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목련 필 때면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08월 27일
울음이다. 창문 가까이 귀를 세우자 소리가 끊어진다. 잘못 들은 것 같아 책장을 넘기다가 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창문을 연 다. 가로등을 등진 한 남자가 오다 서다를 반복하며 어깨를 들 썩인다. 몇 걸음 더 다가오더니 집 앞 자목련 나무에 이마를 기 댄다.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사내의 통곡에 놀란 나무는 몇 남지 않은 잎을 떨어트린다. 등을 돌려 나무에 기댄 사내, 생을 놓아 버리려는 듯 주르륵 주저앉는다. 남의 일에 둔한 나이도 되었으련만 창밖 사연 때문에 글이 눈 에 들어오지 않는다. 길갓집이라서 별의별 일을 다 보기도 하지만 깊은 밤을 우는 남자라서인지 마음이 무겁다. 결국 옷을 걸 치고 현관을 나선다. 나도 저렇듯 눈물 흘린 적 있다. 하굣길 신작로를 걷다가 지 나는 버스를 만나기라도 하면 반가운 마음에 손 흔들던 시절, 버스 꽁무니에서 내뿜는 먼지 속으로 뛰어드는 일은 전쟁놀이 중 하나였다. 최무룡과 장동휘가 출연한 〈돌아오지 않는 해병〉 같은 전쟁영화가 유행하던 때, 비포장도로의 흙먼지 속은 포화 속으로 뛰어드는 주인공 같은 것이었다. 그날도 책을 둘둘 말은 책보를 어깨에 메고 지나가는 버스의 먼지 속으로 뛰어들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버 스 따라 내달렸다. 내리려는 사람이 있는지 버스 꽁무니가 보였 다. 버스가 멈추자 뒤를 따르던 먼지는 순식간에 버스를 에워쌌 다. 차츰 먼지가 걷히고 길 건너편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 다. 아버지였다. 나는 얼른 몸을 숨겼다. 가끔 욕설이 들려왔고 고성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그날, 내가 숨은 담장 너머에도 자 목련이 피어 있었다. 아버지의 뺨을 때리는 덩치 큰 사람의 손과 쏟아지는 욕설 때문에 나는 눈을 감았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 으나 통사정하는 듯했다. 여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어머니였 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담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빌고 있었다. 무슨 다짐을 하는지 그 사람의 삿대 질이 아버지와 어머니 얼굴에 여러 차례 꽂히고 나서서야 아버 지는 집으로 향했고 어머니는 그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울음소 리조차 낼 수 없었던 그날, 담장 너머로 떨어진 목련꽃 이파리가 손에서 짓이겨져 있었다. 거리를 두고 아버지 뒤를 따랐다. 입에서 피가 나는지 연신 무엇인가를 뱉어내며 걷는 아버지 등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집 이 보이고 동구에 다다랐을 때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는 집으로 들어갔고 나는 집 앞 아카시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서 성인 후에야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빛이 들지 않는 헛청에 등을 보이며 앉아 있었다. 모른 척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귀선이 왔냐.” 문턱을 넘다가 굳어졌다. 멍하니 서 있는 등 뒤로 한마디 더 얹으셨다. “니 엄마, 아랫마을 품앗이 가서 늦응게 밥혀서 동생들이랑 먹어라, 나는 아직 해 있응게 산밭에 좀 갔다 올란다.” 대답할 틈도 없이 아버지는 서둘러 나갔다. 그러나 흙벽에는 호미도 괭이도 그대로 걸려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밥 상을 두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 있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귀를 세웠다. 괘종시계는 침묵을 열 번 이상 두드리 는 것 같았다. 밥상에 마주 앉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말이 없었 다. 떠 넣는 밥숟가락 때문에 입이 아픈 듯 가끔 아버지의 신음 이 들렸다. 뒤집어쓴 이불 위로 찰칵거리는 시계 소리가 무겁게 깔렸다. 이윽고 어머니가 긴 침묵을 깼다. “강 사장네 언지까지 일을 해줘야 헌다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한참 후 어머니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아버지를 다그쳤다. “아, 그렁게 이삿짐을 좀 조심히 옮겨야지 어쩌자고 그 비싼 것을 깨크러갔고 이 봉변이다요.” 아버지는 밥숟가락을 놓는지 탁 소리와 함께 일어섰다. 이불 머리로 보이는 봉창의 달빛이 대낮처럼 밝았다. 토방의 달빛을 깔고 앉아 있는지 아버지의 한숨이 담배 연기처럼 문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에게 못할 말 한 듯 어머니는 한참을 앉아 있다가 장롱 서랍에서 주섬주섬 아까징끼와 안티푸라민을 들고 밖으로 나가셨다. 그 일이 있은 후 말수 적은 아버지는 더 말이 없어졌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리곤 한다. 이삿짐 품팔이를 갔던 아버지는 한 푼이라도 더 벌 마음에 다른 삯꾼 대신 어머니와 함께 갔던 것이다.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드리려 아버지는 서둘렀다. 그러다가 집주인이 아끼던 도자기를 들고 넘어진 게 화근이었다. 주인 이 변상하라고 다그쳤지만 당시의 형편으로는 막연했다. 결국 받아 든 처방은 부모님 모두 당일의 삯을 받지 않기로 하였고 몇 날을 더 그 부잣집의 논밭에서 일을 해야 했다. 창밖 사내의 울음소리를 좇아 나오는 길, 강아지가 앞선다. 어깨를 들먹이는 그림자 곁에 선다. 술 냄새가 나무 주위에 흥건 하고 강아지는 제 분수도 모른 채 사연을 알아보려는 듯 남자 의 주위를 맴돈다. 한밤을 울던 이 사내의 정체는 몇 년 전 ‘말죽거리’라는 식당 간판을 들고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온 아주머니의 아들이었다. 외아들 뒷바라지하며 청상과부로 살아오던 사내의 어머니는 아들의 빚보증 때문에 작년 이맘때 스스로 목을 맸다는 소문이 났었다. 위로할 다른 방법이 없어 들어와 잠을 청했지만 생전의 부모님 생각에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골목에 숨어 바라봐야만 했던 봉인된 서러움이 물밀어 온다. 뜬 눈으로 맞은 아침, 자목련 아래 울음의 흔적이 아버지의 기억처럼 붉게 떨어져 있다.
/배귀선 (시인)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08월 27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