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린 가을의 꽃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08월 19일
주렁주렁 열렸던 감이 몇 알 남지 않았다. 닭은 어떻게 아는 지, 익은 감만 골라서 먹는다. 내 몫을 찾으려 쫓아 보기도 하지 만 마음속 지옥만 넓어질 뿐 먹겠다는 데는 도리가 없다. 하긴 내 것이라고 내 생각에 쓰여 있을 뿐, 내 것이 무에 있으랴. 더군 다나 물 한 바가지 공들이지 않았는데 내 차지라니. 애면글면한 정성도, 한 줌 햇볕도 준 적 없는데 감의 주인인 양 닭을 쫓으며 화내는 내 모습이 어떤 땐 우습기도 하다. 밤에도 닭들은 감나무에 올라간다. 감나무 가지에 얹힌 달빛 베개 때문인데, 밤이면 찾아드는 도둑고양이와 족제비를 피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잘 때는 함께 부화한 동료끼리 자고, 암탉 들은 수탉 옆에서 잔다. 서열이 낮은 수탉에게는 암탉이 접근하 지 않지만 간혹 바람기 많은 암탉이 이인자 수탉 근처에 가면 대장 수탉이 가만 놔두질 않는다. 간혹 달빛이 구름 뒤에 숨은 날 서열에서 밀려난 수탉 홰치는 소리 외롭게 들리면 나도 덩달아 웅크려지곤 한다. 닭의 서열 싸움은 치열하다. 일 년 전쯤, 근친을 막고자 3년생 토종수탉 한 마리를 외부에서 들였다. 2년생 우리 집 수탉과 서열 싸움이 일어났다. 일주일 정도를 마주칠 때마다 싸우더니 결 국 우리 집 닭이 죽고 말았다. 싸움에서 이긴 수탉이 암탉을 향해 한쪽 날개깃을 땅에 닿게 쭈욱 펴고 종종거리며 달려드는 위세는 가히 호색한의 허세를 능가한다. 대개 서늘한 산그림자가 내려올 때쯤 짝짓기를 하는 데 때론 한낮에 달려드는 녀석도 있다. 간혹 짝짓기에 재미 붙여 산모를 향해 덮치면, 어미 닭은 깃을 세우고 거부를 한다. 덩치 가 작은 암탉일지언정 날개를 독수리처럼 펴고 목털을 세워 위 협을 가할 때는 절대 나약하지 않다. 자식을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죽음에 방치하는 궂은 소식을 매체를 통해 접할 때면 그 여성에게 우리 집 암탉을 선물로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수탉이 호색한 기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먹이를 물었다 놓았다 반복하며 암탉을 유혹하는 행동은 나처럼 신뢰감 이 없지만, 꽁지깃 하늘로 세운 도도한 자태와 눈 희번덕이며 암 탉을 보호하려는 의지는 본받을 만하다. 그뿐이 아니다. 수탉은 암탉의 알자리도 봐준다. 어느 날 수탉의 행동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본 적이 있다. 수탉이 산란하려는 자세로 둥우리에 앉아 있고, 암탉은 그 옆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암 수의 본능마저 미쳐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둘 사이의 밀월이 끝나고 수탉이 암탉의 산란처를 마련하는 것이 었다. 이 같은 장면은 ‘동물의 왕국’이란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인데, 인간에게 길든 닭에도 야생의 본능이 남아 있었다. 문득 남자의 본능은 고사하고 가족의 둥지 하나 제대로 건 사하지 못한 내 삶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수탉을 필두로 여남은 마리의 닭들이 감나무에 오른다. 낭창거리는 감나무 우듬지에 위태로이 달린 몇 알 의 감. 닭 때문에 우리 집 가을의 꽃구경은 그렇게 가버리고 말았다.
/배귀선 (시인)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0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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