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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시 인
전라정신연구원 이사장
“고독 속에서 강한 자는 성장하지만, 나약한 사람은 시들어버린다.”
- 칼릴 지브랄 -
고독하니까 리더이다. 조직에서 지위가 높아갈수록 고독해진다. 홀로 지내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강한 리더가 될 수 없다. 리더의 고독은 자신과 만나는 시간,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는 순간이다. 고독의 시간은 사유의 시간, 성찰의 시간, 재충전의 시간이다. 리더의 고독감은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는 마음의 여유이다. 홀로 지내는 고독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서 더불어 지내는 만남의 가치도 달라진다. ‘천상천하 유야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내가 있음에 네가 있고 네가 있음에 내가 있으므로 우리 모두 존귀한 존재라는 뜻이다. 깨달음은 오랜 고독 속마음의 근육살을 키우는 수행의 산물이다. 리더는 조직의 운명을 책임진다. 의사결정에 최종적으로 책임을 진 자로서 미래의 불확실과 직면한다. 오늘날처럼 변화가 격심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평소에 별일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때대로 결단의 순간에 내몰리게 된다. 국내 최고의 벤처기업인 미래산업을 일군 정문술 사장은 “결실은 모든 사원들과 나누지만, 어려움은 사장이 혼자 짊어진다”고 했다.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수북이 쌓으며 밤새 고민한 박정희, 한미FTA 과정에서 지지층의 반발에 내몰린 노무현 전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예능프로그램에서 “대통령은 고독한 자리라고 생각한다”며 선거가 끝난 뒤 잠이 잘 안 온다고 하였다. 참모들이 있지만 궁극적 결정은 본인이 하고 모든 책임을 지며 비난도 한 몸에 받는 이유에서다. ‘결단’이라는 말의 바탕에는 ‘불확실’이 깔려 있다.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누가 보기에도 확실해 보이는 일이라면 굳이 리더의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성원들이 반대해도 가야할 길이 있다. 모호하고 불명확한 상태를 분명하게 규명하는 게 리더가 해야 할 중요한 일중 하나다. 리더의 결단은 때로는 상당히 불합리해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회사가 망하는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단을 내려야 할 땐 해야만 한다, 그럴 때마다 리더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랄한 비판의 대상의 되기도 하고,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오해 받고, 비난 빋고, 비판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무시당하고, 거절당하고, 버림 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리더는 격심한 고독을 느낀다. 그리하여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부서지고 무너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서 고독한 그 길을 가기도 한다. 리더는 고독을 친구로 삼아 자신을 더욱 견고하게 가꾸어 간다. 자신과 싸워 스스로 이겨가는 자이기에 리더는 어느 누구에게 잘못의 탓을 돌리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리더는 고독을 통해 깊어지고, 그 깊어짐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개 된다. 『대학(大學)』에 ‘신독(愼獨)’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혼자 있을 때에도 삼가고 조심한다(君子愼其獨也)’는 뜻이다. 신독은 자신을 속이지 않고(毋自欺),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것을 스스로 거리낌이 없는 자겸(自慊)이라 이른다. 이를테면 가장 작은 것이 가장 잘 드러나고 깊이 숨은 것이 가장 잘 나타나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삼가라고 한다. 이처럼 신독은 홀로 있을 때 정성을 다하여 내면적으로 수양의 기반을 확립하는 것을 말한다. 매 순간 고독한 결단과 마주치는 건 지도자의 숙명이다. 혼자 있는 때에 방심하고 몸을 함부로 가지면 남이 있는 때에도 그 습관이 나오게 되나니, 옛 성현의 말씀에 ‘그 혼자 있을 때를 삼가라’한다. 그것은 숨은 것과 나타난 것이 곧 둘이 아닌 까닭이니, 도(道)를 수행하는 선비나 지도자가 먼저 닦아야할 덕목이 바로 ‘신독(愼獨)’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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