쳇말로 똥개도 아닌, 종을 알 수 없는 저 녀석은 나와 함께 산 지 어언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사람으로 치면 요단강을 눈앞에 둔 늙은이다. 그래도 낯선 사람이 오면 힘에 부친 짖음일지언정 짖어대며 주인에게 알린다. 목줄을 풀어주어도 다시 돌아와 마 당에 앉는 녀석은 내가 외식하고 돌아오면 무슨 음식을 먹었는 지 훤히 꿰뚫는다. 어쩌다 삼겹살에 소주잔을 걸치고 귀가한 날 에는 혹시 고깃점이라도 남겨 오지 않았는지 나를 뚫어져라 쳐 다본다. 요즘 뜨고 있는 홍삼이 함유된 지니펫은 아닐지라도 먹 고 남긴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 고 아낀다.
얼마 전 6년근 홍삼으로 만든 ‘정관장 지니펫’이라는 개 건강 식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인 나도 지금 껏 먹어보지 못한 홍삼 제품을, 그것도 6년 근을 개가 먹는다고하니 어쩐지 내 처지가 처량하기만 하다. 거기에 더하여 값이 비 싸 망설여지는 유기농 제품까지 개를 위해 시판되고 있는 시절 이고 보면, 먹고 입는 것에 관한 한 나는 분명 개보다 못한 것 같 다.
마당에서 뒹굴던 똥개가 갑자기 귀를 세우더니 벌떡 일어선 다. 동구 쪽을 바라보며 목청껏 짖는다. 멀리, 개장수 확성기 소 리가 가까워지는 한나절이다.

/배귀선
시인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4월 17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기획특집
제10회 글로벌 시니어춘향 선발대회 개최  
익산시, 도시 전체를 화려한 꽃정원으로  
전주권 최초 4년제 K뷰티융합학과, 미래 뷰티 인재 키운다  
벚꽃 지나간 자리 초록으로 물든 고창의 봄  
밥은 줄었지만 가능성은 커졌다… 쌀 가공식품의 미래  
전북, 상설공연으로 ‘체류형 관광도시’ 도약  
전북 건강검진, ‘스마트 시대’ 열렸다  
유정기 전북교육감 권한대행, “흔들림 없는 교육만이 답…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 없다  
포토뉴스
하얀양옥집, 그림책 전시 ‘작은 만남에서, 우리의 바다로’ 개최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 가정의 달을 맞아 하얀양옥집에서 그림책 형식의 체험형 전시를 선보이며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 
전라매일 독자권익위원회, 정기회의 열고 현안 점검
전라매일 독자권익위원회가 정기회의를 열고 보도 신뢰도 제고와 독자 소통 확대를 위한 다양한 현안을 논의했다. 
전북도립국악원 목요상설 공연…창작 중주로 국악 재해석
전통 국악의 깊이와 현대적 감각을 결합한 창작 중주 공연이 도민들을 찾아간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관현악단은 오는 23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북예술회관 어린이극장 개막…가족 공연 나들이 본격화
전북 지역 아동과 가족 관객을 위한 공연 프로그램이 본격 운영된다.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은 오는 5월부터 11월까지 ‘2026 전북예술회 
국악으로 한·중 청소년 교류 확대…남원서 상호방문 추진
국립민속국악원이 국악을 매개로 한·중 청소년 교류를 확대한다. 국립민속국악원은 최근 사천성 청소년 교류단과 만나 전통예술 기반 청소년 교류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228. 501호 / mail: jlmi1400@hanmail.net
발행·편집인: 홍성일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