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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전)중등학교장
우리는 신동엽 시인을 참여시인, 저항시인 이라고 한다. 대표작으로는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껍데기는 가라」 「금강」 등이 있다. 그의 문학세계는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입선되면서 펼쳐졌다. ‘석림’이라는 필명으로 문단에 나왔고 그 후 『조선일보』에 「진달래 산천」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하였다. 4·19혁명 이후 그의 시는 원초적 생명력에 대한 그리움, 민족주체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구체화하였다. 「껍데기는 가라」는 민족주체성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라고 외쳤다. 동엽의 껍데기에 관한 근원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슴에 품었다고 문학관장 김형수 시인이 들려줬다. 알에서 깨어야 한다는 구절을 전주사범학교 1학년 때 읽었는데 그 충격이 계속 남아있다가 「껍데기는 가라」는 시로 탄생했다. 그의 어떤 습작 노트에는 헤르만 헤세 『데미안』에서 느꼈을 법한, 알을 깨고 나오는 삽화가 실제로 그려져 있었다. 신동엽 시인의 시를 향해 김수영 시인은 “소월의 정조와 육사의 절규”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후배들이 생각할 때 껍데기를 가라고 하는 부분은 조금 불편하다고도 했다. 껍데기를 가라고 하는 건 좀 혼내는 구절이라고 여길 수 있다고. 문학관에 오는 사람 중에 “나는 껍데기니까 가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단다. 김형수 관장은 이렇게도 말했다. 껍데기를 가라는 건 남을 혼내는 말이 아니다. 끝없는 자기 성찰, 자기 갱생의 몸짓이라고. 그것을 생명체에서 중요하게 여겼으니 혼내는 목소리가 아니고 그의 시를 재해석할 여지가 된다고. 신 시인의 시에 종종 나타나는 상징어에는 늘메기 울음도 있다. 그가 근무한 야간고등학교의 학생들은 학교에 와서 잠을 자는 경우가 많았다. 신동엽 선생은 그 학생들을 깨우지 못하겠다면서 ‘저 친구들은 자면서도 늘메기 울음소리를 듣는다’라고 말했는데 궁금한 누군가가 질문했다. “선생님 늘메기 울음이 뭡니까?”라고. 늘메기는 뱀의 한 종류이다. 그 뱀이 성장하려면 허물을 벗어야 하는데 허물은 저절로 벗겨지지 않아 늘메기는 자기 몸을 나무 기둥에 세게 때렸다. 그 마찰 소리가 메아리처럼 번졌는데 멀리서 들으면 산이 우는, 산 울음처럼 들렸고 그 울림을 늘메기 울음이라고 했다. 신동엽의 시 「삼월」, “늘메기 울음 같은/ 아사녀의 봄은/ 말없이 고개 숙이고 지나만 가는데” 중 한 구절이기도 하다. 탈피脫皮의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지 못하고, 외면한 채 ‘말없이 고개 숙이고’ 지나가는 민중에 대한 안타까움”을 시인은 늘메기 울음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동엽의 알맹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껍데기는 가라」에서 대서사시 『금강』으로 이어진다.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 4·19혁명 정신으로 통한다. 이는 또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작금의 사회현실에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신동엽 문학관文學觀의 핵심은 전경인全耕人 시학이다. 역사를 전공한 신 시인의 전경인은 “땅에 누워 있는 씨앗의 마음은 원수성元數性 세계世界이다. 무성한 가지 끝마다 열린 잎의 세계는 차수성次數性 세계이고 열매 여물어 땅에 쏟아져 돌아오는 씨앗의 마음은 귀수성歸數性 세계이다.”하고 말했음을 「시인정신론」에서 볼 수 있다. 이는 그의 역사관, 세계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는 또 저항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지금은 싸우는 時代이다. 言語가 民族의 꽃이며 그 民族의 共同體的 狀況을 歷史感覺으로 感受받은 言語가 즉 詩라고 할 때, 오늘처럼 祖國과 民族이, 그리고 人間이 굶주리고 학대받고 外侵되어 울부짖고 있을 때 어떻게 해서 찡그림 속의 살아픈 言語가 아니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신저항시운동의 가능성」
신동엽 시인은 시뿐만 아니라 평론과 수필, 편지, 일기 등의 산문도 다수 남겼다.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 오페레타 「석가탑」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김응교 교수는 신동엽 평전 『좋은 언어로』에서 ‘신동엽의 시는 상고시대의 옛날까지 펼쳐 보인다’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회고 주의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여는 옛날’이고 그의 시는 ‘과거의 읽을거리’가 아닌 ‘내일을 위한 잠언’이라고 한다. 이 점을 주의 깊게 새기며 어디서 껍데기를 떨치고 역사의 한가운데로 나가려는 늘메기 울음소리가 들리는지 귀 기울여 본다. |