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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먼지가 가라앉으면 무엇이 보일 것인가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2월 27일

채수찬
경제학자
카이스트 교수

한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사건은 대통령의 계엄선포로 시작된 일련의 과정이다. 필자가 이 에 대해 그동안 공개적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필자가 무슨 소리를 한들 누구의 귀에도 제대로 들어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다. 이제는 국면이 달라지고 있다. 계엄사태를 전후한 사실관계가 상당히 드러났고, 흥분하던 사람들도 나라 가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선출직공직 경험이 있는 필자는 사실 계엄사태 이후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태발생 직후에 내 각의 선임자와 대통령실의 선임자에게 불법적인 계엄 선포와 집행에 공범이 되면 안된다고 문자를 보냈다.
 
상대방이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탄핵소추 의결을 앞둔 시점에서는 필자의 말을 일단 경청할 만한 여당 중진 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으면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 고 설득했다. 더 이상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limbo)을 빨리 끝낼 수 있는 길은 대통령의 사임 또는 탄핵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2차대전 이후에 정치와 경제 모두 가장 빨리 발전한 나라다. 여기에는 한국민의 노력도 있었지만, 그 이상의 어떤 섭리가 있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한국민이 지난 80년간 겪었던 아프고 힘들었던 경 험들이 지나고 보니 모두 현재의 한국을 이루게 된 소중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일어나고 있 는 일들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된다.

계엄사태는 대다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푸른 하늘에 갑자기 벼락이 내린 황당무계한 사건이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는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째는 박정희 대통령의 1972년 10월 ‘유신’이다. 그 때의 쿠데타는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 기도로서 예상되었던 일이었다.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중 김대중 후 보는 이번 선거가 국민이 대통령을 뽑을 마지막 기회라고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 후보도 자기가 국 민들에게 대통령으로 뽑아 달라고 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였다. 중의법을 쓴 것이다. 사족으로, 박정희의 친위쿠데타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영구집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한 다음날 전주고등학교에 서는 항의데모가 있었고 필자를 포함 세명의 학생이 퇴학당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는 백주에 저질러진 무모한 불법행위로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엉뚱 해서 쿠데타를 일으킨 주모자들 조차도 이번 계엄선포가 실패한 쿠데타가 아니고 야당에 대한 경고성 해프 닝이었다고 사후적으로 변명하고 있을 정도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태가 일으킨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남는 게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필자가 우선 주 목하는 것은, 사태진행과 처리과정이 시스템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회, 행정부, 사법부가 주요 결정을 내리고 있으며, 이를 거스르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이 불비한 경우에는 시스템을 구축해가면서 사태를 처리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국가체제가 비상한 사 태에도 작동되는 단계에 들어왔음을 뜻할 뿐 아니라, 한국 사회가 성숙한 공동체로 업그레이드 되었음을 보 여준다.

이번 사태 처리과정을 지켜보면서 드는 한 가지 큰 아쉬움은 장기적인 그림 없이 단기적인 사태수습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가는 큰 이유는 정치인들이 국가의 미래보다는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 고 있기 때문이다.

87년체제라고도 부르는 제6공화국은 한국이 선진국으로의 발전을 뒷받침한 정치체제로서 기능했고, 이번 사태 처리과정에서도 상당한 대응력이 인정된다.
 
그렇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이번 사태 발생자체가 87년 체제의 한계를 드러냈다고도 볼 수도 있다. 사태 직후부터 정치권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붙들었더라면 한국 의 미래는 더 튼튼해졌을 것이다. 논의의 출발은 장기적 관점에서 과연 개헌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들여다 보기도 전에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첫째, 야당의 다수세력은 이번 사태로 이미 차기 대통령을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이들이 개헌을 추진할 리 없다. 둘째, 여당은 윤석열 쿠데타에 사후적으로 공감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이들이 얘기하는 개헌은 대통령 선거를 늦추자는 책략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한 가지 대안은 대선의 유력주자들이 대선공약으로 87년체제 재검토를 내걸고, 그 결론에 따라 필요하 면 임기단축도 수용하겠다는 걸 천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 사태가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정치가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 무엇이 보일 것인가. 무엇이 남을 것인가.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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