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꽃을 보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09월 10일
복수초가 잔설을 녹이더니 드디어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다. 아지랑이가 몽롱한 하품을 만들고, 봄이 채 익기도 전에 낙화한 매화꽃잎은 방목하는 닭들의 호기심거리가 되어 콕콕 찍힌다. 보리잎이 동풍을 받아 청청할 때면 우리 집 암탉들은 서로 좋 은 둥지를 차지하려 부산하다. 플라스틱 박스에 짚을 얹은 둥우 리보다는 볏짚으로 땀땀이 엮어 만든 둥우리가 인기가 좋다. 통 풍과 보온 효과가 뛰어난 것을 암탉들도 아는 것이다. 포란의 징후가 보이기 사나흘 전부터 암탉은 수탉의 구애를 거부한다. 수탉이 가까이 가면 목털과 날갯죽지를 세우고 수탉을 위협하곤 한다. 산모가 되겠다는 신호다. 그래도 달려드는 수탉이 있지만 암탉의 포란에 대한 본능을 꺾지는 못한다. 올해도 제일 좋은 둥우리는 오순댁 차지가 되었다. 포란의 징후 때부터 들락거리며 품었던 알을 꺼내고 받아 두었던 새로 운 알 열 개를 일시에 넣었다. 작은 체구에 비해 너무 많은 듯했 지만 다년간의 산모 경험 때문에 염려를 거두었다. 어미 닭이 가끔 뒤척이는 것은 고른 사랑을 주기 위해 가슴에 품은 알을 굴리는 몸짓이다. 간혹 품안에서 알이 삐져나오면 부 리로 밀어넣는다. 나는 그런 모습에서 생전의 어머니를 떠올리 기도 한다. 포란이 시작되면, 처음 며칠은 들랑거리며 먹이 활동을 하지 만 부화가 임박한 며칠은 식음을 전폐한다. 혹시라도 굶어 죽을 것 같아 둥지 밖으로 쫓아보지만 그럴 때마다 위협을 하며 근처 에도 못 오게 한다. 하는 수 없이 싸라기를 둥지 언저리에 뿌려 주기도 하지만 쳐다보지도 않는다. 무자식 상팔자라는데 무슨 상덕을 보겠다고 눈을 끄먹거리며 목숨을 거는 것인지 안타까 울 때가 있다. 우리 동네에 팔순의 할머니가 홀로 살고 있다. 슬하에 오 남 매를 두고 금이야 옥이야 키워 분가시켰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자식들이 오랫동안 찾지 않는다. 그래도 할머니는 오 남 매 허물이 알려질세라 노심초사 아들딸 자랑하며 애써 웃음 짓 는다. 버거운 사정이 관계기관에 알려져 생활 보조를 받게 되어 다행이기는 하지만 포란을 하는 오순이를 보면 할머니의 자식 들이 생각나곤 한다. 조반을 마치자마자 어미 닭처럼 둥우리로 쪼르르 달려가 쪼 그리고 앉았다. 오늘은 바짝 다가앉은 나를 보고도 깃털을 부 풀리며 위협하지 않는다. 나와 오순댁이 눈 마주친 지 엊그제 같 은데 벌써 6년여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육보시에 들지 않고 삼 복에도 살아남아 얼굴 마주 볼 수 있는 것은 다져진 정 때문이 다. 간혹 찾아온 손님이 오순이를 보고 입맛을 다시면 오순이는 검은 눈을 유난히 번뜩이며 나를 쳐다본다. 드디어 미세한 생명의 소리가 들리더니 꽃이 피었다. 하얀 꽃, 보송보송한 노랑꽃, 검은 털실 뭉치 같은 꽃도 피었다. 알에서 병아리로의 차원이 다른 꽃들이 어미 품에서 빼꼼히 얼굴 내밀 고 두리번거린다. 스무하루의 어둠을 이겨내고 피어난 첫소리 가 꼬물꼬물 동풍을 타고 우주에 흩어진다. 전깃줄에서 휴식을 취하던 까치가 꽁지를 세우고 어디서 나는 소린지 연신 머리를 까닥거린다. 흙목욕을 하던 닭들이 순일한 소리에 귀를 세우고 다가온다. 마당가 민들레꽃도 매화도 둥 우리를 향해 일제히 귀를 세운다. 순간, 병아리와 꽃과 나의 경 계가 허물어진다. 꽃이 꽃을 보고 있다.
/배귀선 (시인)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0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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