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04-23 08:22:01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지면보다 빠른 뉴스
전자신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전라매일
·17:00
··
·17:00
··
·17:00
··
·17:00
··
·17:00
··
뉴스 > 칼럼

그리움에는 냄새가 있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4년 09월 24일
잃을 것도 지켜야 할 것도 없는 세간이기에 언제나 열려 있는 문. 여느 때처럼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선다. 혼자 있을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여느 때 같으면 인기척이 나면 내 이름 을 부르실 것인데 조용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지 한순간 멍해진다.
이내 돌아가셨다는 현실을 알아차린다. 그랬었다. 구순을 바 라보는 나이인데도 귀가 밝은 아버지는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 리면 급히 나를 불렀다. “귀선아, 어디 갔다가 인자 왔어.” 돌아 가시는 날까지 내 이름만은 뚜렷이 기억하셨다.
손바닥만 한 밭일이라도 할라치면 아버지를 홀로 남겨 두어 야 했다. 요양보호사의 대중화와 치매 환자에 대한 정부의 배려 가 그리 깊지 못한 때라서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 시야에서 멀어진 적이 한두 번 아니었기에 방문의 시건장치 안 과 밖을 바꾸어 설치해야 했다. 잠시 일을 보기 위해 밖에서 방 문 잠그는 소리가 ‘딸칵’ 들리기라도 하면 당신도 데려가라며 통사정하셨다. 그런 날이면 온종일 집을 끌고 다니듯 긴 하루를 보내야 했다.
지금도 앉은키만큼의 방문 높이에는 아들을 부르 며 두드린 흔적이 내 가슴에 멍처럼 남아 있다. 나는 그때, 아버 지를 감금한 죄 때문에 지금도 외로움과 고독에 갇혀 사는지도 모른다.
돌아가시기 서너 해 전에서야 드문드문 생긴 요양병원에 입 원시키라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으나 아버지를 남의 손에 맡긴 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낯선 사람을 거부하는 대인 기피 치매 증상 때문에 시설에 갈 수가 없었다. 목욕도 내가 해 드려야만 했고, 병원 주사도 내가 옆에 있어야 가능했다.
귀가가 늦어지면 어김없이 기저귀를 벗어 변을 만졌다. 당신 딴엔 수습한다고 했겠으나 오히려 일을 크게 벌여 놓곤 했다. 그렇게 늦은 귀가는 감금에 대한 흔적이 되어 벽지와 장판에 눌러붙어 있었다. 장판은 그렇다 하더라도 티브이 리모컨에서 말 라버린 똥을 처리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워매, 워매, 울 아부지 똥 싸서 시원허시것네….”
당시 똥을 치우며 나는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음을 오늘 고 백한다. 매도 맞아 본 놈이 잘 맞듯 똥 냄새는 어느 순간부터 나 에겐 불쾌하거나 특별한 냄새가 아니었다. 그러나 불쑥 사람이 라도 찾아오면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당혹 스러운 표정을 애써 감추려는 손님에겐 더욱 미안했다.
그런 이 유로 나는 아버지 돌아가신 후 최근까지 습관처럼 집에 손님들 이기를 두려워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잘 참는 사람도 있 지만 내심 얼마나 고역이었을지 생각해 보면 미안할 따름이다.
아버지는 치매가 일찍 왔다. 그러니까 내가 홀로된 때부터였다. 어쩌면 아버지는 아들이 안타까워 스스로 치매에 들었는지 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내 지울 수 없었다. 자살을 꿈꾸기도 했 었다.
그러나 아기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보며 모진 마음을 내려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갔다.
담과 담쟁이덩굴처럼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부자간의 정은 차츰 똥 냄새만큼이나 진해졌다.
치매 이전보다 친해졌고 허물 이 없어졌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게 있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데, 나는 아버지와 사는 동안 얻은 게 많은 사람이다.
잃어버린 십 년이 아니라 나를 찾는 시간이었지 싶다.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생각할 수 있었고 생각할 수 있어 존재의 질 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친구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다 유월이 저물어 가는 날, 밭은기침 허공에 남겨놓고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십여 년을 함 께 살았던 치매와도 이별했다.
창백한 구름처럼 스러진 아버지의 주검은 나에게 한동안의 우울증을 남겼다. 아버지를 땅속에 묻은 여름은 추웠고 이어진 가을은 허전했다. 또다시 혼자가 되어야 하는 감옥은 죽어야 산 다는 실존적 사유를 중얼거리게 했다.
어둑해지는 허공의 궤적을 따라 서녘을 향하는 새 한 마리, 어디서 왔고 어디를 향해 가는가.
잃어버린 채 살아온 물음이 노 을처럼 무연히 흘러간다. 이제 더는 똥오줌 받아낼 성가심도 밥 떠넣어 줄 일도 없는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어디 로 날아가야 할지 서성이고 있다.
‘딸칵’ 시건施鍵 소리가 공명처럼 남아 있는 아버지의 방문을 연다. 아버지는 없고 앙상한 그리움만 머물러 있다.
그 썰렁함을 디딜 때마다 물컹 밟히는 냄새. 그리움에는 냄새가 있다.

/배귀선(시인)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4년 09월 24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기획특집
제10회 글로벌 시니어춘향 선발대회 개최  
익산시, 도시 전체를 화려한 꽃정원으로  
전주권 최초 4년제 K뷰티융합학과, 미래 뷰티 인재 키운다  
벚꽃 지나간 자리 초록으로 물든 고창의 봄  
밥은 줄었지만 가능성은 커졌다… 쌀 가공식품의 미래  
전북, 상설공연으로 ‘체류형 관광도시’ 도약  
전북 건강검진, ‘스마트 시대’ 열렸다  
유정기 전북교육감 권한대행, “흔들림 없는 교육만이 답…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 없다  
포토뉴스
하얀양옥집, 그림책 전시 ‘작은 만남에서, 우리의 바다로’ 개최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 가정의 달을 맞아 하얀양옥집에서 그림책 형식의 체험형 전시를 선보이며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 
전라매일 독자권익위원회, 정기회의 열고 현안 점검
전라매일 독자권익위원회가 정기회의를 열고 보도 신뢰도 제고와 독자 소통 확대를 위한 다양한 현안을 논의했다. 
전북도립국악원 목요상설 공연…창작 중주로 국악 재해석
전통 국악의 깊이와 현대적 감각을 결합한 창작 중주 공연이 도민들을 찾아간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관현악단은 오는 23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북예술회관 어린이극장 개막…가족 공연 나들이 본격화
전북 지역 아동과 가족 관객을 위한 공연 프로그램이 본격 운영된다.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은 오는 5월부터 11월까지 ‘2026 전북예술회 
국악으로 한·중 청소년 교류 확대…남원서 상호방문 추진
국립민속국악원이 국악을 매개로 한·중 청소년 교류를 확대한다. 국립민속국악원은 최근 사천성 청소년 교류단과 만나 전통예술 기반 청소년 교류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228. 501호 / mail: jlmi1400@hanmail.net
발행·편집인: 홍성일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