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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꿈꾸게 하는 섬, 위도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4년 10월 29일

배귀선 
시인

섬으로 향하는 마음은 늘 각별하다. 항구에서 가까이 볼 수 있는 근경의 섬이라 할지라도 육지의 여행과는 다른 설렘이 있 다. 섬 여행은 배표를 구매하기 위해 신분증을 제시할 때부터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격포 여객 터미널에서 출발해 인근의 도서 지역을 경유하는 여객선이라 해도 뱃길은 바 다가 허락해야 열린다.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도와준 덕분에 배 가 제시간에 출발했다.
등대가 지키고 서 있는 항구를 빠져나온 배가 파도를 타는 동안 난간에 기대어 출렁이는 칠산바다를 바 라본다.
칠산바다는 위도를 중심으로 아래로는 곰소만과 영광 백수면 앞바다를, 위로는 고군산군도 비안도에 이르는 바다를 통칭 한다.
서해의 한 자락을 칠산바다라 부르게 된 계기는 백수면 앞바다에 일곱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어 이를 칠뫼라 부르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 칠산바다는 파시로 명성이 자자했던 곳이 다. 특히 조기잡이 성어기인 오월이면 조기 떼를 따라 전국 각지 에서 몰려든 수백 척의 고깃배로 바다 위 어시장이 장관을 이루 었다.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바다 색깔이 깊어진다. 과자 봉지를 들 고 선 사람들 주위로 갈매기 떼가 모여든다. 멀리 수평선을 자 르며 고깃배 서넛 그림처럼 떠 있다.
물 반, 고기 반이었다는 그 시절을 그리며 바다를 내려다본다. 파시를 이룰 당시 산란기 조기가 모여들면 노련한 어부는 대나무를 바다에 담그고 바람 소리 같은 조기 울음소리를 찾아 그물을 던졌다고 한다. 튼튼한 배를 가진 선주는 사흘 조기잡 이로 평생을 먹고살았다는 이야기나 식당의 개도 지전을 물고 다녔다는 것은 지금도 위도 파시 이야기 끝에 심심찮게 얹히는 말이다.
그런 호시절도 옛이야기 속으로 사라져 지금은 조기를 보려면 한나절 거리의 먼 바다로 나가야 한다. 칠산바다의 어제와 오늘을 오가는 사이 여객선이 속도를 늦춘다. 파시 철마다 밀려드는 배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파장금항이 적적한 모습으 로 마중 나와 있다.
섬에는 그 섬을 특징짓는 고유한 문화가 있다. 바다에 의탁 해 살아온 삶과 고립이라는 특성이 생산한 문화는 생경하다. 그 비릿한 문화는 뭍에서 온 이들을 맹목적으로 들뜨게 한다. 파장 금, 어원의 속설처럼 파도가 길어지면 돈이 들어온다는 지난날 의 영화 또한 그렇다. 지금 어장의 파시는 사라졌지만 주말이면 사람들로 파장금항이 북적거린다.
격포에서 뱃길로 사십여 분, 갈매기와 벗하며 파도를 가르면 위도의 관문 파장금항에 도착한다. 바다를 옆에 낀 순환도로를 따라 달린다. 해풍을 피해 엎드린 집들과 해안가의 기암괴석을 스쳐 지나는가 싶더니 벚꽃이 만발한 가로수길이 맞는다. 아무 리 이상기온 탓이라고는 해도 늦가을에 봄꽃이 만발한 풍경은 섬을 더욱더 신비롭게 한다.
흔히 위도를 환상의 섬이라 일컫는다. 상상의 섬 이어도까지 는 몰라도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이상세계인 ‘율도국’의 배경 이 된 사료史料가 있으니 그럴듯하기도 하다. 거기에 달빛 아래 교교한 위도의 흰 상사화와 지금도 원형을 살려 이어지고 있는 풍어굿은 섬을 더욱더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구불거리는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니 위도 띠뱃놀이 전수관 이 있는 대리大里다. 섬의 서편 끝자락에 자리한 대리는 풍부한 어장이 형성되어 일찍이 큰 어촌을 이루었던 마을답게 완만하 고 넓다. 이 마을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민속예술경 연대회에서 풍어굿인 원당제願堂祭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부터 다. 이후 부안의 민속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위도 띠뱃 놀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풍어를 기 원하는 원당제를 근래에 띠뱃놀이라 부르게 된 것은 굿의 마지 막 절차에 띠배를 바다로 띄워 보내는 데서 연유한다.
위도 띠뱃놀이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 이른 아침부터 해 질 무 렵까지 이어진다. 육지의 농촌 마을에서 풍년과 발복發福을 기원 하며 지내는 당산제와 같은 이 풍어제는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원당에서 지내는 원당굿, 마을의 주산돌기, 바닷가에서 지내는 용왕굿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산과 바다 등 마을 전체가 제의祭 儀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 제의는 풍어 기원의 깊은 신앙성과 농악에 따른 술배소리, 에용소리, 가래질소리 등 노래와 춤이 결 합하여 위도를 상징하는 축제로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풍어제가 있는 초사흘 아침이 밝아오면 제관을 선두로 마을 사람들은 칠산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뒷산 원당에 올라 당굿 을 펼친다. 일 년의 운을 비는 당제는 오랜 기간을 두고 준비하 는데, 생기 복덕의 조건에 합당한 사람을 당해의 제관으로 뽑아 정해진 절차에 맞춰 제를 준비한다. 원당제를 주관하는 사제무 는 원래 무녀가 하는 것이 상례지만 무계세습이 끊긴 이후로 현 재는 위도 띠뱃놀이 전수자가 맡아서 진행해오고 있다.
여행의 뒤끝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섬으로의 여행은 더 그렇다. 돌아오는 길, 평일이어서인지 위도 파장금항 여객선 대 기실이 한산하다. 배 출발 시각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 시간도 보낼 겸 일어선다. 바닷바람에 빛바랜 건물 사이로 깊숙이 빨려 들어간 골목이 보인다.
배가 들어올 기미 없는 바다를 돌아보 다가 그늘진 골목으로 접어든다. 마주 오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모로 서야 지날 것 같은 비좁은 골목이 끝을 숨기며 이어진다. 밟히는 유리 파편, 무너져 내린 벽들 사이로 기울어진 여관이며 여인숙의 표지석을 끼고 돈다. 미로는 빈 깡통 같은 쪽방들을 매달고 이어진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먼지를 일으키는 이 골목 이 그 옛날 파시철이면 더 붉은 등을 내걸고 밤을 밝혔을 터, 야릇함이 여인숙 방을 기웃거린다.
한 평 남짓의 네모난 방에 남겨 진 옷걸이에 시선이 간다. 성어기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방을 거쳐 갔을까.
피항지였던 파장금항은 식당뿐 아니라 다방이며 유곽이 번 성했던 곳으로 이 또한 파시가 생성한 문화 중 하나다. 지금도 혹자에겐 서해의 외로운 섬인지 대도시의 시장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지난날의 미로를 빠져나와 배에 오른다.
풍랑에 파도가 길게 치면 금이 쌓였던 파장금항이 멀어진다. 섬이 다시 적막 속에 홀로 남는다.
그 옛날처럼 수백 척의 고깃 배를 불러들이는 풍어굿이라도 한바탕 벌였으면 좋겠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4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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