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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삶이 그대를 속이면(1)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4년 12월 16일

김숙
전)중등학교교장

삶은 어쩌면 늘 변함없는 물의 본성을 닮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물이 변한다고 여기는 것처럼 삶이 우리를 속인다고 한다. 푸시킨이 유형지에서 우연히 썼다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만 보아도 그렇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라, 노여워도 말라! (…)”
살아가면서 어찌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임헌영의 유럽 문학기행』은 이렇게 서술한다. “푸시킨의 시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는 과연 삶에서 속을 때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가히 공자나 노자의 경지이고, 차라리 푸시킨처럼 쓸개즙을 핥은 듯이 새로운 역사를 꿈꾸는 게 정상이리라. 와신상담은 결코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전매특허가 아님을 푸시킨의 후반부 인생이나 문학 작품들은 여실히 보여준다.”라고.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은 이 시를 쓸 당시 크나큰 곤경에 처해 있었다. 열여덟 살에 쓴 혁명을 향한 분노의 시 「자유」 때문이었는데 황제 알렉산드르 1세에 의해 남러시아로 유형을 당했을 때였다.
세계의 독재자들이여! 두려움에 몸을 떨라!/ 그리고 그대들, 엎드린 노예들이여,/ 용기 내어 그 노래 새겨듣고 떨쳐 일어나라!// 아, 아 눈길을 어디에 두어도/ 어디서나 채찍과 족쇄들,/ 법에 대한 치명적인 모독 ,/ 굴욕스러운 무력한 눈물들이 보이고,/ 불의의 권력은/ 선입견들의 농밀한 안갯속에/ 즉위하였네, 노예제의 무서운 천재/ 타고난 명예욕의 화신이.// (…) 군주들이여! 그대들에게 화관과 왕관을 준 것은/ 법이지, 자연이 아니다./ 그대들은 민중 위에 서 있지만/ 영원한 법은 그대들 위에 있노라./ (…)// 전제정치의 악인이여!/ 그대를, 그대의 왕관을 나는 혐오한다./ 그대의 파멸, 후손들의 죽음을/ 내 잔혹한 기쁨 가지고 보노라./ 사람들은 그대 이마에서/ 민중의 저주의 낙인을 읽노라./ 그대는 세상의 공포, 자연의 치욕,/ 그대는 신에 대한 지상의 모독./ (…) // 황제들이여, 이제 배우라-/ 형벌과 포상,/ 감옥과 제단. 그 어느 것도/ 그대들의 믿음직한 방책이 되지 못함을./ 미더운 법의 보호 아래/ 먼저 고개 숙이라,/ 민중의 자유와 평안이/ 왕관의 영원한 보초가 되리라.
-박형규 옮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시킨 탄생 210주년 기념』
어렸을 때 별명이 ‘볼품없는 오리 새끼’였던 푸시킨은 600년 전통의 귀족 후예였다. 열두 살에 궁정 부속학교(차르스코예셀로) 1기생으로 입학하여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후일 데카브리스트 반란의 주역이 될 동창, 후배들과 함께 수학하였다. 졸업 후에는 외무부 직원으로 근무하였는데 그때 절대 권력에 저항하고 투쟁을 선포한 시 「자유」가 발각되어 내쫓겼다.
추방은 외무부 10등 관직을 유지한 채 전근 형식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보면 반역을 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삭탈관직에 위리안치도 불사했을 텐데. 모교였던 차르스코예셀로 출신들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푸시킨의 명성이 얼마만큼 뛰어났으면 귀양살이하면서도 관직이 유지되었을까.
드녜프르 연안 예카쩨리노슬라프에 도착한 푸시킨은 수도에서 로비활동을 벌여 준 친구들 덕분에 깡촌이 아닌 유형지를 전전하였다. 그러면서 이 시기에 낭만주의를 선도했던 바이런을 열심히 읽었다. 그의 시와 혁명사상을 통해 약소 민족 해방운동, 철학과 행동에 심취했고, 이곳 주둔군 장교들과 혁명을 위한 많은 담론을 나눴다.
유형지에는 절친인 푸쉰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는 군대 제대 후 재판소에 근무하면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법률 자문과 민권 운동 중이었다. 이때 푸시킨은 어머니의 영지인 미하일롭스코예로 이동하여 지내고 있었다. 이때는 바이런을 넘어 셰익스피어에 매료되었던 시기로 로맨티시즘에서 리얼리즘으로 전환하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이 무렵에 쓴 시였다. 가장 괴롭고 힘들었을 추방지에서 이렇게 달콤한 시를 탄생시킬 수 있었음이 놀랍다. (계속)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4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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