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시인
전라정신연구원 이사장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영혼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사후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세상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되면, 우리의 넋[魂]은 육신을 떠나 천상에 올라 신령(神靈)으로 산다고 한다.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육체를 벗어나서 천상의 신령으로 태어나 제2의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그러기에 사람은 육신이 있는 사람이요, 신령은 육신이 없는 사람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기(氣)의 파장이 약 120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氣)의 파장이 변하지 않으므로 신령들은 자기와 파장이 같은 후손들과 한동안 함께 할 수가 있다. 1대를 30년으로 하면 4대조는 120년이 된다. 4대조 이하의 조상영(祖上靈)들은 후손과 파장이 맞으므로 그동안 후손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영향력도 생전의 사람됨과 업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생전에 착하고 어질게 살아 높은 영계에 가 계신 조상영은 후손을 위해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보살펴 주려고 애쓰지만, 그렇지 못한 귀신들은 후손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조상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후손의 몸을 빌지 않으면 안 된다. 조상은 영으로 존재하고, 영은 곧 기(氣)이므로 물질인 육체가 없이 기만으로는 아무 것도 행할 수가 없다. 따라서 후손의 몸을 빌려야 이 세상에 다시 올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파장이 맞는 4대조 이하 조상 영들은 그 후손의 몸에 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4대 봉제사(奉祭祀)를 올린다고 한다. 조상의 영혼이 후손의 몸속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텔레비전의 채널을 맞추어서 어떤 특정 방송국의 방송을 수신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그러나 불교에서는 삶은 죽음으로부터 비롯되고(生由於死), 죽음은 삶으로부터 말미암아(死由於生) 윤회를 거듭한다고 하니 지상에서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곧 천상에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 생일날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사람에게는 혼(魂)과 백(魄:넋)이 있어 혼(魂)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된다. 이같이 사람의 몸은 육체와 영적인 혼(魂)으로 구성되어 있어, 혼줄이 끊어지면 죽음에 이른다. 그러기에 우리가 죽게 되면 육체를 지상에 버리고 천상에 올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제사는 내 생명의 뿌리인 조상들과 만나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자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를 올리는 숭조화목(崇祖和睦)의 장(場)이다. 제사의 종류는 크게 기제(忌祭), 차례(茶禮), 묘제(墓祭)의 세 가지로 나눈다. 기제는 고인이 돌아가신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 차례는 설날과 추석에 지내는 제사, 묘제는 한식과 추석 때에 산소에 찾아가 음식을 차려 놓고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차례에는 설날 아침 조상에 대한 세배를 드리는 ‘떡국차례’와 한 해 농사가 잘 된 것을 감사하며 햅쌀로 밥을 짓고, 송편을 빚어 올리는 추석차례가 있다. 절(인사)도 죽은 사람에게는 두 번하고 산 사람에게 한 번 한다. 그 이유는 음양사상에 따른 것이다. 일(一)은 양(陽)을 뜻하고, 이(二)는 음(陰)을 뜻하기에 살아있는 사람은 양이고, 죽은 사람은 음이 되어, 산사람에게는 1번 절을 하고, 죽은 사람에게는 2 번 절을 한다. 때문에 초상집에 가서도 돌아가신 분의 영정 앞에서는 2번 절을 하고, 상주에게는 1번 절을 하게 된다. 절에는 2배, 3배 뒤에 반절이라고 해서 붙는 것이 있다. 이것은 절 뒤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간단하게 숙이는 것을 말한다. 산사람한테는 한번 절하는 뒤에는 반절이 안 붙지만, 죽은 사람에게 하는 재배나 불교에서의 삼 배 같은 절에는 반절이 붙는다. (*참조: 한국예절대학 효천 박종윤: ‘왜 4대까지 제사를 지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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